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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pr 27. 2018

편의점,도시,플랫폼,소비,노동

책 <편의점 사회학>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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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직영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 일을 하다보면 궁금한 것들이 많이 있다. '편의점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이지?' '왜 저 물건들은 저 위치에 진열 되어 있을까?' '왜 사람들은 밥을 편의점에 와서 먹을까?' 등등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편의점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움직일까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이 있다. 그외에 성격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은 비밀과 매커니즘을 알아가는 것을 즐겨서 '편의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의 고민과 비슷한 것들을 하시던 저자를 만났고, 이 책을 만났다.



[책 내용 정리]

- 편의점의 정의
편의점은 유통 분야에 속하는 소매업의 일종이다. 편의점은 영어 convenience store의 번역인데, 영어식 양어로는 `CVS(ConVenience Stroe)`다. 편의점이라는 형태의 소매업은 20세기 미국에서 태동했다. 따라서 편의점의 개념을 살펴보려면 일단 미국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편의점협회에 의하면 `편리한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공중이 음식과 우류 등 다양한 종류의 소비재와 서비스를 신속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소매업`이 편의점이다. ...(중략)

국어사전에는 편의점을 `편리함을 개념으로 도입된 소형 소매점포 혹은 고객의 편의를 위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으로 정의한다.여기서 알 수 있듯이 우선 편의점은 공간이 작아서 법적으로 165제곱미터 이하여야한다, 참고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은 매장 넓이가 3000제곱미터 이상이며 , 롯데슈퍼, 홈플러스익스프레스와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포함하여 통상적으로 슈퍼마켓이라고 불리는 소매업은 165제곱미터이상, 3000제곱미터 이하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의 면적은 평균 73.4제곱미터(22.2평)인데, 그나마 지가나 임대료 상승 때문에 점점 더 좁아지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편의점은 평균 99제곱미터(약30평)으로 알려진 일본의 편의점보다 대체로 작은 편이다

- 편의점의 시작
"1920년대에 들어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냉매로 사용하던 암모니아의 유독성 문제가 '프레온' 개발에 의해 해결되면서 제빙과 냉동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중략).....냉각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편의점도 없었을 것이다. 편의점은 인공적으로 얼음을 제조하고 냉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탄생했다. 편의점의 역사가 1927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소재 사우스랜드 제빙 회사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유 1갤런의 가격이 56센트에 불과했던 아득한 그 엤날, 얼음은 봉지가 아니라 덩어리째 판매되었다. 어느 날 이 회사의 종업원이던 '엉클 조니' 제퍼슨 그린은 얼음 공장에서 우유와 빵, 댤걀 등을 팔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것들을 갖다 두면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일반 식료품 점포가 문을 닫는 저녁 시간이나 일요일에 이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맞춰 공급한다는 '엉클 조니'의 착안을 비지니스로 옮긴 인물을 사우스랜드 제빙 회사의 사장 조 톰슨 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운영하던 8개의 제빙 공장과 21곳의 얼음 창고에서 일제히 간단한 식료품들을 판매하도록 조치했다. 바로 이것이 편의점의 기원이었다." p28~29

"1930년대에 들어와 사우스랜드 제빙 회사는 통조림 제품이나 과일까지 취급하기 시작했고 배달 서비스에도 손을 뻗쳤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편의점 모습에 훨씬 가까워졌다. 당시 사우스랜드 제빙 회사가 세운 최초의 편의점은 '토템 가게'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로 사람들이 구매한 상품을 '나르다(toto)'는 의미를 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알래스카의 인디언 토템 폴이 가게 입구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1939년에는 미국의 오하이오 주 아콘 시 인근에 살던 낙농업자 로손이 '로손의 우유 상점'을 창업했는데, 이것 역시 오하이오 지역에서 편의점으로 성장했다.

사우스랜드 제빙 회사는 머지 않아 사우스랜드 회사로 간판을 바꾸었다. 회사 이름에서 제빙이라는 말을 뺀 것인데, 더  이상 단순한 얼음 공장이 아니라 일반 회사라는 선언이었다. 식료품을 '차고' '신선하게'보관하면서 영업 시간까지 점점 더 늘리자 사우스랜드 회사가 운영하던 편의점의 인기는 텍사스를 중심으로 나날이 높아졌다. ..(중략).... 1946년에 사우스랜드 회사는 산하의 편의점 명칭을 세븐일레븐으로 통일했다. 아침7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상표는 행운의 상징인 네잎 클로버에다가 숫자 7과 영문 알파켓 Eleven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특히 7시 Eleven보다 더 크게 부각되어 있는데 복잡한 거리에서 눈에 확 띄는 효과를 낳는다는 광고업계의 평가다."

