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시대>

2019.8.25

by 바다

'이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인가?'하는 착각을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들어올 때부터 내 인사에 맞춰서 90도 인사, 계산 할 때 카드는 양손으로 빨대하나를 달라고 하는 데도 '죄송한데'로 시작해서 '부탁합니다'로 끝난다. 마지막까지 싱긋 웃으며 인사하며 나가는 사람.

'저 놈을 죽여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하는 놈도 있다. 들어올때 부터 반말이다. '어~ 안녕'. 한참 술을 찾더니 원하는 소주가 없으니 나를 부른다. '야 알바야 여기 소주가 없노'. 부랴부랴 찾아주면 투덜거린다. '아니 내가 먹는 소주를 찾기 좋은데 놔둬야지 구석에 넣어놨노 짜증나게.' 부들부들 거리며 포스기로 가서 계산을 시작한다. 봉투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 당연히 줘야지.' 종량제 봉투 사이즈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이거 다 들어갈만한 걸로 줘봐라.' 이 정도되면 카드를 던지는 일은 아주 사소하다. 잘가라는 나의 인사에도 '어 알바야 안녕' 하고 떠난다. 입이 아닌 주댕이에서 '야'로 시작해서 '줘봐라'로 끝나는 악당놈이다.

하루에 이런 극단적인 두 사람을 함께 만나면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정말 친절한 사람에게는 그 뒷 배경이 더 밝아보이고, 조명이 더 커지는 착각. 없애버리고 싶은 악당 뒤에는 그 뒷 조명이 더 어둡게 보이는 착각. 한 쪽은 천사의 아우라를 한 놈은 악마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분명 심리학에서 말하는 뇌의 착각 따위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실재처럼 느껴져서 놀란다. 첫인상에는 외모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압도적인 친절함과 극악무도한 무례함 앞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친절한 사람은 외모를 넘어선 어떤 '선'한 느낌이 든다. 그냥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무례한 놈은 외모도 초월하는 '악'을 내뿜는다. 인상자체가 칼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인류의 위대한 성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신자를 모으지 않았을까. 부처와 예수는 당대에 가장 무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에게 무릎을 굽히고, 항상 인사하며 다녔다. 나처럼 늘 무시받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서 환하게 미소짓는 그들을 보면서 그 뒤에서 묘한 밝음을 느꼈을터다.

한번 이 느낌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 황홀함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하루 종일 힘들어도 천사같은 손님 한 명이면 정말 힘이 난다. 이 신비한 체험은 그 자체로 종교적이다. 현대과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뇌의 작용이나 인간의 심리작용으로 이를 해석한다. 성인의 시대에는 그들의 삶의 태도이자, 전도의 노하우였다. 이제는 누구나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면 이 신비한 작용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성인이 겪은 결단과 태도, 그 정치적 감각까지야 따라할 수 있겠냐만. 적어도 우리는 노력하면 한 인간에게 종교적 신비에 가까운 힘을 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누구나 성인에 필접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것이 온통 타인에게 노동을 강요하거나, 물건을 팔아먹는 용도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이런 실천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쯤 해보면 어떨까. 가게에서 노동자에게 웃으면서 허리를 숙여서 인사하고, 부탁을 할때면 '죄송한데요~ 부탁합니다'로 끝나는 문장을 써보자. 당신은 누군가에게 성인이고 천사다. 그리 좋은 마음을 먹지 않아도 습관이 된다면 걸어다니는 천사가 될 일이다. 반대로 나쁜 마음 하나도 안먹고 악마가 되는 법도 있다. 늘 무표정으로 반말로 노동자를 대하면 된다.

참 살갑지 않은 인간인데, 경험을 하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일단 웃는 연습을 하자. 찡긋.

* 평소라면 모두가 감정노동을 할 수 없는 조건이 있고, 한국 사회 긴 노동시간의 문제도 있고 감정노동이 여성에게만 집중되고 등등 이야기를 했겠지만, 그냥 그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겠나 싶어서. 그리고 나한테 웃으며 인사해준 손님의 힘이 너무 크기도 하고.

<성인의시대>.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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