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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24. 2024

기침.

느낌. 감정. 죄책감. 시간. 견딤.


오늘을 되돌아봅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사랑을 속삭였지요. 속삭였던 사랑이 문장과 단어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코끝에 강렬하게 느껴지던 당신만의 냄새와 은은한 목소리 나를 보고 슬며시 올라가던 입고리와 그를 마중 가기 위해 내려가던 눈꼬리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사랑은 지나간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순간이 유발했던 느낌과 감정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훗날 오늘을 기억하게 된다면 나는 당신의 냄새와 목소리, 그 표정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당신은 나의 죄책감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일 테지요. 나의 부와 모도 상상하지 못하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당신이니까요. 오늘도 그런 죄책감들 속에 보냈던 하루였습니다. 월급날을 맞이해서 이것저것 사들였던 물건들이 도착했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피하던 카드 사용내역 문자를 확인했지요. 월급날로부터 겨우 4일 지났다고는 믿기지 않는 사용금액을 확인하고 절망했지요. 오늘 내가 조금이라도 들떠보이거나 불안해 보였다면 이것들 때문이었을 테니 부디 당신의 탓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돈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통제하지 못해서 모조리 써버리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비하고 후회하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지요. 이 순환이 내 소중한 사람인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당신이 알뜰살뜰 모았을 돈에 손을 벌리게 되고, 당신이 계획했을 미래를 흔들고, 더 나아가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물론, 당신은 내가 이런 어려움 속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나를 탓하지도 책망하지도 않겠지요. 다만, 그 수치스러울 수도 있을 순간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오늘 당신과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한편으로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성격의 우유부단한 남성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압박하고 공격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여성과 살아가는 이야기였지요. 당신은 내가 저 영상 속 남성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이고, 당신 스스로도 나를 저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어찌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어리석게도 그 순간 느꼈던 위로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 다시금 머릿속에 카드사용 내역이 맴돌았습니다. 내가 받는 사랑과 위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었겠지요. 스스로를 이해해 보려 노력합니다. 어리석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당신을 도저히 놓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 코를 훌쩍이며 어제 왔던 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공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고 번잡합니다. 중년남성의 목소리,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섞여서 아주 불편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외출을 해서 그런지 당신과 나는 서로 번갈아가며 기침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당신도 어떻게든 집중하려고 애쓰는 중이겠지요. 우리는 견디고 애쓰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니 이 불편한 순간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겠지요. 순간을 견디고 넘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우리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하기에 참 소중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당신이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오늘도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서로의 기침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함께 견딜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 유일한 방안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사랑합니다. 나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내 삶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함께 시간을 견디겠노라 말해주는 당신이 사랑스럽습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건진 번잡한 말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서 쓰고 기록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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