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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새벽 1시>

by 바다

<5.18>


지난 주말 5.18 새벽 1시. 신선식품 폐기 처리를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5.18일 새벽 2시로 표기되어 있는 신선 식품을 폐기해야지’ 하는 생각만 했다. 삼각김밥 3개와 길쭉이 김밥 3줄을 꺼내고 포스기로 폐기를 찍었다. 퇴근을 기다리며 작은 주황색 의자에 앉았다. 멍하니 있다 머리에 전기가 번쩍. 지금은 5.18일 새벽 1시였다.


5.18을 무엇이라 기억하는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의 생일 일 수도 있고, 주말이었으니 신나는 일요일이기도 할 테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 년의 수많은 날 들 중에 하루다. 나에게 5월 18일은 ‘광주 민중항쟁’(이 날은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는 너무 다양한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이 있었던 날이었다.


충격적이었다. 5.18을 삼각김밥 폐기 꺼내는 시간으로 기억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3년 전만 해도 이맘때는 항상 바빴다. 특히, 올해처럼 5.18일이 주말이면 새벽까지 광주역사기행을 준비하며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함께 광주로 가는 사람들에게 안내 문자를 하고 실수는 없을까 마음을 졸였다. ‘광주’를 사업으로만 대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나에게 광주란 무엇인지’ 마음속으로 혼자 고민하고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5.18일 즈음해서 망월동 묘역에 가지 않는 일은 자연스러워졌다. 광주에 가는 일은 고사하고, 5.18일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스러워졌다. 1980년 광주를 무엇이라 부르고, 어떻게 새겨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삶에서 저 뒤로 미루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삶의 위치가 바뀌면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광주가 인생에서 뒤로 밀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늘 머리엔 스트레스를 가득 넣고 다니고, 심장의 피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거꾸로 치솟던 대학 시절에는 ‘광주’라는 단어는 감히 미루고, 잊을 수 있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다. 5월 18일에 광주로 향하는 일은 당연했다. 가지 않는 일은 죄악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은 광주를 역사적으로 ‘계승’하는 일이라 믿었다. 이 역사적 계승은 멈추거나,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삶에서 그런 순간은 오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수 십 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고작 몇 년 만에 광주는 삶에서 저만큼 멀어졌다.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입대를 기다리고 있고,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기라며 구색 좋은 이유를 잔뜩 준비했다. 현실적인 조건으로 유예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좌파적 삶’에 어디쯤 남아있다고 믿었다. 하나, 누구의 말처럼 그 존재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데, 그것이 저절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마음만 남는 일은 없다. 마음이 쓰이는 일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에서, 삶에서 떠나간 것이다.


한 번 살다 죽을 인생.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며 세상은 모르겠고, 우리 동네의 인간적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 흘러가는 데로 흘러오다 보니, 그 최소한의 마음도 흘러갔다. 욕심과 집착과 불만이 인생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이 커졌다. 광주와 삼각김밥 폐기의 무게가 후자로 더 무거워지는 삶이다. 광주로 기울기를 바라지 않지만, 광주가 아주 조금은 더 무거웠으면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만. 고민과 시간과 에너지의 뱡향을 조금 틀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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