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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2. 2018

모두가 함께 나눠야할 '피의 연대기'

책 <생리 공감>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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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피 하면 드라큘라백작이나 잔인한 좀비영화, 살인마 등이 떠오른다. 피는 부정적이고 내 삶을 위협할 것만 같다. 티비를 틀어봐도 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워크래프트 라는 게임 세계관에서는 선량한(?)오크들이 악마의 피를 마시고 종족 전부가 타락해서 살인 밖에 모르는 광신도로 변한다. 헬싱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카드라는 극강의 흡혈귀가 런던시민들 전체를 피로 삼켜서 먹어치운다. 피는 저주의 상징이고, 타락과 종말을 연상시킨다. 
  
내 삶에서도 피는 무서운 것이었다. 몸에서 피가 난다는 것은 몸에 중대한 위험이 있어서 나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다리를 다치거나, 입술이 터지거나 몸이 아프면 피가 났다. 그렇다면 피는 꼭 부정적인 것일까? 어차피 피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여러 경험과 이데올로기들을 통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왔을 뿐이다. 우리 주변과 삶을 조금만 돌아보면 긍정적인 피도 존재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식해서 체했을 때 손을 따서 나오는 피다. 이 때 검붉은 피가 나오면 성공적으로 손가락을 딴 것이고 곧 있으면 체한 것이 가라앉는다. 과학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인간은 심장에서 시작된 피의 흐름이 온 몸으로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해줘서 살아간다. 몸에서 피가 나오면 아프지만, 몸 자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피다. 그리고 우리가 태아이던 시절부터 우리를 키워주는 것도 피다. 인간은 여성의 자궁 속에서 피를 통해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태어나면서 피로 젖은 상태로 태어난다. 피는 세상에 퍼진 이미지와 달리 성장과 생명, '삶'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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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생리 공감>은 영화 '피의 연대기'의 감독인 김보람 감독이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감독은 모든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를 흘리는 '생리'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더러운 것이나, 불경한 것 숨겨야할 것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생리는 태아를 성숙시키는 '생명의 피, 성장의 피'이고, 이제는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시선을 바꾸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에서 고대나 중세 서양과 동양에서 '남성' 학자나 종교인들이 생리를 불경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했음을 보여준다. 그 중에 몇몇 미신적 믿음들은 '생리가 옮는다'던가 하는 것들은 21세기에 아직도 자리를 잡고 유언비어가 되어 생존해있다.

책 내용의 절반 정도는 저자가 '생리컵'에 도전하고 그에 관한 느낌과 생각을 전하고 있다. 생리컵은 질 바깥에 부착하는 부착용 생리대와 달리 질 속에 실리콘 등으로 된 컵을 넣어서 생리를 컵에 받는 것이다. 컵이 일정 높이 이상 차오르면 컵을 꺼내서 피를 붓고, 다시 씻어서 사용한다. 생리컵이 있다는 것과 사용방법은 알았지만, 책에서는 십년째 하나의 생리컵을 사용한 사람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면 당연히 비위생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생리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십년째 사용한 사람의 생리컵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저자는 본인이 생리컵에 도전하면서 돌파해야했던 '선입견'과 '장벽'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중에 하나가 본인이 본인의 질에 직접 손을 넣어야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삽입 섹스 경험이 있는 여성이지만, 자신의 질에 자신이 손을 직접 넣을 일은 없었다. 파트너인 남성이 넣어서 애무를 해주거나 딜도를 사용해서 자위를 할 때 자신의 질안에 타인의 손이나 자신의 자위 도구를 넣는다. 격렬한(?) 자위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손 전체를 넣거나 해서 자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생리컵을 사용하기 위해서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질 안에 깊숙히 손을 넣고 '질 속 체험기'를 들려준다. 질은 우리 생각보다 매우 깊고 신축성도 뛰어다나고 한다. 생리컵을 통한 '질 속 체험기'는 단순히 자신의 질의 성질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해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면서, 불안감도 줄어들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항상 부끄럽고 수치스러워했던 것을 자신의 소중한 일부로 인정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작아서 부끄럽기만 했던 가슴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하고, 타인이 몸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일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생리랑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내 몸에서 흐르는 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피 흘림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수많은 용품을 생리 때마다 실험해 가면서 나는 점점 더 내 몸과 친숙해졌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질이라는 공간도 발견했다. 질이 단단한 근육이며 장보다 더 튼튼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다. 서로 원수지간처럼 지내던 마음과 몸이 2년에 걸쳐 서서히 공존할 자리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거울 앞에 선 나는 깨달았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그 순간 이상한 희망이 움텄다. 타고난 몸과 동행하며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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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스로가 생리컵을 비롯한 다양한 생리용품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경험을 했다. 책의 뒤 부분에서는 뉴욕시의 무상생리대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생리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뉴욕시에서는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생리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고 필수제에 가까운 것이라면 사회가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한국에서도 전 성남시장인 이재명 시장이 저소득층 무상생리대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얼마 뒤에는 한국에서 생리대를 독점하고 있는 합작회사 유한킴벌리 생리대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 정부에서는 검출은 되었지만 유해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수 많은 여성들은 독점적 기업이 제공하는 유해한 생리대를 반강제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친환경 국내기업으로 알려져있는 유한 킴벌리의 주주배당금의 90퍼센트는 해외주주들이 가져간다. 여성들의 필수품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서 해외 주주들 배를 불려주고 있는 형국이다. 

