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Aug 25. 2024

피해를 끼치는 삶

-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 신체는 부스러지고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겠지요. 느끼지 못하게 될 테니 '나'라는 것이 사라지겠네요. 스스로를 인식하지 않고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내가 사라진다는 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무섭고, 허무하고 슬프네요.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다 보면 꽉 막히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당신이 내가 저질러놓은 한심한 실수들을 치우다가 인생을 허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당신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나는 한심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하나도 정리되어있지 않은 책상에서 할부로 결제한 키보드와 마우스로 글을 쓰고 있지요. 나는 충동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면서 겨우겨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충동적으로 샀던 옷, 전자기기, 물건, 음식, 커피 따위들이 내 삶을 강하게 옥죄고 있지요. 그것들을 어떤 계획을 세워서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한 달 월급 들어오면 일부는 카드값을 내고, 일부는 대출금을 갚고, 일부는 또 생활비로 쓸 뿐입니다. 계획도 대책도 없이 대출만 남은 인생을 살고 있지요.


혼자만의 삶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롭고 무섭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다 보면 이 부분에서 생각이 턱 막힙니다. 고구마와 감자를 마구 욱여넣다가 목구멍이 막히는 것처럼 턱 하고 삶이 막힙니다.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당신이 스스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어떻게 소리 내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입버릇처럼 죽어야겠다고 말할 때 느끼는 감각이 그런 순간들입니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을지가 늘 걱정입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내가 저지른 것들을 해결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해도 그것을 받는 사람은 나름의 견딤이 필요하니까요.


-

글을 쓰면서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내가 가끔 바닥을 쓸고, 먼지를 털고, 빨래를 하는 이유는 내 게으름이 당신의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까 하는 두려움이 불쑥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더 이쁘고, 깨끗하고, 행복한 공간에서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면 좋으련만 내가 그런 사람이지 못한 것이 슬프고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돈을 빌리고, 마음을 의탁하고, 몸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언제쯤이면 이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나아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견디고 어제보다 덜, 저번달보다 조금 덜 저지르다 보면 언젠가 나아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불안한 마음에 나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순간에도 나는 한없이 불안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그저 견디고 시도해 볼 뿐이지만 얼른 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나에게 견디는 이 시간이 너무 길기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