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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Oct 16. 2024

보고 싶은 여보에게..

- 보고 싶은 여보. 한 밤에 고열로 시작되었던 내 편도염도 일주일째를 맞이하고 있어요. 우리 집에 와서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을 닦아주고, 쓰레기봉투를 묶는 일들을 해주는 여보의 등을 보면서 엄마에게조차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과 사랑을 느꼈어요. 속으로 여보가 너무 힘들어서 이제 못하겠다 그러면 어쩌지 하는 못된 생각들도 들긴 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여보의 목소리에 조금 더 집중했어요. 


- 병들어서 아파하는 애인을 지켜보는 여보의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상투적인 추측은 할 수 있겠어요. 걱정, 불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답답한 마음. 상투적이라고 표현했지만 나열하고 보니 너무 다 소중한 마음들이네요. 혹 그래도 느낀 것들이 있다면 만나서 여보 목소리로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 열은 거의 내려가고, 편도 붓기도 침이나 물정도는 삼킬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이제 문제는 그 일주일간의 고통이 몸에 새겨준 기억을 지워내는 것이에요. 편도가 가라앉은 지금도 물만 보면 목구멍의 고통이 되살아나면서 몸이 소스라치게 떨리고, 어떤 음식도 삼키지 않는 상태가 일주일 쯤되어가니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입으로 넣는 일 자체가 아주 무거운 삶의 과업이 되었어요. 내 몸은 배고프고, 무기력한 상태에 익숙해져 가는 중인가 봐요. 


- 최근 일주일 동안 매일 새벽에 2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부어오른 목을 붙잡고 앉아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그 2시간마다 매번 꿈을 꿨는데, 모든 꿈이 조금의 변주가 가미된 내 일터의 모습이었어요.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고, 내가 수치스러워하고, 못 견뎌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모습이 계속 머리를 지배했어요.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꿈이라도 여보와 소풍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 좋으련만 꿈조차도 일터에 국한되어 있으니 답답했어요. 몸이 아픈 것보다 더 끔찍했던 것 같아요.


-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완연한 가을날씨에 여보랑 하기로 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밤 산책을 나가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도 보고, 네일도 하고 싶었어요. 투병으로 그것들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이 속상해요. 내가 건강하게 걷고, 눈으로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지금부터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사랑하는 여보와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정말로. 아직 10월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몸이 괜찮아지면 나랑 같이 산책하고, 커피도 마시고, 같이 영화도 봐주세요. 데이트 신청하는 거니까 거절하지 말아요. 뀨


- 일을 시작하고 나서 A4 한 장을 글을 쓰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어요. 책도 안 읽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뇌근육이 굳어가는 것 같아요. 더 굳어버려서 여보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꾸준히는 아니겠지만 여보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날마다 한 자씩 어설픈 글을 써볼게요. 몸짓하면서 몸 안 다치게 조심하고, 집에 갈 때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보고 싶어요 여보. 사랑해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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