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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이야기 1] 처음은 어렵다.

6.13 지방선거 운동 함께하기 첫 시작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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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선배와 지방선거 운동을 함께 했다. 처음에 함께 시작했다. 여러 가지 사정과 사연들이 겹쳐서 함께 하고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삶의 뱡향이나 목표를 다시 고민하던 차에 선배가 다시 제안해주었다.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 한번 쯤은 귀인을 만난다고 하는데 이 선배는 필시 내 인생의 귀인 중 한 명이다. 엉성하지만 사랑스럽고, 어리숙하지만 존경스러운 구석도 있는 그런 멋진 사람이다. 대학생활 중에 후회하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이 사람과 만나서 처음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만큼은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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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총 3~4시간 정도 선거운동을 했다. 이전에 선거운동을 하면서 반응이 좋았던 상가들에 들려서 인사드리고 새롭게 들어가서 반응이 좋은 상가들도 체크했다. 대학가 앞 낮시간에는 지역구주민들이 아닌 학생들이 많아서 주민이 확률이 높은 상가에 들어가서 인사를 한다. 상인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할 수도 있다. 함께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고 명함을 드렸다.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선배의 모습도 보고 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선배의 행보나 생각을 매우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객 한 명 잃지 않으려는 정도로 대충 상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정치인인 선배를 키워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몸이 민주당에 계셔서 아쉬워하는 분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 스트레스일 때도 있겠지만, 선배에게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거움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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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강하게 지지하는 (무려 선배에게 1표를 행사하겠다고 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주민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길거리 선거운동을 했다. 선배는 큰 피켓을 들고 도로에서 인사를 하고, 나는 주민들에게 명함을 드렸다. 선배는 '진짜' 정치인 처럼 인사를 잘했다. 버스가 지나가면 손도 크게 흔들고(손을 아무리 흔들어도 세상 무표정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감사합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등으로 다양하게 인사를 했다. 길에서 마주치던 그런 정치인 같아서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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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서도 몇번 씩 유인물을 나눠주는 일을 했지만, 활동을 쉬면서 거의 할 일이 없었다. 알바를 계속 했지만 종이를 나눠주는 일을 하는 알바를 하지 않았다. 꽤나 기간을 두고서 새롭게 시작하니 두려움이 컸다. 사람들의 무시와 냉소, 폭력적인 거절, 과도한 관심 등 온갖 걱정들로 머릿 속이 가득했다. 실제로 시작하자 걱정들을 하나씩 현실에서 마주했다.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만나고, 무시와 냉소하는 사람도 만났다. 대부분은 비아냥과 냉소 사이의 그저그런 반응들을 보였다. 그럼에도 어떤 반응과 마주할 때마다 긴장되고 힘들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계속 부딪히는 것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예전에 활동하던 시절에는 계속 머리가 아프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할 때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더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 때 알았다면 적당히 다른 방법을 찾아가면서 했을 텐데하고 후회도 조금 했다. 어쨌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다음부터는 불안장애 약을 꼭 주머니에 넣고서 선거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도 중간에 한 번 너무 힘들어서 잠시 애인과의 통화로 재충전을 하고 진행했다. 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시는 분이 있으면 즐겁기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계속 쳐다보고 무엇인가 요구하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내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나에게 큰 피해가 올 것만 같다. 특히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40대 중년남성들이 가장 두렵다. 의도적으로 40대중년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는 명함을 안 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치고 위협한 것 처럼 그들도 나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의 선거운동은 주로 2030대 젊은 층이 목표라 다행이히도 중년남성들을 덜 신경써도 되었다.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다음에 의사에게 가서 증세를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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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나 종이 유인물 등을 나누어 주는 것은 타인의 안전거리를 끊임없이 침범하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안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거리 안에 타인이 들어오면 타인을 인식하고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고 공격과 방어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응을 보인다. 지인이 아닌 완전하게 안면식이 없는 타인일 경우에는 극도로 경계하게 된다. 안전거리의 침범은 명함을 받는 사람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무서운 일이다. 누구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내밀며 종이를 나누어주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다. 본인이 지지하거나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명함 나누어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보면 어떨까. 명함을 나누어주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안전거리를 끊임없이 침범당한다. 타인에게도 위협을 주지만, 자신도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 예측할 수 없는 위협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게 되면 그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계속해서 정글에서 야생동물과 대치하는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이나 활동을 하다보면 이 서로의 안전거리를 보호하면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SNS이나 글, 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전거리를 서로 보호하면서 더 친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와 그것을 통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다. 수십명이 함께 명함을 뿌리면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위협과 부담은 커진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함께 대응하면 된다는 안정감도 생긴다. 비빌언덕을 많이 만드는 것이 최고다. 그 비빌언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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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나눠주다보면 나의 정치적 생각과 다른 일을 해야할 때가 있다. 오늘 사람들에게 나눠줄 명함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선거권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젊은 2030대를 육안으로 판단해서 나눠주었다. 중간중간에 교복입거나, 체육복을 입거나 육안으로 10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지켜보고 지나갔다. 부족한 명함을 만지작 거리면서 애써 못본 척 하고 명함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내 정치적 신념은 모든 청소년에게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함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조건속에서 신념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배의 지역구에만 총8명이 출마해서 한표한표가 정말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뒤라 더욱 그랬다.


지금은 물건너 가버렸지만 선거연령이 내려갔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18세가 투표할 수 있다면, 교복을 입은 사람 중에서도, 체육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도, 육안으로 조금 나이가 적어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선거권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런 특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선거 운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세상에서 청소년에게 명함을 나눠주는 것은 집에있는 부모님에게까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만, 18세가 투표하고 17세도 투표하는 세상에서는 그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삶을 대변하기 위해 명함을 나눴을 것이다. 선거권을 1살 내리고 올리고 하는 것이 큰 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삶과 행동에 있어서 큰 변화를 만든다. 그것이 단시 '시늉'이나 선거기간 동안에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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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폐지가 가득한 리어카를 끌고가는 할머니에게 명함을 준 것이었다. 리어카가 무거워 보인다는 이유로 명함을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 할머니가 폐지를 줍는 삶을 산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에 꼭 쥐어드렸다. 할머니가 조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리어카에 놔두면 안되, 내 손에 딱 줘"말하면서 명함을 본인의 전대에 넣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썬캡에 그림자가 생겨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할머니도 기분 좋게 웃으신 것 같았다. 대의제 사회에서 1인1표는 그 누구에게도 적용된다고 하지만 1표조차 가치없는 것이라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후보와 나의 선거운동과 나의 정당은 그런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 우리가 대변하고 함께 싸우고 이야기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오늘 만난 폐지줍는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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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거운동을 하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후보 본인이 지역에서 활동을 꾸준히 열심히 해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함께 해준 것이 많이 없어서 미안했다. 또 후보도 덩치 큰 남성이고, 나도 남성이라 선거운동할 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수월했다. 덩치가 작은 여성후보와 선거운동원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덜한 안정감 속에서 선거운동을 했을 것이다. 정치 공간에서 남성들이 주로 등장하고 그 공간을 지배하게 되는 원리와 감각에 대해 느꼈다. 우리 선거운동을 이점을 이용하기도 해야겠지만, 사회적으로 이점을 제공받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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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거운동은 다음 주 월요일이다. 알바다 뭐다 매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선거당일까지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최선을 하자. 평등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사랑스러운 선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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