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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6. 2018

사다리타기와 여성혐오

진정한 남녀평등한 고용은 사업장 구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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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가게는 직영점이고 가게의 크기가 커서 엄청난 양의 물건이 배송된다. 야간을 제외한 오전 오후 아르바이트의 업무는 물건들을 검수하고 정리하고 진열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게에서는 한 명의 사람이 모두 하는 일을 한 명 더 고용해서 포스기에서 계산하도록 하고 한 명은 물건만 정리하고 진열하도록 하고 있다. 가게에 처음 들어올 때 부터 자연스럽게 여성 노동자는 포스기 앞에서 계산을 하거나 물건을 페이스업(뒤로 빠진 물건 앞으로 땡기는 작업)을 하고, 남성 노동자는 창고에 들어가서 물건을 정리했다. 이 시스템이 적용된지 어언 8개월이 넘어가는데 이것을 근거로 해서 혐오적인 발언들이 가게 내부에서 양산되고 있다.

남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불만은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이 훨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데 임금도 똑같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일마저 제대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가게에 창고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위치에 있어서 사다리를 탈 수 없으며 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거나 정리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사다리를 타는 일은 위험한 일이어서 기본적으로 긴장되고 어렵다. 남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이런 일을 자신들만 하는 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계산 기계'다 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치마를 입고 오면 사다리를 타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표현이다.'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또 함께 계산하고 일을 해도 시재가 안맞거나, 환전시재에 문제가 생기면 여성이 그랬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추측을 한다. 함께 일을 해도 남성들은 더 힘든 일을 하는데 사소한 것들은 여성이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여성들이 다 문제다' 라는 논리가 만연해 있다.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하는 남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이 가게에 여자는 필요없다'고 까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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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도 일을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일에서 우열을 가릴 것은 없다. 여성이 포스기에서 계산을 하고 가게 정리를 계속 해주지 않으면 남성도 창고 정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없어서 일을 능률적으로 해낼 수 없다. 그리고 손님이 많은 날에는 창고를 정리하는 것보다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 '감정 노동'의 양이나 강도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육체노동의 강도를 근거로만 해서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감정노동은 육체노동에 비해서 별 것 아니라는 '여성의 노동'을 '남성의 노동'에 비해서 열등한 것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이다.

더욱이 태초의 문제는 가게의 구조가 사다리를 탈 수 있는 사람만이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설계할 때 부터 창고를 사다리를 타지 않아도 되는 곳에 만들었다면 남성이 아니더라도, 사다리를 탈 수 있는 키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게가 공간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창고를 무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특정한 키와 근력을 가진 사람만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회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 문제이지 이미 그렇게 설계된 곳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노동자를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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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작으면 작을 수록,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가게의 구조는 '남성'을 위한 구조가 된다. 높은 곳에 물건이 위치하고, 사다리를 타야만 하고, 위험한 곳에 많은 무게를 한 번에 옮겨야 한다. 더 높은 키와 근력을 요구하는 구조는 더 많은 비용과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와 비례한다. 여성화장실을 남성화장실보다 일정크기 이상 크게 설계하도록 하는 것처럼 남녀고용평등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일터의 높이나 크기 등도 제약되어야 한다. 여성을 채용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구조는 남녀차별적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에서 남녀가 함께 이야기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남성들이 구조적으로 당당하게 여성을 혐오한다. '여자들은 이래서 안되'라는 것의 좋은 예시가 되어버린다. 또한 남성이 '주로' 하는 노동은 여성이 '주로' 하는 노동에 비해서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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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버셜디자인*은 단지 화장실이나 저상버스 등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건물에 필요하며, 일을 하는 곳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가게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키가 비장애인에 비해 매우 작은 사람도 일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단순히 아름다움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서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 들어와도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한다. 남성 비장애인이어야만 할 수 있는 노동을 줄여나가고, 임금에서도 격차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남녀성별분업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일터에서의 성평등도 가능해질 것이다.

*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 설계, 보편적 설계)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는 손아귀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해 과거의 원통형 문 손잡이를 레버식으로 바꾼 것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횡단보도와 만나는 도로 경계석의 턱을 비스듬하게 낮춘 것 등이 있다. 영국의 셀윈 골드스미스에 의해 처음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미국의 로널드 메이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설계"(Design for All)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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