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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23. 2020

<유령 소리>

손님의 등장을 알리는 요란스런 벨소리

‘띵똥’


‘후다닥’


아무도 없다. 편의점은 특별한 매장이 아니면 혼자서 근무하는 것이 기본이다. 혼자서 계산도 하고, 청소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한다. 다른 업무는 숙련되면 그럭저럭 혼자서 할 수 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은 WIC(work in cooler)를 채우는 일이다. 음료수와 맥주가 들어있는 냉장고를 채우려면 그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서 맥주와 음료를 정리하다 보면 바깥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작은 가게라면 문 열리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로 손님을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매장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가게 문 입구에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바람에 반응하는 ‘알리미(?)’를 설치한다. 공식명칭은 '도어 모션 센서'라고 알고 있다. 문이 열리면 ‘띵똥’하는 소리와 함께 손님의 등장을 알린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별것 아닌 이 도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일하는 입장에서 안정감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단점도 있다. 소리를 울려서 노동자들이 나와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소리가 엄청 시끄럽다. 기와집에 있는 풍등과 같은 아름다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귀를 긁어대는 전자음 소리가 들린다. 하루에 근무할 때도 수백 번 그 소리를 듣게 된다. 손님이 적은 새벽 시간에 혼자 냉장고를 채우다 보면 귀에서 ‘띵동’소리가 들린다.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 냉장고에 들어온 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환청’이 들린다. 손님이 들어올까 긴장하고 불안한 마음이 환청이 되어 나타난다. 가끔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바람에 문이 열려서 소리가 나기도 한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 알아서 열리는 문과 큰 소리를 내며 울리는 기계는 공포스럽다. 


‘환청’에 시달리다 보니 나름의 판별법도 생긴다. 머릿속에 울리는 첫 번째 ‘띵동’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한 번 더 소리가 울리면 그제서야 카운터로 뛰어간다. 경험상 환청은 한 번만 일어난다. 두 번째도 울리면 그건 진짜다. 창고가 깊이 있거나, 매장 규모가 큰 경우에는 카운터에 손님들이 누를 수 있는 벨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 문만 열리면 난리가 나는 벨 소리보다는 손님들이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부를 수 있는 벨이 더 좋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벨 소리는 엄청 신경을 긁어댄다. 가끔은 일을 안하는 날에도 집에서 '띵똥'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야말로 환청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직업병이겠고, 누구나 일하면서 생기는 불편함이겠지만. 추운 겨울에도 덜덜 떨면서 냉장고를 채우다가 튀어나오고, 한 여름에도 땀 흘려가며 일하다 나온 노동자에게 늦게 나온다고 타박하는 그런 손님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결국 손님의 편의를 위해서 노동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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