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떨고 있는 노동자. 시민. 한 집안의 공포.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부산 해운대다. 이 계절에 사람이 너무 많다. 해수욕을 하러 온 관광객이 가득하다. 마스크를 안 쓴 관광객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 다닌다. 바다 근처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넘어온다. 호텔로, 마트로,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해수욕을 끝내고 마스크를 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근처 대형마트에 들른다. 기침을 하며 편의점에 들어오고, 무리 지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다. 마스크는 패션 소품마냥 목에 걸치고 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없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계산을 하며 내 앞에서 기침을 하더라도 물건을 가져오며 계산을 해야 한다. 숨도 못 쉬게 답답해도 마스크를 꾹꾹 눌러쓰고 손님 한 명을 보낼 때마다 손 세정제를 쭉쭉 눌러 손을 문지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은 고작 그것이 전부다. 엄마는 이 더위에 두꺼운 마스크를 끼고 그늘도 없는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엄마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고기를 먹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다. 엄마는 연신 불안해한다.
고기를 먹으러 온 그들은 코로나에 걸려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니다. 코로나가 걸리는 순간 끝이다. 대출이자며, 보험금이며, 생활비며,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이 생긴다. 혹여나 내가 편의점에서 코로나라도 감염되면 엄마도 함께 강제로 쉬게 된다. 병원비도 걱정이지만 해고가 더 무섭다. 코로나에 걸린 편의점 노동자는 바로 해고될 테니까. 사장의 인심에 기댈 수 있을 뿐이다. 해고하지 말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보잘것없는 우리 집의 작은 안정이 너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위기감이 커지니 수시로 오는 재난 문자에 민감해진다. 사람이 많은 카페가 위험하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했다. 찾고 찾아서 사람이 없는 카페에 테이블을 띄우고 앉아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앉아 있을 엄두가 안 난다. 앉자마자 재난 문자가 온다. 내가 피신해 있는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 집회로 갔던 사람들이 확진되었다. 검사를 받으라고 애원하는 문자가 온다. 그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누굴 만나고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같이 숨 쉬고 있을까 봐 무섭다.
두렵고 무섭다. 깔끔하게 죽는 일은 무섭지 않다. 어쭙잖게 살아남아서 해고당하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작은 안정이라도 무너질까 무섭다.
걸려도 괜찮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섭고 불안하다. 그래서 그 버스를 대절해서 서울로 향했던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무엇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될 위기를 가져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