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 대한 고민.
해맑스 첫 모임을 마치고서
"학회세미나는 학회장 빼고 1명만 더 와도 진행해야 합니다!" 학회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던 때에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학교에서 학회를 하다보면 한학기 모집이 잘 안되서 신입학회원이 한 명도 없던 때가 많았다. 기존에 있던 학회원들은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우여곡절 끝에 모인 사람 1~2명과 세미나를 했다. 모임은 기본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이 일정 숫자 이상은 되고, 모임을 하는 공간도 시끌벅적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게 참여하려는 사람이 부담없이 다가올 수 있다. 이 공간에 대한 신뢰도 생긴다. 지하에 있는 음침한 동아리방에 2~3명이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공간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기존의 회원들이 일정 숫자가 되고 잘 유지가 되어야 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확률도 높아진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람이 많으면 모임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힘도 나고, 참여하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두근거림도 있다.
학회장 1명에 학회원 2명이라도 학회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내가 앉아있는 공간이 10년의 역사를 이어온 학회라면 한학기 회원이 잘 모이지 않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그만둘수 없다. 적어도 이 공간을 오고갔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이 공간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획을 한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전혀 없었다. 나에게 학회는 모임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공간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10명은 족히 앉을 학회방에 나를 비롯하여 2~3명이 둘러앉아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렇게 공간을 지켜왔다.
처음 학회장을 맡았을 때에는 그 광경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선배들이 10년을 지켜왔던 공간을 내가 무너뜨리고 있다는 공포가 컸다. 그나마 내가 활동이라고 하는 일은 이 학회를 운영하고 지켜나가는 일이었다. 이마저도 못한다면 더 이상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공포에 떨며 한학기를 어지저찌 마치고 2학기 모집을 준비를 할 때면 딱 1명만 더 모여달라고 빌었다. 1학기에 함께 한 사람들이 제발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 이 바람은 처참하게 무너졌었다. 학회장인나와 학회원 1명 이 2명이 힘겹게 세미나를 이어가다가 2학기가 되면 나는 학회원 없는 학회장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명문대도 아닌 지방의 사립대학교의 학생들이 이력서에 한 줄 적기도 어려운 동아리에 선뜻 다가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또래 대학생들의 어려움이 적힌 글들을 읽고, 현실을 알아가면서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휴학하면 휴학하는 동안 의미있는 일은 했냐고 물어보는 기업 면접에서 내 학회의 활동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래도 학회를 포기할 순 없었기에 어떻게하면 사람을 모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포스터의 디자인이 문제인지, 우리가 읽는 책이 너무나 거부감이 큰 책이라 그런지 고민했다. 학교랑 싸우고, 데모하는 동아리라고 낙인 찍혀서 학생들이 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바꿔볼까 하고 고민도 했다. '카르마'라니 무슨 불교 동아리인가.
과 생활을 열심히해서 친구가 많지도 않고, 만나는 학교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 학회에 대한 의견을 다양하게 듣지는 못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전혁직 학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라도 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이라도 돌려보는 일이 더 의미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하는 활동을 녹여내고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 앞선 우선순위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커리큘럼을 좀 더 다듬어보고, 포스터도 이쁘게 만들고, 홍보도 더 열심히해야지 라는 다소 나이브한 결론으로 끝맺음을 했다. '열심히 해야지'말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물어볼 사람도,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다.
학교를 수료하고 학교에서 학회를 접었다. 동아리방은 인문대 학생회에 반납했고, '카르마'라는 이름은 흔적만 남았다. 한 동안 여기저기 모임에 기웃거리긴 했지만 내가 모임을 운영하지는 않았다. 맑스를 읽어보고 싶어서 '해맑스'라는 맑스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맑스를 읽는 모임에 오느냐'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고 싶어서 일단 시작했다. 포스터도 만들고, 커리큘럼도 구성했다. 이전에 학회할 때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하려고 고민도 하고, 좀 있어보이는 모임이 되기 위해서 이름표도 만들고 자료집도 제작했다.
모집된 사람은 총 4명 이중에 한명은 다른 이유로 떠나갔고, 첫 모임에 총 3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혹시모를 추가 참가인원을 맞이하기 위해 5인실을 빌리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한 분이 도착하고 약속시간이 10분이 지나도 나머지 2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안받고, 개인톡을 해도 1만 사라질뿐 응답은 없었다. 화가나긴 했지만 학회하면서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어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 앞에 앉아계시는 한 분에게 너무 죄송했다. 몇번이나 사과를 하고 결국 둘이서 모임을 진행했다. 사람이 부족해서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진행하지 못했다.
참석한 한 분이 너무 열심히 모임에 참석해주셨다. 나한테 고생했다고 위로도 해주셨다. 큰 위로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임이 끝나고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향했다. 예전처럼 모임이 끝나고 나니 몸에 모든 에너지가 다 빠졌다. 모임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모임의 퀄리티를 고민하기에는 나에게 독서모임은 여전히 너무 자족적이라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결국 모임을 확장하고, 이어지게 하려면 자기만족을 넘어선 객관적 평가와 분석이 필요할텐데 말이다.
2주뒤에 다시 모임이 있고 지난번에 참여한 한분에게는 오늘보다 한 명은 더 참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꼭 3명이서 카페가서 차라도 한잔마시자고 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모집을 준비하고 있다. 내 감정의 자족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1명이라도 남아서 버티는 모임이 아니라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이야기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이제 모임에 대한 고민을 나눌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지만, 혼자서라도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족하지만, 내가 알고 느껴왔던 부분들을 바탕으로 또 다음을 기약한다. 내 앞에 앉아있는 한 사람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딱 2명. 딱 2명만 더 모아서 4명이서 모임하고 싶다. 모이는 사람 숫자로 뭔가를 기획하는 일이 옳은가는 여전히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