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던 누렁이들과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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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버스 왼쪽 창에 바짝 붙어있었다. 폐지로 추정되는 물건을 가득 싣고 걸어가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폐지를 모아가시나 보네. 무거워 보이는데 힘들겠다.'
시선을 조금 더 앞으로 돌리니 할아버지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누렇게 변한 노란색 줄이 보였다. 그 줄의 끝에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누렁이들.
즐겨보는 강아지 훈련사의 말에 따르면 강아지들은 자라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지내는 두 누렁이들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조건에서 지낼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인 내 시선에서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위험하고 위생적이지 않아도 누렁이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일 자체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서 여기저기 하루 종일 돌아다니실 테니, 누렁이들은 매일매일 신나는 산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산책을 하지 못해서 아프고, 초조해하는 강아지가 많은 도시이니 그런 의미에서 누렁이들은 정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강아지들은 보호자가 가난하든, 이쁘든, 착하든,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든 차별해서 사랑하지 않는다. 보호자라고 인식하면 어떤 조건에서도 보호자를 사랑한다. 무섭고 불안해서 이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하기도 하겠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늘 진심이다. 강아지들은 가면을 쓰지 않고,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다. 주인을 자신들에게 맞추어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그 냄새, 느낌, 감각 소리를 인식하고 사랑한다.
누렁이들도 할아버지도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몸보다 큰 리어카를 끌면서도 강아지 줄을 꼭 쥐고 있었다. 빙긋 웃으며 두 강아지를 바라봤다. 어딜 가나 차가운 시선, 경멸에 가까운 동정을 받으며 살아왔을 사람. 강아지들은 그의 모습은 관심도 없다는 듯 냄새만 맡고 있었다. 그에게는 큰 위로이지 않을까. 강아지들과 함께 하는 매 순간이 감사하지 않을까. 강아지들은 몸이 누렇게 되어있었다. 그 흔한 애견미용이나, 빗질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애견미용이든, 빗질이든 사람 눈에 이쁘려고 하는 것일 뿐. 강아지들은 빗질 한 번 해주지 않아도 보호자와 함께 걷고 냄새만 맡을 수 있다면 행복해한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서로 존재하는 대로 살아가는 대로 맞추어 걸어가는 모습. 따뜻하고, 뭉글뭉글한 사랑이었다. 할아버지도, 누렁이들도 그 모습 그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