내 갤럭시노트9보다도 작은 파란색 캔. 안에 찰랑이는 갈색에 가까운 음료. 가격은 고작 900원. 껌보다도 싸다. 너무 저렴해서 1000원부터 시작되는 이마트포인트 적립도 안된다. 청소년 판매불가 상품도, 그 흔한 행사 상품도 아니다. 계산을 하면 '퉁' '삑'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난다. 편의점에서 가장 고요한 상품. 2개씩이라도 사가면 포인트적립하라는 안내라도 해줄텐데 꼭 한 개씩만 사간다. 레쓰비다.
레쓰비를 사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옷에 한샘이나, 현대건설이 새겨진 사람들. 새벽2시에 배달을 하러온 맥도날드 라이더. 삼다수 20개를 끙끙대며 배달하고온 이마트 직원. 900원짜리 커피 한캔에 카드 내기가 미안한 사람들. 꾸깃꾸깃한 천원짜리 한장을 챙겨오는 사람들. 썩 밝은 표정은 아니더라도 꼭 인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손님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지만, 이들은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수고'는 같은 노동하는 자에 대한 경배나 위로다.
가게에 커피 종류는 20종이 넘지만 꼭 레쓰비를 사먹는, 아니 사야만하는 사람들이다. 여유롭게 어디 앉아서 빨대로 커피 마실 시간이 없는 사람들. 여유가 있어도 일하는 곳이 찜통이라 오래 있을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레쓰비는 구입 직후 원샷이 기본이다. 다 마신 레쓰비 캔이 재활용인지 일반쓰레기인지 고민하다가 이내 시간을 보고 재활용쓰레기통에 던져놓고 간다. 땀에 쩔은 얼굴과 다급한 표정을 보고있자면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복용한다. 상품 분류상 레쓰비는 커피음료지만, 구매 목적에 따르면 박카스같은 자양강장음료에 가깝다. 박카스보다 더 달달하니 피로가 잘 풀리는 기분.
레쓰비는 고된노동의 상징이다. 땀에 쩔어서 냄새가 나고, 유니폼을 입어서 카페에 들어가면 눈치가 보이는 사람들의 친구다. 이들에게는 레쓰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다. 가장 빨리 영업이 끝나는 카페이기도 하다. 한 캔을 원샷하는 시간10초. 그 동안만 문을 연다. 고카페인에 당이 가득한 레쓰비가 몸에 안좋다는 사실은 유명하지만, 하루를 살아가는데 이 만한 위안을 주는 일은 많지 않다. 심지어 900원짜리. 가성비 쩌는 위안.
<레쓰비> 2019.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