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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선언,제안"김민섭 작가 강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작가 강연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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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님의 강연에 다녀왔다. 장소는 카프카의 밤이라는 작은 독립 서점이었다. 카프카의 밤은 이전부터 SNS에서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직접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더 좁아서 당황했고, 생각보다 더 좋은 책들이 많이 있어서 행복했다. 강연을 듣기에는 나에겐 좀 좁은 공간이지만 책을 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다음에 애인과 같이 놀러가야겠다. 위치치가 동네 골목에 있어서 지독한 길치인 애인과 내가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강연 장소 였던 카프카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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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협소해서 강연자와 듣는 사람이 서로의 피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김민섭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강연 공지글에 보니까 대리운전 하시는 분들은 공짜라고 하던데 오신 분이 있나요?ㅎㅎ"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대리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회적 시선 때문에 부끄러워서 들지 않은 것은지 정말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대리운전 하는 사람 공짜라는 말은 그 의도와 관계 없이 정말 '장난'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이곳까지 시간을 내서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오기가 힘들다. 이런 분위기와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 있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서 그 심리적 문턱은 더욱 높다. 올 수 있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강연도 의미있지만, 평소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강연은 어떤 식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져야할까. 꼭 강연만이 답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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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는 사람. 질문을 던지는 사람.


작가님은 본인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일 때 본인을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책에서도 느꼈지만 대학에서 만났다면 참 좋은 스승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었다. 답을 알려주고 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해서 떠드는 사람, 책을 줄줄 읽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다였다. 질문은 도서관에 있는 책에서 더 많이 받았다. 물론, 내가 많은 강의들에서 '질문을 찾는 사람' '질문을 얻는 사람'의 자세를 취하지 않아서 질문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 질문은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를 질문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질문은 일방적으로 받고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도 고민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질문은 우연히 서로의 고민이 만나서 구성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사람보다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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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들려준 슬픈 이야기가 한자락 있었다. 어떤 시간 강사 선배의 이메일에 10만원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메일이 와있었다. 그 답장으로 '자신은 방학 3개월동안 월급을 한푼도 받지 못해서 돈이 없으니 10만원은 빌려주기가 힘들다. 5만원을 빌려줄테니 꼭 갚아주었으면좋겠다.'이 이야기에서 작가님은 우리에게 10만원이라는 돈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이야기했다. 10만원은 어떤 노동을 하던 주5일 8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흔쾌히 빌려줄 수 있는 돈이다. 알바를 하는 나도 그렇고,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도 그렇다. 이 돈으로 하룻밤에 술을 먹는 사람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방학이 동안 아무것도 받지 못한 시간강사에게는 도저히 쉽게 빌려줄 수 없어서 5만원만 빌려주어야하는 것이었다. 시간강사의 삶은 정상적이지 않고, 사회의 그 어떤 바닥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지하의 삶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비단 '시간강사의 삶'일까? 아니면 그가 몸담고 있는 대학이라는 '조직'일까. 그 뒤의 이야기를 더 들으면 알 수 있다. 작가님이 결혼을 준비하는데 아내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결혼을 하는데 혼인신고는 하지 말자고 이야기한 것이다. 아내는 작가님에게 반장난 반진담으로 큰소리를 냈다.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이유는 '4대보험' 때문이었다. 지금은 각자가 부모님의 피부양인으로 등록되어서 보험료가 면제되고 있지만 결혼해서 세대가 분리되면 4대보험을 직접내야하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내야하는 4대보험료는 10만원 정도였다. 앞에서 선배가 도저히 빌려주지 못했던 딱 그 금액이었다.


작가님은 이 사실이 정말 비참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후배 시간강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대답은 정말 더 의외였다. 모두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당연하게, '우리 주제에 혼인신고는 어떻게 하니'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결혼을 하는데 10만원 보험료 부담을 할 수가 없어서 혼인신고를 미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다. 그 사람들 모두가 몸담고 있는 조직인 '대학'은 너무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작가님은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나서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되고나서 '슬픈 결정'을 하셨다고 했다. 생활비로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면서 강의준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논문쓰는 시간을 줄여서 돈을 벌기로 한 것이다. 이는 강사인 자신뿐 아니라 수업을 듣는 학생,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도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더 슬픈 일은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 돈을 대출받는 은행에서 일어난다. 은행에서 직업이 '대학 강사'라고 하니 '재직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것만 있으면 대출은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은행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재직 증명서를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재직 증명서는 정규직 교원들에게만 발급해주는 것이고 시간 강사는 교직원이 아니어서 재직 증명서를 떼어줄 수 없고, '경력 증명서'라는 것만 떼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서류를 가지고 은행에 가니 은행 직원도 이런 서류는 처음이라고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대출은 다른 곳에서 받았지만 노동을 서류로 증명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졌다.


