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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돌고, 벚꽃 축제 명소가 검색어 상위에 올라오는 날. 예상보다 빨리 식은 더위, 입추라는 단어가 일기예보에 나타나기 시작한 날. 양치를 하다 입술 쪽에서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입술을 뒤집어 보면 작은 하얀색 뭉어리가 자라고 있다. 통칭 '구내염'이라 불리는 존재인데, 내 오랜 친구다. 초등학교 때부터 생기기 시작해서 매년 빠짐없이 내 입술에 나타난다. 입술에는 늘 살고있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니 내 몸과 혼연일체다.
뜻하지 않게 빨리 더위가 끝난 이번주. 그 시작과 함께 구내염도 함께 생겨났다. 내 왼쪽 윗 입술에 이질적인 존재가 자라고 있음이 느껴졌다. 10년 전이라면 당황했겠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어휴' 한숨을 크게 내쉬고, 선물 받은 비타민제를 꺼낸다. '꿀꺽'. 약효과가 빨리 올라오기를 기대하며 샤워를 한다. 칫솔질을 하다가 구내염을 찔렀다. 진짜 아프다. 잠시 볼을 붙잡고 있다가 급하게 양치를 끝내고 입을 행군다. 샤워기 물줄기가 구내염을 때려서 또 아프다. 얼른 양치를 끝내고 머리감기와 세수로 단계로 넘어간다. 샤워를 끝내고 밥먹을 궁리를 하지만 먹을 만한 반찬이 보이지 않는다. 고추장에 무친 진미채나, 양념에 쩔어있는 젓갈은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테니 넘긴다.
녀석은 하얗다. 기분좋은 청아한 백색이 아니라, 회백질에 가까운 백색이다. 현미경으로 본 미생물처럼 뭉글뭉글 거리는 모양으로 생겼다. 혼자 나타나기도 하지만, 여럿이 나타나서 나중에 만나서 큰 한 덩어리가 되기도한다. 녀석들이 커질 때 입술도 부어오르 듯이 점점 커진다. 정점에 이르면 잇몸과 입술 근처에 닿는다. 이 쯤되면 물만 마셔도 아프고, 말만 해도 아프다. 구내염이 커진 날이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윗입술을 잘 안쓰게 된다. 때문에 발음이 뭉개지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랫입술과 붙어서 뜯어질 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한다. 고통이 싫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입을 벌리고 있게 된다. 잠잘 때 흘리는 침의 양도 늘어나고, 평소에도 계속 입을 벌리고 있으니 침이 간간히 떨어지기도 한다.
녀석이 등장하면 그 뒤로는 자동 다이어트다. 물 마시는 일부터 아프시기작하니 음식을 먹는 일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뜨거운 국물이 닿거나, 고추장처럼 피부를 자극하는 양념이 닿으면 입술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구내염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구내염은 상관도 안하고 입이 찢어져라 쌈을 집어넣었다. 눈물을 흘리며 쌈을 식도로 넘기고나면, 구내염 부분이 찢어져서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밥 먹다가 피까지 흘리는 지경에 이르니 구내염의 징조가 생기면 입맛이 확 떨어진다. 음식을 보면 맛있어 보이기보다 아파보인다. 원래 밥을 빨리 먹는 인간이라 너무 뜨거운 음식,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빨리 먹지 못하니까. 구내염이 생기고 나서는 엄청 뜨겁고, 매운 음식은 사약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그 때부터 멀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구내염이 없는 날에도 연기 펄펄 나는 음식, 시뻘건 국물을 가진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들어서는 짠 맛까지 싫어하게 되서 뜨거운 빨간 음식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구내염은 일단 한번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계속 몸안에 잠복한다. 그러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환절기에 취약한 비염환자인지라 내 구내염도 계절이 바뀌고 일교차가 커지면 슬슬 활동을 준비한다. 그 때 급격하게 비타민을 몸에 들이붓는다. 잠시 나아졌다가, 그 즈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렇게 거대해진 구내염은 악순환의 축이 되어서 몸과 정신을 무너뜨린다.
새로 산 안경이 너무 쪼여서 왼쪽 귀가 아프고, 벌이는 늘었지만 소비습관은 따라가지 못해서 돈도 부족하다. 구내염은 더 커지고 있고, 밥먹기도 힘들다. 병원도 가야하고, 머리 정리도 해야하고, 군연기도 해야하는데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질서없이 자란 머리들이 기분나쁜 무게감을 준다. 앞머리 한가닥이 왼쪽 눈에 아른거린다. 짜증과 짜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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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짜증을 낳는 고리에 도달하면, 고통을 잊기 위해 가까운 과거로 눈을 돌린다. 자연의 변화외에 무엇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까. 엄청 화났던 일이 떠오른다. 그 분노가 내 구내염을 꺼낸 열쇠였지 싶다. 화내며 살지 말고, 저주하지 말고, 원망하며 살아가지 않기로 몇 번을 다짐해도 화가 나면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냥 이 분노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순간순간 선택해왔던 일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듯이, 내가 지금 화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일들 또한 나를 만든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결국 내가 지금 무엇에 화를 내야하는지, 어떤 부분을 보고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그것이 바로 나다. 돈을 아끼는 유일한 계획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돈을 줄이고, 저축을 시작하는 일이듯. 삶의 계획을 세우는 일도 지금 당장 가치로운 일을 판단하고,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쓰면 된다. 인생에서 세워야할 유일한 계획은 '지금 무엇을 하지.'에 대한 대답에 불과하지도 모른다.
구내염 이야기하다가 너무 멀리 왔다. 따갑고 아프고 짜증난다.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구내염> 2019.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