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May 03. 2018

나는 '가난해서 가난하다'

경제적 위기의 절벽에서 다시 만난 가난과 나

-

가끔 "왜 나는 가난할까?"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럴 때 마다 답은 다양하게 나온다. '돈을 잘 쓰지 못해서' '충동적 소비를 많이 해서' '취직을 하지 못하고 알바나해서' 등등. 그러다 '돈이 없어서 돈이 없는' 자포자기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답은 하나로 압축된다. '나는 가난해서 가난하다.'


-

나는 주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65만원 정도되는 돈을 번다.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치고는 엄청 많은 돈을 받는다. 시급도 8300원에 그 받기 힘들다는 주휴수당, 저녁에는 야간수당도 받는다. 밥도 식대로 챙겨먹는다. 좋은 조건이지만 노동시간 자체가 짧아서 돈이 그리많지 않다. 통신비, 교통비, 적금약간, 주택청약조금, 이것저것 돈쓰고 나면 마이너스다. 카카오뱅크에서 받은 50만원짜리 생활비대출금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밥먹고 다니기도 힘들 것이다.


아껴쓰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모든 인간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고, 책을 사지 않을 수도 없다. 핸드폰을 없앨 수도 없고, 노래를 안들을 수도 없다. 김밥 한줄 먹고, 왠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자신도 그런 삶을 원하지 않으면서 왜 타인에게는 함부로 그런 삶을 요구하냐고 도리어 묻고싶다. 난 인공호흡을 받으며 누워있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싶다.


영화도 한편보고, 관심있는 신간 책들도 구매하고, 옷도사고, 화장품도사고, 데이트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 아프면 병원도 가야하고 갑자기 비가오면 우산도 사야한다. 이것들 모두를 포기하라고 하면 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나에게 그런 삶은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다.


-

이번 달은 유독 지출이 많았다. 생활비 대출을 끝가지 몰아서 썼고, 교통비를 낼 돈이 부족해서 조금있던 적금에서 10만원을 빼서 채워넣었다. 위기감에 머리도 아프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든다. '다음달 부터 돈을 많이 쓰면 나는 짐승이다!'는 무의미한 다짐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있다. 내가 버는 수입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스스로 이번달 소비가 많았다고 평하고는 있지만, 소비가 많은 것이 아니다. 내 주말 알바 월급 65만원에 비상급대출금 50만원까지해서 115만원 정도가 나의 평균적인 생활비이다. 나의 수입이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 동안은 핸드폰 비와 교통비를 엄마가 내줘서, 조금의 용돈을 받아서 어떻게든 살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하는 (사실, 집값과 보험금 등은 엄마가 감당하고 있다.) 상황이 되니 아낄 수 있는 부위도 거의 다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수입자체를 늘려보려고 평일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 이왕이면 오후에는 책모임도 하고 다른 일도 하려고 오전에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생각처럼 잘 구해지지는 않는다. 돈이 없어서 급한 마음도 있지만, 주5일에는 늦잠자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좋아서 내심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절벽 끝에 다다른 이상 돈을 버는 것 외에는 큰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안다. 몸은 고달프겠지만 또 정신은 더 풍요로워지고 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해 쓸 수 있는 것도 더 많아 지리라 생각한다. 편의점 알바에 대한 책을 낼 정도로 원없이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군대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딱 7~8개월 정도는 내 인생에서  유래없이 두개의 일을 동시에 하고,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경제적으로 삶을 고스란히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몸소 느낄 생각을 하니 두렵다. 두려워도 살긴해야하니 나아가긴 할 것이다. 비록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

나는 태초에 가진 것 없는 집에 태어나서 가난하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난 더 가난해졌다. 일을 더 한다고해도 부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먹고 살만했다면 더 하지도 않았을 일이다.여전히 가난할 전망이다. 난 가난해서 가난해졌다.

하지만 가난해서 '돈과 가난'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남들보다 배로 많고, 가난해서 느낄 수 있는 '가난한 자들의 삶'에 대한 것 들도 몇곱절은 더 다양하다. 쓸 수 있는 글도, 이해할 수 있는 삶도 더 많다. 가난은 가난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 가난이 그저 나쁘거나 좋거낭 문제가 아님을 이해하고 난 스스로 '더한 가난'을 선택했다. 가난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가난이 나에게 불행으로만 남아있지 않기 위해서 더 사유하며, 더 고민하며, 더 움직이며 살아가겠다. 그럼에도 '나는 가난해서 가난하다'. 변하지 않는 '진리'같은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추신. 카카오뱅크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반쪽짜리 노동의 조각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