결국엔 대학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만두면서 '자신, 시간강사는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해서 더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두는 순간에도 대학에서 사인하나 할 것이 없었다. 노동을 서류로 증명하지 못하는 상황. 대출도 받지 못하는 경력증명서. 나오지 않는 재직 증명서 '증명되지 않는 존재'라는 수식어만이 마지막까지 대학에서 본인에게 붙여준 딱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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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정도 된다. 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대학생, 대학자퇴생, 교수 등등 하지만 분명 대학의 구성원인 대학원생들의 자기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시간강사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학원생과 조교, 시간강사들은 자신들의 서사가 전혀 없었다. (사실, 나는 전혀 없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규교수노동조합도 있고 많은 비정규교수들이 대학의 구조와 싸우다가 돌아가시거나 길거리로 나앉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고 연대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서사는 분명 적었을지 모르지만, 싸움과 삶과 죽음의 궤적은 분명 있었다. 채효정 선생님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서효민 선생님 등등) 그래서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이 단순히 자신만의 글이 아니라 수 많은 '나'들을 연결시켜주는 '우리'들에 관한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오유에 올린 글에 수 많은 '나'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같았다면서 공감해주고 함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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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노동자란? 사회 속에서 사회인으로 살고있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였다. 대학을 그만두고 나올 때 제대로 된 서류 한 장에 사인하지 않았다. 반면에 맥도날드에서는 정말 감사했다는 말도 해주고, 퇴직금 서류에 사인을 하고 퇴직금을 주었다. 이것이 스스로를 노동자구나 하는 감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해주지 않는 것을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에서는 해주었다. 어디가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일까 고민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맥도날드가 훨씬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이었다. 물론 맥도날드는 그 자체로 좋기만 한 공간은 아니다. 법을 지키고 '최저'의 것을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으나 결국 마지못해 법이 강제하는 최저를 지켜줄 뿐이다. 최저기준을 지켜주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 썰) 헌혈은 사회에서 내가 쓸모있음을, 사회적 존재로 확인시켜주는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었다. 내 연구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늘 했지만 '그렇다'는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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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나와서 논술학원강사는 하지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자기 이전에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것을 보았다. 한 달에 100에서 200벌면서 타인의 글을 읽어주면서 늙어가는 것이 학원 강사의 삶이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기준으로 고민했다. '지방시' 책을 쓰고서 시간강사 선배들에게 욕먹었다. 그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오히려 교직원이나 교수님이었으면 개겼을 텐데, 동료들이 모욕했다고해서 버티기 힘들었다. 이것이 결정타를 날려서 대학에서 나오기로 결정했다. 공부를 대학 밖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나오게 되면서 대학에서의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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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쯤 글을 써보자고 결심했다. 2천만원 벌 수 있으면 계속 글을 쓰고 먹고 살자고 마음먹었다. 대학을 그만둔다는 글에 130만명이 읽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해서 문화면 1면 기사에 단독 보도 되기도 했다. 하지만 3개월만에 포기. 스터디 카페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 자신이가장 팔자 좋은 사람 같았다. 그것을 견디면서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자신은 노동을 하면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방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30년 동안 시간강사라는 노동과 맥도날드 노동이라는 것이 몸에 묻어서 언어화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사람의 몸에는 언어가 쌓인다. 노동을 통해서 사회와 관계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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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대리'

'사회는 타인의 거대한 운전석이었다.' 대리사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시간과 공간을 통제당하고 언어를 통제당하고 사유를 통제당한다. 질문하는 법을 잃게된다. 맥도날드 일을 하면서 '햄버거 나오셨습니다' 같은 말은 하지 말아야지하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말이 통제되고 말의 '톤'까지도 결정되어 있다. 자기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롭다. 현장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살아남는 것임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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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선언 그리고 책임지기 제안.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자신의 삶의 언어를 털어내는 고백이었다면, <대리사회>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분석하는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임지기, 대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대안은 '연결'에 관한 글들을 써 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으로서 존재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연결'되어있다. 선량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하는 것이 희망이 된다.


(나는 고백보다는 선언을 먼저 배우고, 했다. 학생운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선언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의 당위를 끊임없이 외쳤다. 그 다음 말의 마지막 활동의 막바지에는 제안을 했다. 활동을 하고 실천을 하고 말하고 쓰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변화의 대안이라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 모든 것들을 하고 정리하고 쉬어가는 시점이 지금이다. 나는 이제서야 고백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백이 즐겁고, 재밌다. 고백만 하고 싶은 심정도 든다. 하지만 고백의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해 가면서 다시 당위를 외치고, 대안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고백의 시간 속에서 고백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음을 다시금 알게되었다. 고백은 고백일 뿐이다. 그것을 선언으로 대안과 책임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우 인위인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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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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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후일담)

나는 강연을 들으면서 동의되지 않았던 것들이 많았다. 난 선량한 사람들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이데올로기에 선동당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선량하다고 하는 것은 본인이 아는 것만 존재하고 모르는 것은 자신에게 영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김민섭 작가가 시간강사의 서사가 대학100년사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그런 의미에서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대학의 부당함에 항거하며 싸우다가 죽은 시간강사가 어디 한 둘인가. 본인이 모르는 것에는 무던하며 본인이 몰랐기 때문에 일정부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고라고 생각한다. 난 항상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구조의 폭거에 항의하고 싸우는 불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자리였다.


강의에서 '연대'라는 단어가 나왔었다. 강의에서 연대는 '동원'되는 것이고, 어찌되었던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작가님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연결'을 이야기했다. 연대가 되려면 연결이 먼저 되어야한다. 자신의 일이라고, 자신의 문제라고, 자신의 삶에 여파라고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주체로서 삶의 전선에서 함께 할 수는 없다. 도리어 연대가 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결조차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연결은 연대의 전제다.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연대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겠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연대는 구 시대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연결은 새로운 것이 되어서 연결만이 목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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