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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04. 2018

'존버'야 말로 글쓰기 말하기의 모든 것!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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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었다. 종이책은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다보면 끝을 향해가는 손끝의 무게 때문에 책 읽기의 흐름이 들쭉날쭉해서 손맛이 있다. E-book은 페이지의 변화를 느낄 수 없으니 일관되게 읽을 수 있는 면이 있다.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책들은 종이책의 손맛을 추구하고, 이래저래 한번쯤 접하고 싶은 대중서들은 E-book으로 읽는 것도 괜찮다. 가방에 책을 많이 넣으면 너무 무거우니 틈틈히 e-book을 활용해야겠다. e-book은 손으로 직접 정리하면서 읽기가 힘들어서 책을 읽고 난 뒤에 책 리뷰를 작성할때 어려움을 겪는다. 더 기억하기 위해서는 더 집중해서 읽거나, 아니면 아주 편한 마음으로 기억 속에 남는 것들로만 글을 엮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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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대통령의 글쓰기'여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에 대해서 비교해서 설명하는 류의 책인줄 알았지만, 정작 등장하는 것은 본인이 직접 겪었던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뿐이었다. 책을 다 읽고서 생각해보니 이승만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까지 이어지는 권위주위의 시대의 대통령들의 연설은 그 자체에 들어간 노력이나 문장력으로 파급력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한 이야기한 '사건' 이역사에 길이남을 만한 충격적인 내용이었을 뿐이었다. 이승만의 서울을 지키겠다는 거짓 방송연설, 박정희의 호헌발언, 전두환의 계엄과 직선제,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 등등 그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충격적이었지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큰 신경을 두지 않았다. 애초에 권위주의 국가체제에서는 설득이니 토론이니 하는 것들은 법전과 총칼 앞에서 무용지물이니 그런 사소한(?) 부분에 신경쓰지 않았을 듯 하다. 그러니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민주화운동의 거두의 말과 글에 대한 태도가 글의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이 중요한 '사건'을 말함으로서 그 말을 중요하게 만들었다면, 이 두 대통령은 '말'로서 '사건'을 만든 대통령들이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 어쩌면 민주주의가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척도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드디어 국민이 진압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설득과 토론을 해야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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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얻고자 읽은 책은 아니었다. JTBC예능 중에서 말하는대로 라는 '버스킹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이 책의 저자인 강원국이 나와서 강연을 했던 것이 떠올라서 다운받았다. 딱히 얻고자 한 바가 없어서 책 전반을 평이하게 읽을 수 있었다. 글쓰기 책이라고 소개되어있긴 하지만, 정작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배웠던 것은 '글쓰기의 스킬'보다는 강원국이 이야기하는 두 대통령과 글을쓰고 말을 하는 사람의 '자세'였다. 

책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달변가이자 문장가'인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모두 글쓰기와 말하기에 있어서 신중하고 겸손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원칙과 소신을 꾸준히 견지했다. 김대중대통령은 예의있고 격식있는 말과 글, 노무현대통령은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글과 말의 탈권위를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를 이유로 일상어를 많이 사용했고, 그래서 그런지 유독 짤로 활용되는 말이 많은 대통령이다. 조금은 다른 이 두 사람의 글과말을 어느 누가 더 좋으냐 식으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두 사람의 말과 글의 원칙은 그 두사람의 삶과 지향이 결정한 것이기에 옳고 그름이나 비판을 하는 것의 무용하다. 글과 말이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을 그리는 도화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을 비판하는 건 그리 가볍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오히려 그들이 글과 말을 함에 있어서 가졌던 태도들은 그 둘의 글쓰기 말하기의 스타일 차이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둘은 말을 하기 위한 글을 쓰면서 항상 신중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대통령이라니 자리의 파급력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평소에 그런 자세로 글과 말을 대해오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저렇게 바뀔 수 없다. 글 못쓰고 말 못하기로 유명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좋은 예시이다. 누가봐도 글과 말을 멀리해온 그 분이 대통령이 된다고 갑자기 성실하고 유창한 말과 글을 선보이지는 않았다. 부족했던 그 글과 말들도 결국 누군가가 대신 써줬던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한 겪언으로 사용한다. 글을 쓰려면 일단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서 고민을 해야한다. 말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존재한다. 엉덩이로 글을 쓰라는 말은 그 괴리가 유독 심하다. 그 말대로 오래 앉아있는다고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루종일 글을 쓰고 말을 하기 위한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글을 한번 써볼까?'하고 생각을 시작하지 않았다. 둘다 엄청난 메모광이었다고 하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메모를 하고 걷다가 밥먹다가도 메모로 생각을 저장했다. 그 결과 생방송으로 국민과 맞짱토론(?)을 해도 어느 주제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정리된 생각은 글로도 적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달변가인 이 두 사람의 모습이 보여주는 것 처럼 저 겪언은 글은 하루종일 일평생 꾸준히 생각해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매 순간에 생각을 끝까지 이어나가고 그것을 정리하는 습관과 노력이 어느 순간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달변가를 만들고 어느 주제의 글도 읽고 쓸 수 있는 문장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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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활동가이고 단체의 대표와 같은 자리를 많이 맡아서 발언을 하고 대표로 글을 써야할 일이 많았다. 부끄럽게도 수 많은 발언과 글쓰기 중에서 체계적으로 미리 준비하고 연습하고 고민해서 작성한 것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운이 좋게도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왔던 주제의 발언이라면 미리 준비한 것 처럼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지만, 평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발언에서는 청중의 분위기를 쎄하게 만드는 발언을 하기 일 수였다.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만찬에서의 발언하나까지 미리 고려하고 상의하는 두 대통령의 글쓰기와 말하기 태도에서 큰 감응을 받았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글과 생각을 접하고, 그것을 나의 생각으로 다시 정리한다. 그 메모들을 바탕으로 발언과 글을 작성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탈고를 한다. 또 그것을 나의 감정과 발음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수십번이나 읽고 표정을 연습한다. 그 뒤에야 하나의 글이 발표되고,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앞으로도 발언을 하고 글을 쓸 일을 하고 싶고, 의도적으로라도 많이 만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제 만나는 그 기회들은 하나하나 소중하고 신중하게 준비하고 싶다. 단 한 명이 듣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그것에 대해서 무한히 고민하고 무한히 쓰고 무한히 수정하는 노력이 나를 좀 더 좋은 문장가, 발언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돌아가신 위대한 달변가이자 문장가인 두 대통령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와 명복을 빈다.
나도 혹여나 삶을 정리하고 저 세상에서 두 대통령을 만날 일이 있으면 덕분에 글쓰기와 말하기에 많은 감응을 받았다고 두 대통령을 주제로한 연설을 들려주고 싶다. 


다시 한번, 글쓰기와 말하기는 수만가지의 정리된 생각과, 수천개의 정리된 메모, 수백번 수정된 원고와, 다시 수십번 읽고 읽은 원고에서 만들어진다. 그야말로 자기와의 싸움과 노력 그 뿐이다. 요즘 말로하면 '존버야 말로 글쓰기와 말하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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