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Apr 30. 2018

'대학'시간강사와 '사회'활동가

책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를 읽고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일명 "지방시"를 읽었다. 2~3년전 쯤에 페이스북과 여러 언론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글이다. 제목 그대로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하는 저자의 이야기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들과 마주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감수해야 하는지, 어떤 불합리한 구조가 대학에 자리잡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으로 보여준다. 2부에서는 학생들과 강의를 하면서 서로 배워나갔던 이야기를 전달한다. 중간중간 저자가 생계를 위해서 하고 있는 '숭고한 맥도날드'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경험들을 만났다. 의무교육 시절에 책 읽고 사회,역사, 국어는 좋아했으나 수학,과학은 죽도록 하기 싫어서 지방에 있는 인문대학을 갔다. 학교에 들어가니 수학, 과학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잘 받았다. 조기 졸업을 할 수 있는 학점을 꾸준히 받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도 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니 내가 집안 사정 때문에 공부 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도록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했다. 인문학 동아리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으면서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저자의 대학교시절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포기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활동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원에 가면 책과 논문에 틀어박혀서 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 같았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져서 대학원에 들어가면 공부와 알바의 이중고에 시달리다가 아무런 행복도 찾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을 것이 두렵기도 했다. 가장 주요하게는 나는 연구자들이 쓰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표준규격과 인용, 철저한 논리적 근거와 체계를 들어 이야기해야만 하는 세계가 무서웠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글을 쓰고 연구를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글을 읽고 쓰는 즐거움도 잃어버릴 것 같아서 하고싶지도 않았다.


출처 : 노컷뉴스 / 채용비리 고발 중인 동아대학교 노동조합 조합원들


저자는 나와 달리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대학원을 선택한다. 저자는 예상했던 것 만큼의 어려움과 마주하기도 하고, 예상치도 못했던 어려움과 마주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은 가난한 집안 형편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과 학문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 하게 자신을 착취하는 '대학'이라는 시스템이었다.


"'대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다. 대학원생에서 시간강사로 이어지는 착취의 구조는 이미 공고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을 가속화해온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다. 그런데 대학은 스스로에게 숭고함과 신성함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동시에 그 어느 집단보다도 기민하게 자본의 논리에 영합해왔다. 흔히 대학은 그렇지 않을 거야, 하고 미루어 짐작하지만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노동권의 치외법권지대'에 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조교가 받는 거의 모든 보수는 학비 감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조교 장학금은 등록금의 인상 폭에 관계없이 10년째 그대로다. 교직원과 함께 일하거나 교직원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지만, 최저 시급, 주유 수당, 초과 수당, 4대 보험 등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안정망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대학은 학생의 노동력으로 행정 공백을 채우고, 그들이 내야 할 수업료를 일부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인건비 지출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동네 편의점도 노동부의 눈치를 보며 최저시급과 주휴 수당을 챙겨주는 형편임을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 대학은 거리의 편의점만도 못하다." p13
대학 본부 사무실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어느 부처를 가도 먼저 인사하는 것은 학부생 조교들이다. 이걸 왜 이 아이들이 하고 있지, 싶은 일도 한다. 도서관의 서가마다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역할 역시 학부생들이 도맡는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디를 가든 학부생 근로 장학생들이 있다. 결국 값싼 학부생의 노동력으로, 대학 사무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기업보다 한발 앞서, 비정규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더 이상 정규직 교직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조금 젊은 얼굴이 보인다 싶으면, 예외 없이 2년 계약 비정규직이다. 작년에 안면을튼 동갑내기 교직원이 있어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는 내게 여기 20대,30대 교직원 중엔 아무도 정규직이 없더라고요, 했다. 입사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수 선발에 있어서도 정년 트랙, 비정년 트랙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일컫는 대학가의 신조어다. 정년을 채운 교수들이 퇴임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지우고 비정년 트랙 강의 전담 교수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해임'한다. 대학은 나름대로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산 노동력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 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p114
그는 우리에게 반드시 조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미 조교 활동을 해야 등록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에, 의례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셋을 무척 당황케 했다. 요컨대 주 5일 근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급 근무를 방학 내내, 2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과하지 않은가 싶어서 신입생이 셋이니 로테이션으로 근무를 하면 안 될지 물었다. 그러자 사무실 쇼파에 앉아 이쪽을 귀 담아듣고 있었는지, 두 학기쯤 위의 선배 하나가 나직이 쟤 지금 뭐라는 거야, 라고 했다. 조교실장은 이것이 대학원의 전통이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p25


-
대학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착취당하고, 인격을 무시당하고 여러 가지 권리를 빼앗았다. 저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조교일을 하면서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물류창고 아르바이트, 중학생 내신 과외 등 모든 것을 다했다. 중간에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허망한 이유로 기회를 잃는다. 좌절에 눈물을 흘리며 부탁해보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도교수와 단 둘이 밥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가 교수의 마지막 말이 압권이다.