"  엄밀히 따지면 그 기업들은 한국 기업이 아니다. 주주 배당금의 90퍼센트가 킴벌리 클라크로 들어간다. 유한 킴벌리 이사 7명 중 단 1명만이 한국인이다. 한국 여성들이 흘리는 피로 인해 지도 밖의 누군가가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국가가 생리대 가격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리대는 생필품이다. 국가에서 그렇게 바라고 염원하는 출산율을 '책임지는'피를 처리하는 비용에 관한 것이다. 
  한 회사의 생리대 시장 독점 문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30년이 넘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깔창 생리대 이슈가 터지고 나서 비난의 뭇매를 맞자 유한킴벌리는 꼬리를 내리고 생리대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그리고 좀 더 저렴한 생리대를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딱 1년 만에 생리대 화학물질 파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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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총학생회에서도 무상생리대 자판기 공약을 내걸고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학생들의 비난에 시다렸다. '이제 등록금으로 여재 애들 생리대 사 주게 생겼다.' '생리대를 공짜로 줄 거면 남자 화장실에도 면도기 자판기를 설치해라' '생리대를 사서 써야지 왜 공짜로 달라고 하냐' 이런 비난은 남성 학생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공짜로 주면 누군가 전부 가져갈 것이다.' 같은 이유로 여성 학생들도 많은 반대를 했다. 본인은 비도덕적이지 않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비도덕적일 것이라는 타인에 대한 혐오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피의 연대기> 영화에도 출연한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처 : 네이트판

남자와 여자가 적대해서 누가 무엇을 더 많이 가져갈 것이냐는 식의 접근보다는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무엇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요구하고 시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방식의 논의가 무상 생리대에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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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는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를 것인가를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이 희박한 사회 속에서 '무상' '생리대'라는 매우 자극적인(?)문구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확신과 타인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로 나타났다. 국가는 여성의 자궁을 '소유'하려고만 했지 그 고통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출산율'이 떨어지니 낙태시술을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정부 정책들이다.


 사람의 신체나 사람 자체를 '소유'하려고 들지 않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 보호하고 이해하려는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터무니 없는 혐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응하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그 속에서 함께 싸우는 이들과 서로의 몸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생리와 생리대'가 단순히 한 달에 며칠 피흘리는 것 처리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듯, '생리와 생리대'에 대해서 논할 때 다양한 사회적 층위의 생각과 대안들을 함께 고려 해야한다.


이런저런 거시적이고 어려워 보이는 일들이지만 남성이라면 일단은 자기 주변에 있는 여성들의 생리주기를 함께 체크하고 생리 주기에 맞춰서 진통제라고 가지고 다니고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게 노력하자. 이런 모습들이 사회전반으로 퍼지면 그것이 생리를 보는 관점을 바꾸고 여성의 몸을 다루는 사회적 시선을 고칠 수 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부터 먼저 물어보자. "생리 주기가 어떻게 되? 그 날에 필요한 것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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