- 프랜차이즈 방식
프랜차이즈 체인은 본사에서 가맹점을 모집하고 동일한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인데, 이때 ㅡ란차이저 곧 본사는 상표, 상호, 서비스 및 경영 노하우를 구축 제공하고, 프랜차이지 곧 점주는 일정한 가맹비와 로열티를 본사에 납부하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체인은 가맹점주 모집 방식을 통해 점포를 보다 쉽고 빠르게 확산시키는 시스템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문제는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강제적인 수직 관계가 형성되어 상호 대립과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불안정한 제도라는 점이다. 이른바 '갑을 관계'다. 하긴 프랜차이즈라는 말의 어원부터가 그렇다.

프랜차이즈라는 말은 'Frank + ize'에서 나온 것으로 오늘날 프랑스인의 먼 조상인 '프랑크 사랑처럼 만든다'는 뜻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북쪽에 살던 프랑크 족은 잔혹하기로 소문난 '야만족;'이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은 유명한 바루스 장군을 보내고서도 프랑크 족 진압에 실패했다고 알려져있다. 프랑크 족은 로마 치하에서 한 번도 노예로 산 적이 없다. 'franca'는 '던지는 무기' 곧 도끼를 의미했는데, 그들은 도끼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했던 모양이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프랑크 족의 추장들은 새로운 땅을 정복한 다음 부족들에게 광산이나 농장과 같은 주요 자원에 대해 사업권을 넘겨주는 대신, 로열티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해당 지역을 지배했다고 한다. 국가 자원이나 주요 사업권을 넘겨주는 것을 '프랑크 족처럼 대하다'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franchise'로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 한국의 편의점 역사
"2012년 기준 대한민국 편의점 수는 공식적으로 총 2만 4559개 이며, 편의점 1개당 인구는 2075명으로 일본이나 대만보다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편의점 1개당 일일 평균 방문객이 359명이라는데, 이를 전국 편의점 수와 곱하면 하루 평균 880만명 이상이 편의점을 출입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동안 편의점에서 거래되는 총액도 356억 원에 이른다."

"`기록상 국내 최초의 편의점은 1982년 11월, 롯데쇼핑이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시장 입구에 개점한 '롯데세븐'이었다. 롯데쇼핑은 식품 가게가 연중무휴로 문을 연다는 점을 강조했고, 언론에서는 편의점을 '구멍가게의 새로운 형태' 혹은 '주택가의 백화점'이라고 보도했다. 몇 년 뒤 뉴코아 쇼핑도 편의점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우리나라의 편의점은 뿌리를 내리는 데 일제히 실패했다. 롯데쇼핑은 약수동 1호점에 이어 신당동과 논현동에 2,3호점을 개점했으나 1984년 4월에 이르러 3개 점포 모두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

"왜 convenience가 편리와 편의 중에서 편의로 번역되었을까. 중국과 대만에서는 편리점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유1. 편의품이라는 어휘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편의점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것. 경영학에서 말하는 편의품이란 구매하기 위해 소요되는 소비자의 탐색 기간과 노력이 매우 적게 들어가는 대신 구매 빈도는 매우 높은 상품을 지칭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이 대부분이 말하자면 편의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중국어에서의 편의품은 전혀 다른 의미인데, 염가품 곧 '저렴한 제품'을 뜻한다.

또 다른 추측은 편리와 편의의 뜻이 서로 구분된다는 전제하에서, 의도적으로 편리점이 아닌 편의점으로 번역했을  개연성이다. 편할 편에 마땅할 의가 합쳐진 '편의'는 형편이나 조건따위가 편하고 좋음을 뜻한다. 이에 비해 편할 편에 이로울 리가 합쳐진 편리는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쉬움을 뜻한다. 특히 편의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편의점에서는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무언가를 시혜한다는 어감이 묻어 있다. 말하자면 편리점이 아닌 편의점이라는 번역에는 그것이 공급자 주도의 창업이라는 느낌이 다소간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편의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일반 수요자가 먼저 원해서 생겼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1989년 5월 당시로서는 미국계였던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에 올림픽선수촌점을 열면서 우리나라의 편의점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른바 선진국형 프랜차이즈 체인화 편의점을 앞다투어 열기 시작한 결과였다. 이를테면 1989년 10월에 한양유통은 서클케이 1호점을 열었고, 이듬해인 1990년 10월에는 보광이 훼미리마트 1호점, 11월에는 미원통상이 미니스톱 1호점, 12월에는 엘지유통이 엘지25 1호점을 각각 개점했다. 그리고 1991년 2월에는 동양마트가 바이더웨이 1호점을 열었다. "

