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이제서야 쓰는 영화 리뷰. 김정근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전작 '그림자들의 섬'을 봤었는데, 인상 깊었다. '한진중공업'을 중심으로 해서, 조선업, 노동자, 투쟁, 노동조합 등에 관한 이야기를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풀어나간다. 그 시기를 함께 보내지 않았어도 사건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의 표정을 통해서 그 일들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노동'에 관심이 많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가 좋은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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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층층이 둘러싸고 있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노동자는 기관사 혹은 고객센터 노동자 정도다. 운이 좋으면 설비 보수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철이 안전하게 운행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땅 밑에서, 정확하게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노동하는지 면밀하게 관찰한다. 종착역에서 지하철을 보수 유지하는 노동자들, 지하철 운행 전 새벽, 지하철 선로를 체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거대한 지하철 역사 전체를 물청소하는 청소노동자들, 걸어 다니면서 균열을 체크하는 노동자들까지. 땅 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부분에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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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단순히 이 다양한 노동을 동일선상에서 나열하는 식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초반부에 노동을 나열하고,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 노동이 동일한 대우를 받지 않음을 드러낸다. 정규직인 노동자들과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특수 열차를 타고 선로 체크를 하고, 하청 노동자들은 직접 걸어 다니면서 체크를 한다. 새벽에 선로를 청소하고, 위험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하철 공사 유니폼을 입고 일하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각자 소속된 하청업체 옷을 입는다. 앞서 나열된 노동들이 그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층층이 위계로 분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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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청소년들이 지하철 하청업체에 취직을 하고 일하는 이야기에서 꿈의 직장이라는 '지하철 공사'는 특정한 정규직 직군의 사람들에게만 꿈이다. 특성화고 청소년,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다쳤을 때 산재 신청을 하는 것이 '꿈'이다. 몇 년을 같은 공간에서 노동을 하지만 업체가 바뀔 때마다 해고 불안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들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노동하는 일이 마냥 즐겁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규직 직군의 사람들도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지하철 표 무인 판매기가 자연스럽지만, 10여 년 전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노동자들은 시대의 흐름, 경영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모두 해고당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싸웠지만,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무인, 디지털이라는 이름 안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해고와 설움이 들어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일자리들이 기계와 인공지능, 효율화를 통한 폐지의 수순을 밟고 있다. 저항하는 노동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떼쟁이' 집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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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흐름은 지하철 노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관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 지하철에 무인 노선이 생기면서 기관사들도 '불안'에 시달린다. 지하철 기관사들은 1인 근무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힘들어한다. 일상적인 죽음의 불안과 싸우고 있다. 더 나아가 해고의 불안이기도 하고, 해고도 아닌 업무의 폐지를 걱정한다. 무인 지하철을 타고 기관사 적성능력 검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 기관차 노동자의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를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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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꿈꾸던 영화라 보는 내내 즐거웠다. 노동자들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노동자들이 세상에 나올 때는 항상 싸울 때뿐이라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은 싸움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동자는 '싸움'이 직업인 사람들로 바라보기도 한다. '직업 시위꾼'같은 표현을 써가면서 말이다. 이 영화는 '싸움' 뒤에 가려져 있던 노동자들의 '노동'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종점을 지나친 이후 지하철을 수리하고 만지는 노동자들. 열차가 운행되기 전에 선로와 대합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 지하철이라는 거대한 공공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이름의 노동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땅 밑에 있지만 그들은 항상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노동이 없이 우리는 안전한 지하철을 탈 수 없다. 그들의 노동이 제대로 대우받아야 하는 이유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한 청소노동자의 인터뷰였다. 청소 노동을 하면서 처음엔 다른 사람들에게 '청소일'한다고 부끄러워했던 그 노동자는 이제 자신의 노동이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청소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고 열심히 하기 위해서 노하우가 필요하고 기술이 필요하다. 아무나 가져다 놔도 잘 할 수 있는 그런 뻔한 일은 아니라고 자부심을 내보인다. 이제 어디 가서 자신이 '청소노동자'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모습도 종종 본다. 어쨌든 자신은 노동을 하고 있고,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일'을 한다고 해서,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하청 노동자라고 해서 일을 대충 하거나, 그 노동이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최선을 다해 해낸다. 그에 자부심을 느끼고, 임금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살아간다. 어떤 노동도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할 뿐이다.
단순히 싸우고 소리치는 빨간 띠를 두른 노동자가 아니라.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 청소 일을 하며 힘들기만 하고, 아프기만 한 노동자가 아니다. 청소 일을 하며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노하우를 만들고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다. 그들은 단순히 힘들기 때문에 직 고용이나 처우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보람차고. 이 일을 하면서 더 존중받고 싶기 때문에 싸운다. 이 영화는 이런 의미에서 정말 '노동'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노동의 현장, 그 현장에 정서와 분위기. 그로 인한 어려움과 자부심. 그것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싸움과 투쟁. 또 다른 일상. 노동자의 삶이 비참하거나 힘들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노동자는 싸우기만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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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은 직고용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는 '비용'을 이유로 직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시와 공사는 자회사를 이용한 직고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새로운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며 자회사를 통한 직고용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