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1)
- 스스로가 생존하기 위한 모든 양분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외부를 통해서 흡수하고, 외부의 에너지를 통해서 만들어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사회과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지만 일단은 그렇다. 이 존재의 '자립'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나 같은 범좌파들이 좋아하는 학자들은 근원적 의미로 인간은 '자립'할 수 없다 주장한다. 말 그대로 주장이다. 자립의 불가능성에 이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나는 누군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도움을 주고만 싶다는 시혜적 마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를 권력자의 위치로 만들어준다는 감각. 도와주는 사람 = 좋은 사람이 아니다. 도와주는 사람 = 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선행하는 이들을 동경하는 것에는 사회적으로 덧칠해진 '좋은 사람'되기 외에도 근원적으로 여유 = 힘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 역시 깊고 어둡게 자리 잡고 있다.
의존(1)
- 의존은 부정적이다. 자립에 실패한 이들이 시도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의존하기. 스스로 충분한 경제력을 마련할 수 없는 이들은 국가와 공동체에 의존하고, 스스로 충분히 건강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노동과 사회적 제도에 의존한다. 우리는 모두 결국 병들고 죽어가기 때문에 종국에 모두 자립에 실패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는 개인, 눈에 보이는 어떤 건물과 장비,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존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선한 마음에도 의존한다. 그 의존은 궁극적이기에 의존의 순간에 도달하지 않기를 모두가 소망한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의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홀로서기. 홀로 선 것처럼 보이기.
돌봄(1)
-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것. 포인트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띄게 돌봄 받는 것은 어떤 경우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고, 자립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인다. 수치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견디고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 수많은 블랙요원들이 나를 몰래몰래 암암리에 돌봄 해주길 바란다. 몰래몰래 나를 양해해 주고 봐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돌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것 같은 착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상호존중(8)
- 동어반복이다. 슬 지친다. 사람이라면 상호존중 해야지. 나의 단점을 가진, 명백한 결점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타인을 존중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으로 나 역시 타인에게는 거대한 단점을 가지고 있거나, 명백한 결점을 가진 존중하기 어려운 인간이다.
상호의존(9)
- 존중을 넘어선 상태. 'ㅅ'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 각자가 적당한 힘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순간. 그 서로 마주하고 있는 어깨와 견갑의 접점들. 한 명이면 오히려 기대기에 용이하지만 숫자가 늘어날수록 접점을 만드는 행위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사회와 세상은 일부일처의 가족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지 않는가.
추악한 의견(7)
- 위에 서술되어 있는 것들은 나의 추악한 의견이다. 사실도, 진실도 아니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다. 증명된 것도 아니고 실증된 것도 아니다. 허공에 떠다니는 내 뇌에 그려진 지도에 적힌 몇 가지 단어들에 불과하다. 비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