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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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전업주부, 취준생, 백수(나)의 조합으로 맑스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라는 책을 읽고 있다. 과거부터 자본론을 읽고 공부를 해오신 남성분이 강의를 진행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강의를 사람들이 이해하려 애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맑스의 저작을 조금 읽어봤지만 체계적으로 읽지 않아서 흐릿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맑스의 저작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본론에 대한 강의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가치'라는 한 단어를 2주 동안 설명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난 모임에서도 힘겹게 강의와 이해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강의를 하시는 분이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 맑스를 꼭 읽어야하는 것일까요? 그것부터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말씀하셨다.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의 나는 맑스를 왜 꼭 읽어야할까?'
이 모임의 처음에 진행되었어야 할 질문이었지만, 체계적인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모임이 아니다보니 그런 질문은 없었다. 다들 그냥 호기심에 맑스를 읽었다. 자본론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알면 지식인이 되는 것 같았고, 시사 이슈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일하면서 느끼는 부당함이나 내 임금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스스로 계산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다소 편안하고 안일한(?)이유들로는 맑스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어려운 맑스의 저작과 생각들을 따라갈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임을 함께 하시는 분들도 너무 어려운 맑스의 이야기에 회의를 표했다. "내가 경제학을 배우려고 하는게 아닌데, 맑스가 궁금해서 한 번 읽어보는 건데.." "제가 정치를 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들을 읽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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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맑스를 읽기 위한 동력과 이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맑스는 어떻게 읽어야 주체적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때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떠올랐다.
"아! 이것이면, 이 생각이면 불평등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
1학년 때 동아리 합숙가서 어떤 선배가 진행한 공산당 선언 강독을 읽고서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에 학회를 하면서, 518에는 광주를 가고, 밀양에 지어지고 있는 송전탑에 대해 분노하고, 교수님의 해고에 맞서서 학교와 싸우고 있었다. 주말에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런 활동들을 하면서 한 구석에 있던 의문과 회의들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것들이 맑스의 공산당 선언의 문구들과 만나면서 희망으로 바뀌었고, 열정으로 전환되었다. 맑스의 이야기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하면 세상은 바뀔 것 같았다.
맑스는 철학자이기도 하고, 경제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학문적 이름은 '정치운동' 즉, '혁명가'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시선에서 세상의 존재를 설명해서 노동자 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경제학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를 규명해서 '사적소유 철폐를 통한 공동체 사회'라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확보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공산당 선언은 그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이었다.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노동자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힘을 모으고, 체제를 파괴하는 것에 인생을 바쳤던 인물이다. 그의 글은 그의 고민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은 것들이다.
이런 맑스의 글은 체제전환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 그것을 스스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읽기가 부담스럽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공포스럽고 혼란을 야기하는 이론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불평등을 직시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싸우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맑스는 등대다. 그의 말이 지금의 세상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비판적 사회과학'으로서 맑스의 사유방식과 저작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피지배계급의 시선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논쟁하고 싸우는 법을 만들기에 여전히 가장 유용한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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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가 맑스는 읽는 이유, 맑스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공산당 선언을 만난 뒤에는 의무감에 맑스를 읽었다. '운동'을 하니까 맑스 정도는 보아야한다는 생각에서 읽었고, 후배들에게도 맑스만을 읽어야한다고 강제아닌 강제를 했다. 의무감에서만 읽는 맑스는 나의 활동과 운동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고, 등대도 아니었다. 그저 바쁜 일정 속에 커다란 짐이었다.
활동을 한창 정열적으로 할 때에는 '짐'으로 느껴지던 맑스였다. 그런데 지금 활동을 쉬면서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맑스의 필요성을 더 느낀다. '의무'가 사라지고, 해왔던 것들도 사라진 자리에 현실의 불평등을 지켜보는 일이 익숙해져가는 속에서 어떤 것을 어떤 시선으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런 나에게 맑스가 새롭게 다가온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한 번 읽고, 완전히 이해하고 싶은' 사상가이고 혁명가다. 여성의 문제를, 생태의 문제를, 도시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를, 내가 관심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맑스의 틀로 이해하고 그 기준틀로 해서 활동을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 맑스는 낡아서 바스라져간다는 사람들에게 맑스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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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군가 나에게 왜 맑스를 읽느냐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난 여전히 현실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여성, 생태, 노동,청년,도시,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맑스의 틀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맑스는 죽지 않고 늘 새롭게 변모해왔다. 난 현실의 불평등을 이해하는 지적토대를 구성하기 위해 맑스를 읽는다. 맑스를 읽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운동을 만들어내고 평등의 정치를 실현하고 싶다." 맑스 탄생 200주년이다. 여전히 맑스는 내 삶과 주위 사람들의 노동과 사회 속에 살아있다. 맑스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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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90815057784634&id=506786072854202
잡지 사회주의자에서 설명해주는 맑스 저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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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hani.co.kr/arti/culture/religion/843449.html?_fr=fb#cb
김공회 선생님의 마르크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