그래도 자네 살 만 했지,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태연하게 교수는 살 만했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의 삶도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해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놀랍지만 자신이 지도했던 학생의 삶을 저토록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암담하다. '대학원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너는 그 중에서도 괜찮은 편이었다는 저 한 마디는 저자의 어떤 한계치를 건드린다. 교수님이 다만 자신을 이해한다고 응원해주고 고맙다고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교수님이 했던 저 말이 역설적으로 저자를 더 살 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저자는 '대학'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좌절한다. 그러다 자신도 그 구조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후배에게 조교 자리를 추천하면서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 조건을 그대로 제안한다. '원래 이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 고 후배에게 이야기하고 자신도 '전통'보다 무기력한 '원래 그러함'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속에 비겁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왼쪽)이 사회활동가로 일하는 나

-

앞에서 저자의 대학생 초기 시절의 삶이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저자는 시간강사의 길로 가서 대학의 부조리와 학생들과 수업하며 배우는 즐거움 등을 얻었다. 나는 선택의 길에서 '사회활동'로 갔다. 대학 1학년 때 인문학회에 가입해서 한국근현대사에 대해서 배운 뒤로 5년정도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고발하고 해결하는 활동을 했다. 서로 길은 달랐지만 저자가 시간강사의 길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는 '사회활동가'의 길로 가면서 많이 느꼈다.

사회활동가나 시간강사나 둘다 가난하다. 활동을 하면서 먹고 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활동을 하지만 그러다보면 정작 본인도 어려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친구들과 밥한끼 먹기가 부담되고, 친구들과 만나서 내가 하는 일들을 자신있게 이야기하기가 두려워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주위에 친구가 점점 사라지고,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또 돈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여유롭게 보내기가 힘들다. 제일 바쁠 때는 친구들과 있을 때도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여러 가지 업무들이 몰려온다. 저자도 교수의 잦은 호출과 가난으로 친구들을 점점 잃어간다.

인문계 대학원에는 남자가 부족했고, 있다 하더라도 나와 '또래'인 이들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친구가 될 '동갑'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오늘 술 한잔하자, 내가 많이 우울한데 술 한잔 사줘, 나 오늘 월급 받았어 술 한잔 살게, 라고 말할 주변의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또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것이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인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젊은 시절의 객기'나 '할 일이 없는 놈들'로 나의 일과 동료들은 폄하된다. 가장 사회적이고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지만 사회의 기준에 미달되기 때문에  '반사회적인 존재'가 된다. 승승장구 하던 시절에는 괜찮았지만, 공든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활동가들은 외로워진다. 친구가 없거나,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사회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밤을 새우며 일을 했지만, 실업급여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그 흔한 국민연금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늘어난 것은 나이 뿐이고 남은 것은 병든 몸과 지쳐버린 정신이다. 저자의 직업인 시간강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반사회적인 인간이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듯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반사회적인 인간이다. 다른 노동자와 비교 할 수 없을 마큼 짧은 시간 표면적으로 노동하고, 사회가 원하는 소득과 소비 기준, 그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다. 일주일에 네 시간 노동(강의)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난한다. 강의 준비, 과제 첨삭, 개인 면담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노동의 시간이 오히려 더 길지만,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회성의 결여, 사회에서 함께 동시하고 있으나 동시하지 않고 있다는 느끼는 동시성의 비동시성, 이러한 외로움은 연애나 우정이나 가족애 같은 것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사회적'이지 못한 존재는 외롭다.

-
이렇다 보니 저자는 한달에 겨우60시간을 넘기는 맥도날드 노동에, 나는 일주일에 2번일하는 편의점 노동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진다. 적어도 이 노동들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판단되기는 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밑에 있는 것으로 치부되긴 해도, 스스로의 존재를 서류나 가치로 증명할 수 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집에 날아온 국민연금 가입서는 내가 '국민'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인식시켜주었다. 지금도 매달 빠져나가는 4대보험료는 내가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자신의 활동이 임금노동으로 대접을 받지 못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특히 육체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어느샌가 자신은 소진되고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에 둥둥 떠다니며 자신의 위치와 공간을 잃게 되는 것처럼 스스로가 사회의 어느 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잊게 된다. 저자가 맥도날드 일을 하며 많은 아이디어가 통찰을 얻는 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사회적으로 위치지어지고, 인정받는 존재가 된 지반위에서 우리는 사유하고 통찰 할 수 있다. 토대가 없는 사람은 사유도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나도 평생 몸이 움직이는 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삶을 유지하고 싶다. 내 사유의 영원한 토대가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72120035&code=990304

어제 이런 기사를 읽었다. 비영리단체에서 상근하는 활동가가 쓴 글이다. 내가 쓴 글의 대부분 마지막에는 '노동'이 문제이니 노동조합이 있어야한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사실,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서 직접 싸우는 것만큼 간단한 일은 없다. 간단한 것과 쉬운 것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학원생도 노동조합이 얼마전 만들어져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정말 지지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 활동가인 나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나는 고용주도 없고 자발적으로 일을 한다. 나의 고용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가난하거나 힘이 없다.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해도 회사 회계가 엉망이다. 최소한의 자본금도 없는 회사다. 이 문제는 노동조합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자영업처럼 사람을 모아서 스스로 먹고 살거나, 국가에 비영리부분의 청년들의 삶의 보장을 요구해야한다. 비영리 활동가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일들을 한다. 그것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간강사는 대학의 공공성과 '노동'의 인정을 통해서,사회활동가는 사회자체의 공공성과 '노동'의 인정을 통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도시,플랫폼,소비,노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