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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6. 2018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인생의 지혜

윤태호 작가 웹튼 <미생>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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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작가의 <미생>을 읽었다. 원래 유행과는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한창 웹툰과 드라마가 유행할 때에는 보지 않다가 우연한 기회로 단행본을 얻게 되어서 틈틈이 책장을 넘겼다.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은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었다. 노동운동과 투쟁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고, 간지 터지는(!) 멘트들을 만나고 싶었다. 지인이 원래 송곳을 선물해주려다가, 미생과 헷갈려서 미생이 나에게 왔다. 사실, 나의 지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미생>과 <송곳>을 헷갈려 한다. 둘 다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윤태호 작가와 최규석 작가가 풍기는 향기도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가끔 편의점에서 노동을 하다보면 둘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직영점인 우리 가게의 점장이 본사의 팀장들과 싸우면서 힘들어하고 고뇌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짜증을 자신의 밑에 있다고 느끼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화풀이한다. 정규직 본사직원들의 버텨내야하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로 생존과 죽음이이 왔다갔다 하는 계약직 아르바이트 직원들 삶의 차이. 딱 그것이 <미생>과 <송곳>의 차이다. 화풀이 할 대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연봉을 받는 사람들과 시급을 받는 사람들, 고용되어 있는 사람과 고용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다양한 결로 <미생>과 <송곳>은 다르다.

<미생>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게 점장님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직장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도 집안일을 (아마도) 독박으로 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 직원들이나, 아파트 빚을 갚기 위해서 승진에 목숨 걸고 임하는 그의 남편의 삶은 <미생>의 그것과 비슷하다. <송곳>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가게의 아르바이트 생이거나, 우리 가게에 물건을 가져다 주는 특수고용노동자 아저씨들, 우리 가게가 있는 호텔에 있는 기술직 직원들 사무실의 스트레스가 잘못 튀면 자신들의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은 치열하고, 처절한 <송곳>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 두개의 만화를 비교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나눈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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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은 원 인터네셔널이라는 (현실에 있는 대우 인터네셔널이 모델이라고 한다.) 대기업 상사업체에서 장그래라는 계약직 직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장그래는 원래 바둑 프로기사를 지향하던 견습생이었는데, 결국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하고 바둑 후원자의 추천으로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온다. 엄청난 스펙의 주위 동료들과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자학하면서 회사생활을 이어나간다. 평생을 바둑만 보고 살아왔던 장그래는 그 모든 모습을 바둑의 눈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읽으면서 항상 어떤 장이 시작되기 전에는 바둑 기보를 보여준다. 바둑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해서 나는 그 장을 읽을 때면 머리가 아팠다. 뒷 이야기를 상징하는 기보일테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공부하고서 미생을 다시 본다면 장그래가 보는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하나의 세상에 미쳐 살다가 나와서 다른 세상도 자신이 미쳐있던 세상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봐도 다른 세상을 만나고 다른 생각들을 만들 수 있다. 장그래의 언어는 바둑이었는데, 그렇다면 나의 언어는 무엇일지 고민을 했다. 아직은 떠오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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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송곳을 보면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파일로 넣은 것이다.

처음 직원이 되고 자신에게 맡겨진 엄무를 처리하는 장백기의 모습이다. 분명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며 일에 집중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은 때론 큰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부담만큼이나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일이다.

"일이 잘될 때에도 취해 있는 게 위험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도 취해있는 것은 위험해요." 회사를 먼저 나간 직장 선배에게 오과장이 하는 이야기다. 늘 술에 취해있고 힘들어만 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위로 치고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말이 옳다고 느꼈다. 일이 잘되면 자신의 일과 생각에 취해서 쉽게 오만해지고, 일이 안되면 자책과 괴로움에 이성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어느 순간에도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꾸준히 만드는 노력은 그래서 언제든 유의미하다.

"같은 사람이고 싶다." 계약직인 장그래가 연봉계약 기간에 독백처럼 하는 말이다. 모두가 설레고 신나하는 시간에 본인만 다른 시공간에 있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낀다. 나도 주말에 일하다보면 주말에 사랑하는 사람과 쇼핑을 하는 사람과 그 쇼핑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나는 다른 존엄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평등의 감각은 우리를 비참하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동기가 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심적으로 우리를 외롭게 한다.

"허탈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행이다..." 장그래가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아웃당하고 독백으로 하는 말이다. 열심히 준비한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허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아이디어를 진행했을 때의 부담감이 떠올라서 선택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도 기획을 하고 일을 벌일때면 내가 낸 아이디어를 엎고 누군가 대신 해주기를 바랬다.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야한다는 부담감은 그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보다 대부분의 경우에 크다. 이 부담감을 혼자 가져가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부담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고급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임원들이 경쟁업체에 가게 되면 그 타격도 크지만, 기업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퇴직 이후를 관리해줘야겠지.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임원들이 결국 경영 합리화를 들먹이며 수 많은 계약직을 만들어내고, 해고자를 만들어낸 사람들 아닌가 싶었어." 은퇴한 기업의 고위 간부들이 기업 기밀을 누설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회사 돈으로 스위트룸에 월급을 주어가면서 사후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돈을 쥐어나가기 때문에 새롭게 일을 해야할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리를 비우게 된다. 이것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임원들이 배당금 잔치를 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들려오니 아예 거짓말 같지는 않다. 뉴스에 나오는 공식적인 임원들 말고도 더 많은 임원들의 입으로 더 많은 돈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된다.

그래서 정말 들어본거야. 우리 고집만으로 되는 일인 건지 어떤 건지 알아보려고" 일을 할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다가가면 상대방도 그것을 느끼고 자신의 목적을 끝끝내 지키려고 한다. 그 둘이 부딪히면 협상은 결렬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내 쪽에서 언제든 입장을 선회할 마음을 가지고서 다가가면 상대방도 자신의 입장의 타협안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고집'만으로 되지 않는 것에는 진심으로 선회할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다가가자. 오히려 길이 될 수 있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바꾸지뭐 정신'

워킹맘이인 차장의 가정 이야기.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라는 남편과 자신의 행복을 놓지 않기 위해서 직장을 지키려는 아내의 모습이다. 대기업에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아도 엄마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가부장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경력단절을 선택했을까. 다행히도 미생에서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자신이 행복해져야 딸에게도 행복한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멋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 행복을 막는 것들과는 단호하게 싸워야한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부터"

'근로자로 산다는 것.' 늘 죽음을 등에 얹고, 자신도 죽음과 마주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아가는 것. 무기력한 눈으로 서서히 죽어가던, 붉은 눈으로 더 빠르게 죽음으로 달려가던 이런 세상에서 근로자들의 삶은 모두 '죽음'으로 수렴한다. 죽음을 넘어서서 희망과 행복이 '노동'에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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