"초창기의 경우 편의점의 주요 입지는 방이동,목동,동부이촌동,여의도,가락동 등 주로 고학력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선수촌아파트의 세븐일레븐과 동부이촌동의 로손은 광홤누이나 방배동 등과 같이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그 무렵 신문에는 편의점 가맹점 모집 광고가 자주 실렸다."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의 자본이 대거 유입'한 것과 관련이 깊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유통 시장의 완전 개방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우리나라와 경제 여건이 비슷했던 대만과 홍콩은 이미 오래전에 유통 시장을 외부 세계에 개방하였던바, 미국 등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199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 유통 시장의 전면적 대외 개방을 줄곧 압박해 왔다. 이에 정부는 1989년 도소매업 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유통 시장의 점진적 대외 개방을 약속한 데 이어,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위한 최종 양허안을 제출하면서 1996년 1월 1일부로 유통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구멍가게나 동네 슈퍼와 같은 소규모 저모의 위상이 추락하는 대신, 규모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소매업이 전반적으로 대형화되었다. 유통 산업 구조가 생계형에서 기업형으로 뚜렷이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 결과 대형 할인점, 무점포 판매, 편의점과 같은 신유통 업태가 괄목할 정도로 급성장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편의점은 유통 시장 저면 개방 이후 10년 동안 197.2퍼센트나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의한 과점화도 심화되었다."

- 편의점과 24시간 사회
"1980년대말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을 와해시키며 사실상 전 지구를 공간적으로 장악하는데 성공한 자본주의는 새로운 개척지로서 야간 시간에 주목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 앞에 밤의 세계는 말하자면 마지막 미답지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를 위시한 당시의 급속한 정보 통신 혁명은 밤의 지배 내지 통치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밤시간은 자본축적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요컨대 1990년대는 '항상 깨어 있는 세계' 곧 '24시간 사회'가 도래한 결정적 시점이었다."

- 편의점과 소비사회
"현대 사회에서 소비가 조작 내지 유도되는 매커니즘은 교환 가치가 사용 가치를 능가하고, 기호나 이미지가 상품의 본질을 능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르페르브에 의하면 '기호는 재화를 장식하고 재화는 기호의 모습을 띠었을 때만 '재화'가 된다. 그리고 최고의 소비는 재화 없이 단지 '재화'의 기호만을 목표로 삼는 소비이다.' 소비자는 상품 자체보다는 기호라는 자양분을 취하는데, 그것들에 담긴 의미는 기술, 부, 행복, 사랑과 같은 것들이다. 곧 상품의 기호는 우리 시대의 온갖 좋은 가치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애란의 소설 속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즐겨 구매하는 것도 물이 아니라 '제주삼다수' 담배가 아니라 '디스플러스' '김이 아니라 '양반김'  화장지가 아니라 ' 깨긋한나라화장지' 우유가 아니라 '서울우유'다. 예컨대 생수와 제주도, 김과 양반, 우유와 서울을 한데 묶어 사고파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의 편의점은 이처럼 문화적 개방과 심미적 소비 욕구를 배경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편의점은 서구식 생활 문화에 대한 신세대의 선망과 동경을 적절히 반영했던 측면이 있다. 마치 맥도널드가 동아시아에 처음 진출할 때 도시에 사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 곧 '여피'들에 의한 '과시적 소비' 혹은 '성사적 소비'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 거주공간의 부족과 편의점
"일본에서 편의점이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도시 생활의 주거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등에 비해 편의점이 상품의 수시 및 소량 구매에 훨씬 유리했다는 측면도 있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우일에 한 번 정도'는 편의점에 갔다고 말하는데, 따지고 보면 편의점 쇼핑 자체가 즐겁고 좋아서라기보다 집에 물건을 보관하거나 저장할 공간이 좁아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미국에서 편의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 동네 냉장고'라고 불렀다는데,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편의점은 '우리 집 냉장고'였다고나 할까'"(GS에서 이야기하는 냉장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 편의점은 사회적 가치와 가능성
"전근대 사회에서는 시장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삶의 총체성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었다. 근대 도시의 거리는 결코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 전근대적 공간은 '사회적 실천'이 가득 찬 곳으로서, '장소와의 인연 맺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가능하기도 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이 함께 모색되는 공간이었다. 신을 만나고 싶으면 언제라도 신전으로, 정치적 현안을 논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회당으로, 철학자를 만나 토론하고 싶ㅊ으면 언제라도 광장으로 가면 그 뜻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도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자신이 해야할 도리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진정한 삶의 태도로 여겼다. 리처드 세넷은 이를 눈의 양심이라 불렀다."

