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음달에도 일할 수 있을까.>
비정규적인 불안정한 노동.
'정규직'이 되어본 적 없는 노동자라 도리어 '비정규직'이 뭐 그리 나쁜지 잘 모른다. 경영학과 자본이 말하는 자유로운 노동의 선택, 효율적인 노동의 분배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퇴사하고 싶어도 너무 길게 맺어진 근로계약으로 회사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연봉을 올릴 기회가 있으나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 이직이 쉽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비효율적인 정규직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선호하지 않을까. 비정규직이 되고싶은 사람들. 비정규직은 나쁜 일자리 일까.
비정규적이지만 불안정하지 않은 일도 있다. 소수의 전문직이나, 전문경영인 같은 직업들. 그 경우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 비정규성을 활용한다. 스케줄을 짜고 스스로 사장이 되어서 1인 자영업을 해서 수익을 얻는다. 성공한 자영업자 혹은 프리랜서.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비정규직 직업들은 '불안정성'에 더 큰 방점이 놓여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라고 불리지만 일하는 주기가 전혀 비정규적이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20년 동안 청소노동자의 이야기, 비정규직으로 20년 동안 일한 경비노동자의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 여겨진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서 2년 이상 고용할 경우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지만, 업체를 바꾸거나 1년 11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하는 방법으로 이들은 20년 동안 정규적으로 일하면서 비정규직으로 남게 된다.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적인 스케줄로 일을 하는 이들은 그럼 정규직과 무엇이 다를까. 바로 안정성에 있다.
이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일하지만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해고 스케줄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그들의 해고는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 정규직의 지위도 끊임없이 불안정해져서 대기업들도 50줄이 넘어가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시대지만 적어도 20년의 근속은 보장받을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20년을 일해도 그다음 해 1년의 근속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자신이 속해있는 하청업체가 사라지거나, 아파트 주민들이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거나, 사장이 편의점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전환한다면 당장 다음 달에 노동자는 해고된다. 4대 보험이 가입되어있는 직장이라면 실업급여라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자신이 모아놓은 돈들로 먹고살 수밖에 없다. 바로 전달에는 노동자였지만, 그다음 달에는 바로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삶이 '불안정'비정규직의 삶이다.
이들은 퇴직할 수 없다. 오로지 해고 당할 뿐이다. 정규직들은 정년을 채워서 퇴직하거나, 해고되더라도 '퇴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가식적인 자율성이라도 보장해주지만 비정규직은 퇴직이 없다. 오로지 해고뿐이다. 이 해고는 가장 가까운 관리자의 입김에 의해서 결정된다. 일의 숙련도나 전문성이 아니라 관리자와의 관계가 해고의 척도가 된다. 관리자와 친하면 남아있고, 갈등이 생기면 해고된다.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사장님이 나에게 임금 명세서와 함께 '돈 보냈다'는 톡을 보냈다. 그 뒤에는 유제품 유통기한 꼼꼼하게 챙겨달라는 문장이 따라왔다. 가슴이 덜컹했다. 이전 편의점에서도 빠뜨린 부분에 있어서 점장이 '꾸중'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두려웠다. 현재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의 성격상 그냥 좀 더 신경 써달라는 정도 말이겠지만, 몇 번더 반복된다면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 해고가 될 리가 없다는 위안은 하지만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내 근속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전혀 없다. 사장님의 사장과 기분에 따라서 내 일자리가 너무 쉽게 위협받는다. 내 노동엔 안정성이 없다.
내 마음에 있는 불안에서 비롯된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번 주에 출근했을 때 유통기한 체크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면 될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란 늘 이런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내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해고가 될 수 있다. 실수를 딛고 만회해서 성장하고 숙련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일의 불안정성은 결국 노동의 탈숙련화, 비숙련화된 노동을 양산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숙련할 시간도 기회도 없이 해고당한다. 가게가 어렵다고, 실수를 한다고, 싹싹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너무 쉽게 잘려나간다.
나는 11월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제대를 하고서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나는 편의점 일이 좋고, 이 가게가 좋다. 조건도 좋고, 보람차다. 하지만 안정적이지 않아서 늘 이직과 다른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편의점 노동 같은 불안정한 '알바 노동'이 무시당하는 건 이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일터에서 숙련과 전문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없다. 다음 달의 근속조차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