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에 새겨진 'SEX'>

길가다 시멘스 계단에 새겨진 'SEX'라는 단어.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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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길에 시멘트 공사 중이면 마르기 전에 글자를 적고 싶었다. 이름을 적기도 했고, 'DH' 내 이니셜을 남기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니셜을 남기고 옆에 내 이름과 하트로 연결하기도 했다. 한 번도 적지는 못했지만 꼭 쓰고 싶은 단어가 있었다. '섹스' 'SEX'. 섹스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꼭 적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섹스는 미지의 세계였다. 10대의 나에게 섹스는 대단히 신나고 멋진 일이었다. 직접 하지 않아도 단어를 외치기만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 10대 남성들은 '섹스!!'라고 크게 소리치는 일을 자주 했다. 강아지들이 '월월' 짖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해도 '섹스!'섹스!'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섹스'외치는 사람은 흔했다.


그런 행동은 그들이 받고 있던 스트레스와 불안을 표현하는 것이었겠지만. 왜 하필 '섹스'였을까. 10대 남성이었던 나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섹스'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섹스는 시원한 느낌을 줬다. 혼자 소리치고 떠나는 것. 내가 흥분되고 시원해지면 끝인 것. 삽입하고 사정하는 일. 섹스는 딱 그 정도였다. 그저 배설 행위였다. 강아지들이 감정 표현으로 대소변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그 시절에 스트레스는 늘 많았다. 배설해서 감정을 풀고 싶었다. 가장 극적인 배설 행위가 섹스였다. 10대에겐 금지된 배설이었다.


20대가 되어서 실제 섹스를 하게 되어서도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감정이든 사정을 향해 달려가는 행위 불과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와의 교감, 서로 안전하게 하기 위한 노력은 없다. 섹스를 크게 소리로 배설하던 때처럼. 그저 빠르게 몸으로 소리치고 사정을 하면 끝이다. 그 나른함과 시원함을 느끼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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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서야 '섹스'는 단순한 배설 행위가 아님을 배워가고 있다. 둘 사이의 관계의 교감. 성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신중해야 함을. 남성에게 섹스의 의미와, 여성에게 그 의미는 확연히 다름을. 함께 관계를 해도 남성과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두려움은 너무 다름을.. 그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이미 너무 많은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을.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감정을 배설하며 던지지 않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것. 자신의 해소를 위해 타인에게 두려움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은 말과 행동도 사회적으로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장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 배운다고 꼭 나아지겠냐만은 안 배우면 가능성이 없다. 우린 자연스레 폭력적으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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