"고층건물이 만들어 낸 격자형 도시에서는 물리적 환경과 개인의 삶 사이에 구체적인 연관이나 상관이 없어지기 십상이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영성적인 갈망이 사라진 '중성 도시'가 보편화되고 말았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의 개인화 및 유목화 추세는 삶의 내면과 외형을 일치시키고 주관적 경험과 물질적 생활을 통합시킬 수 있는 '인격적 도시'의 가능성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합적 문지방 공간으로 맹렬히 진화 중인 편의점은 단순한 소매 유통업 매장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공간이나 문화적 장소로 부상할 여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 지역공동체로서 편의점의 한계
"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편의점이 대부분 거대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편의점이 지역 공동체의 진정한 거점으로 자리 잡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개별 가맹점의 점주나 점원이 반드시 입점한 동네에 연고를 갖거나 밀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강남에 사는 점주가 강북에 사는 사람들의 소비를 착취하는 지역 착취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실 편의점은 동네 자영업자가 아니어서 지역 경제와 무관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외국 자본과 국내 대자본이 지배하는 대규모 유통업체들은 지역적 연계보다는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경쟁력 있는 물건을 구매해 팔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를 지역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분리시킨다. 그 결과 소비나 소비와 관련된 문화 요소의 전국화 내지 세계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골목상권을 굳이 침해 하려고 하지 않아도, 편의점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지역경제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기능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편의점 특유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친밀한 인간 관계가 아니라 무심한 대면이다. 따라서 '구멍가게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사랑방이지만 편의점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 익명의 공간'으로 남아있을 공산이 높다. 공동체를 만드는 따듯한 보금자리가 되기에 편의점 문화는 너무나 '쿨'하다 사람들은 구멍가게에 기대했떤 바를 편의점에서는 대체로 하지 않는다. "

"더욱이 편의점은 언제부턴가 우리의 사생활을 일일이 관찰하고 기억하는 권력 장치로 작동 중이다. 감시 기능이나 정보 수집 등과 관련하여 편의점은 세상의 빅브라더, 혹은 파놉티콘 같은 존재다. 아닌게 아니라 볼록 거울과 CCTV 없는 편의점은 세상에 없다. 편의점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단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편의점은 푸코식 감시 사회의 전형적 공간이다. 시선의 은밀함과 포괄성, 그리고 비대칭성 등을 감안하면 편의점 내부 공간은 결코 민주적 사회 공동체가 되기 어렵다."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편의점의 엄청난 정보 수집 역량이다. 사람들은 편의점이 익명의 공간인 줄 알지만 이곳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온통 까발려진다. 편의점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내장을 꺼내놓듯 내가 머고 싸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편의점 계산기는 상품 바코드를 찍은 뒤에 이른바 '객층키'를 눌러야 계산이 완료된다. 아마 손님의 계층이라는 뜻에서 객층이 아닌가 싶다. 객층키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남자, 성인 여자 등으로 나뉘는데, 손님의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어떤 물건을, 언제 구입하는지를 전산으로 통계를 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8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속성과 취향, 흔적 및 동선이 편의점 계산기 속으로 끊임없이 입력되는 것이다. "

-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우선 편의점은 한국 사회 혹은 한국 현대사를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창구 가운데 하나다. 편의점을 보면 세상을 읽고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편의점의 등장과 확산은 한국에서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편의점은 상품의 내재적 가치 대신 그것이 드러내는 기호나 상징을 보다 중시하는 소비 자체의 미학화를 조작하고 길들이며, 가르치고 실행한다. 또한 우리는 편의점으로부터 극치에 이른 근대 합리주의적 정신과 관행을 발견한다. 관료주의적 통제의 측면에서나 공간의 과하화 및 정보화라는 관점에서 편의점은 이른바 '맥도널드 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 편의점은 우리 시대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편의점의 확산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실시간 접속 정도에 대체로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편의점이 1990년대 이후로 글로벌 프랜차이즈 체인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는 점은 그것이 세계화의 상징적 경관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과시한다. 하지만 편의점은 장소의 차이에 대한 자본의 민감도를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증대함으로써 문화적 현지화를 의미하는 세방화, 곧 글로컬리제이션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세계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한국적이 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편의점이다. "

"공간 혁명에 따른 사회의 해체 역시 편의점 입장에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급속한 도시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기존의 공간적 경계와 범주를 무력화하고 있는 상황에 개인화와 정보화까지 가세하여 우리 시대는 전반적으로 신유목 사회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때 편의점은 인구 관리와 사회 질서를 위한 새로운 도시 인프라 내지 신종 통치 테크놀로지로 부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관련된 거의 모든 기능들을 한곳에 집결한 다음 이들 간에 거대한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 한다는 점에서 편의점은 알게 모르게 새로운 통치 장치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경향이 있다."

