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친구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통화기록을 클릭했다. 한참을 뒤져도 친구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실수로 번호를 지워버리기라도 했을까. 부재중 전화였다. 아빠였다.
어지러웠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휘청거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어제 내린 비가 채 마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몸을 가누는 것이 먼저였다. 바지가 축축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왜 전화가 왔을까. 죽은 것일까. 어디가 아픈 것일까. 아니면 돈이 필요한 것일까.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이 그리웠을까.
어린 시절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빨간 날만 되면 지금은 사라진 해운대 기차역 앞에 있는 손오공 문구점에 데려갔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모든 장난감을 사줬다. 생일날에는 노란색 마대자루에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 미니어처를 어깨 가득 지고 왔다.
주말이 되면 그와 서울탕에 갔다. 그는 나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손에는 더러운 것이 많이 묻었노라고,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했다. 인생의 진짜 가치는 돈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으니 항상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판사가 되기를 바랬다. 내가 탕의 온기를 오래 견디지 못했던 덕분에 우리의 이야기는 내 몸이 빨개질 때쯤 끝났다. 그의 등을 작은 손으로 박박 밀어주고 우리는 목욕탕에서 나왔다. 서울탕 1층에 있던 삼계탕집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 문제는 친구의 죽음에만 있지 않았다. 그가 아빠의 돈 20억을 모두 도박에 탕진하고서 죽었던 탓이다. 그는 강원랜드에 그의 친구와 우리 가족의 운명을 모두 탕진했다. 수십억의 자산가이던 아빠는 한순간에 빚쟁이가 되었다. 이후 그는 재기를 위해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명의로 통장하나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아주 긴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긴 잠에 들면서 끝나지 않는 꿈을 꾸었다. 그는 그 꿈에서 자신이 서울에 있는 돈 많은 형님과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걸고 또 전화를 걸었다. 이 일만 잘되면 이제 고생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까칠한 수염을 내얼굴에 부비며 내가 좋아하는 공부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집은 두번 이사를 했다. 중학교 때에는 빨갛고 작은 스티커가 내 책상과 티비, 가족들이 밥을 먹던 탁자에 붙었고, 고등학교 때 급식지원대상자가 되었다.
그의 잠이 길어지면서 엄마는 일을 시작했다. 피자헛에서 피자를 굽기도 했고, 고깃집에서 서빙도 했다. 엄마는 주부에서 노동자가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15년째 고깃집에서 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은 엄마가 일하는 고깃집 사장님이 공짜로 준 집이었다. 선심 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와 엄마를 더 적재적소에 부려먹기 위함이었다. 집을 댓가로 그는 밤새 가게 앞을 지키는 경비가 되었다. 야간수당도 없었고, 휴일도 없었다. 그는 1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 쭈그려서 잠들었다. 새벽에 너무 추우면 그는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옷 좀 갖고 온나" 나는 자다 말고 투덜거리며 일어나서 그에게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앙상한 다리가 보기싫어서 얼른 집에 들어왔다. 그러고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러다 눈물이 멈추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휴일도 없이 일하다 그는 병에 걸렸다. 밥만 먹으면 음식을 토했다. 물을 먹는 것도 힘들어 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해도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아마 명치나 식도에 무엇이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한이나 후회같은게 아닐까 생각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큰아빠가 집에 왔다. 엄마는 그와 갈 곳이 있으니 내게 하루만 경비를 대신 서라고 했다.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지만 별말 없이 경비를 섰다. 10인치도 안되는 오래된 브라운관 티비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빗소리가 너무 커서 티비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불이 다꺼진 주차장에 혼자 누워있으니 무섭기도 했다. 술취한 사람이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다리를 뻗을 수도 없어서 새우모양으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해가 뜨지 않아 아침이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아저씨가 아침을 알렸다. 아저씨는 물었다. "아빠는 어디가셨나?" 나는 답했다. "네 몸이 좀 안좋으셔서 병원 가셨어요." 아저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날 저녁 그가 돌아왔다. 큰아버지도 함께였다. 큰아버지의 차안에는 제사음식이 가득했다. 그는 내 어깨를 잡더니 말을 했다. "우리집은 대대로 신병이 있다. 이게 병원간다고 치료되고 하는게 아니라. 아빠가 이거 때문에 늘 힘들었다. 느그 할머니도 알고있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못하는데 우리집은 그런게 있다. 니도 그런게 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신병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다. 그에게서 강한 향냄새가 났다.
그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이미 밤새 일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항상 피곤해했다. 결국 그는 고깃집 경비일을 그만뒀다. 그의 퇴직금은 엄마의 빚을 갚는데 쓰였다. 그는 일을 그만둔 뒤로 계속 집에 누워있었다. 나와 동생이 집에오면 밥을 해주고, 설거지를 했다. 그는 노동자에서 주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고깃집 사장이랑 바람을 핀다고 했다. 자신이 전화를 했더니 엄마랑 고깃집사장이랑 모텔에서 관계를 가지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녹음도 했다고 했다.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니라고 했다. 그는 엄마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그를 말렸다. 동생은 욕을 하면서 그에게 화를 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죽여버릴 거다."고 했다. 동생은 그를 큰 방으로 끌어냈다.
그 뒤로 엄마와 그는 말하지 않았다. 침대가 하나 뿐이라 잠은 같이 잤지만 절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아팠다. 내가 없는 동안 그가 동생과 엄마를 칼로 찔러죽이고 자살하는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나도 그의 칼에 찔려 죽을 것 같았다. 잠을 자지 못했다. 집에 오는 것이 무서워서 모텔과 피시방을 전전했다. 모텔은 조용했고 잠도 잘왔다.
엄마와 그는 결국 이혼했다. 그는 엄마가 바람핀 증거가 있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증거를 지웠다고 했다. 엄마의 직장동료가 집에 찾아왔고 그와 맥주를 한 캔 같이 마셨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그와 살 것인지 자신과 살 것인지 정하라고 했다. 나는 모든 돈을 엄마가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망설임 없이 엄마를 선택했다. 그는 신용불량자 였고, 돈 한푼도 없었다. 그의 퇴직금은 모두 엄마의 빚을 갚는데 쓰였다.
그는 이혼해주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500만원을 요구했다. 엄마는 그에게 "미친새끼"라고 욕을 했다. 하지만 마지못해 빚을 내서 500만원을 줬다. 그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짐을 챙겼다. 나는 그가 택시타던 곳까지 짐을 옮겼다. 그는 택시를 잡고 짐을 실었다. 그에게 잘가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그는 담배냄새를 풍기면서 택시를 타고 떠났다.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그 뒤로 그와 만난적은 없다. 전화를 한번 하기는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없었다.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기술도 없고 나이도 많아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은 잘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몸 건강히 잘지내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가 전부 젖었다. 온 몸이 비를 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핸드폰을 꺼내 통화목록을 삭제했다. 줄그어진 파란색 동그라미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