"편의점은 우리 시대의 사회 양극화를 읽는 힘도 갖추고 있다. 맨처음 마치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우리 곁에 찾아와 과시적 혹은 성사적 소비 행태로 시작된 편의점은 언제부턴가 사회 구성원 전체를 포괄하고 포섭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사회적 약자나 서민일수록 편의점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편의점 이용에는 특권화 내지 차별화된 소비 행위의 잔재와 추억이 여전히 남아 있어 사회 양극화의 고통과 비애를 사뭇 은폐하고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만큼 편의점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감추고 잊게 만드는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인식될 수도 있다."

- 편의점과 촛불시위의 아이러니
"이런 점에서 이른바 '촛불 시위' 때 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촛불 집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바르게 만들자는 것일 텐데, 집회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일용할 자원과 무기는 주로 인근 편의점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공급한다. 컵라면과 김밥 등 먹거리뿐만 아니라 양초와 우산, 우의 등을 편리하게 구입하는 곳이 다름 아닌 편의점 이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과 그런 세상을 치밀하게 지배하는 자들의 기막힌 공생 혹은 태연한 공존의 현장, 바로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편의점의 현 주소이다. "

※ 드러그 스토어는 미용과 건강을 위한 의약품, 화장품, 일용 잡화 식료품 등을 파는 소형 복합점포로서 우리 식의 '약국'과는 의미가 다르다.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드러그 스토어의 기원도 20세기 초반 미국이었다. 일본은 1987년 마쓰모토 기요시가 도쿄에 1호점을 개점함으로써 드러그 스토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 판매가 약국을 중심으로 묶여 있었던 탓에 드러그 스토어의 발전이 한참 늦었다. CJ의 올리브영, GS 왓슨스, 등은 약국을 기본으로 하기보다 실제로는 화장품 편집매장에 가깝다.

※ 바나나맛 우유의 인긴에 대해서 몇 가지 추가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바나나우유'로 불리는 바나나맛 우유는 1974년에 처음 등장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바나나나는 우리나라에서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다. 따라서 비록 바나나 향을 조금 첨가했을 뿐이었지만 바나나맛 우유는 우유와 바나나의 이미지가 섞인 '고급 음료'로 인식되었다. 특히 주모할 것은 조선 후기 달 항아리를 연상하게 하는 용기 모양이다. 이는 반투명 플라스틱을 통해 흘러나오는 바나나맛 특유의 은은한 색깔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지적이다. 말하자면 바나나맛 우유는 '미각의 시각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 불황 앞에서 바나나맛 우유의 힘이 특히 센 이유 가운데 하나로 그 단맛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황에 단맛이 인기라고 하는데 사탕 판매가 급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 전환을 위해 단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불황형 스트레스 해소 미각은 매운 맛이었다. 그러나 세대가 달라진 데다가 젊은이들이 편의점 주고객이 되면서 바나나맛 우유의 인기는 4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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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자체, 시스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나의 진짜 관심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이다. '알바생'이라 불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그곳에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난한 1인가구 사람들이 나의 관심이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 마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당연하게 받아야하고, 주휴수당이나 기타 법적인 근거가 있는 것들도 지켜지지 않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찾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조직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같은 것들이 더 고민이다. 이것이 그 동안의 공장노동자들의 조직과는 달라야 한다. 카카오톡이나 플랫폼을 이용한 플랫폼 노동조합의 건설이 필요할 수도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제일 큰 스트레스인 '시재 확인'의 공포를 시작으로 해서 조직화를 시작해볼 수도 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이 들지만, 책은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들은 많이 들어가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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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뿐 아니라 편의점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1인가구들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다. 이들의 네트워크 망을 편의점을 중심으로 만들고,그것으로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지역에 일정하게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의 '지역공동체'. 그 결과로 더 이상 소비만 아니라 생산을 하고 삶을 다시 한번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 대한 고민은 도시에 대한 고민과 떨어질 수 없는 것 같다. 도심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결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도시에서 누려야할 되찾는 싸움들도 해보고 싶다. 길지 않은 책이었지만 '편의점, 도시, 아르바이트 노동자, 네트워크 플랫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아이디어들을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편의점, 도시, 플랫폼, 1인가구 등 현대도시의 총체적 주체와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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