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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23. 2018

운동권에서 태극기집회까지 김문수의 삶

책 <김문수 스토리 靑>을 읽고

김문수 스토리 청              

저자 노하린

출판 서울문화사

발매 2011.06.17.


대학교 1학년이 되고 이념서클(?)이라 불리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근현대사 세미나를 했다. 교과서처럼 되어있는 책은 재미 없었다. 세미나도 지루했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87년 항쟁에 가까워지면서 갑작스런 흥미를 느꼈다. 갑자기 근현대사 '신' 같은 것이 빙의된 것은 아니 었고,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은 김문수, 심상정, 김지하, 유시민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김문수였다. 심상정이나 유시민은 자신들의 20대보다는 오른쪽에 가있지만 여전히 '진보'의 범위에서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반해서 김문수는 한국의 가장 극우라는 태극기집회까지 나가는 '보수' 그 중에서도 극우의 정치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서노련의 지도위원있고, 심상정의 노동운동 선배이며 불새출의 운동권이었던 김문수는 어떻게해서 태극기집회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사회주의로 만들어서 북한에게 가져다 바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을까. 1학년이던 나는 그 삶의 이야기가 참 궁금했다. 1학년 때 잠시 생각하고 그 뒤로는 크게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가 중고서점에서 김문수 자서전인 이 책을 만났다. 그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책에 아쉽게나마 서술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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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어릴 적 매우 보수적인 종갓집에서 자랐다. 밥을 굶어도 제사를 지내야하는 경주김씨 종갓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 처럼 사회문제 특히 '독재정부'를 타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운동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이념서클들에서 활동하고 재적을 당하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미싱공장에 취업을 해서 노조를 만들려고 했지만, 워낙 일이 손에 잘 익지 않아서 보일러공으로 전직을 하고 노동현장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노동조합 지도자로서도 많은 역할들을 해낸다. 그 결과 서울지역노동조합연합(일명 서노련)의 지도위원을 하게 된다. 이 때까지의 김문수는 그 시대의 흔한 운동권들과 다르지 않았다. '혁명'만이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힘이 필요했고, 그래서 현장에 들어가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잡혀 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 고초를 겪는다. 

내가 궁금했던 김문수 인생의 급격한 변화는 크게 2가지 계기로 다가온다. 첫번째는 구소련의 붕괴였다. 소련을 모델로 하는 혁명을 목표로 했던 그 시절의 운동권들은 모델이었던 소련이 붕괴되면서 '혁명'에 대한 꿈을 대부분 포기한다. 김문수도 소련이 붕괴되면서 많은 혼란에 빠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두번째는 군사독재 정권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등장이었다. 혁명의 꿈을 포기하고 혼란스러워하던 김문수는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하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변화들이 눈앞에서 벌어졌다고 표현한다. 그 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정부라는 비판이 많이 있었지만, 김문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군사독재를 표방했던 정부에 비해서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김문수에게는 그것이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김문수는 정치권으로 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다. 혁명의 꿈을 포기한 김문수는 현 정부의 개혁노선을 지지하고 그것에 힘을 싣기 위해서 정치권에 입문한다. 첫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뒤로 김문수는 경기도지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다. 

* 선거 감각이나 능력은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최근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김문수 인생에서 처음으로 패배하는 선거가 될 것 같다. 요즘 선거 운동에 함께 하고 있는데 '김문수의 이기는 선거' 같은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구입해서 볼 의양이 있다. 무패의 신화, 패배하지 않는 정치 정도의 이름이면 선거철마다 잘 팔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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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가 문민정부에서 정치권에 들어오고 의원이 되면서 책에서 사상과 혁명, 진보, 좌우를 연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확 줄어든다. 주로 행정과 주민 지역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서전 자체가 선거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라 그런 듯 하다. 이념을 떠나버리고, 실용주의자로서 주민의 삶과 행정의 편의를 위한 길을 걷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생각의 궤적을 읽기는 힘들다. 김문수가 태극기 집회로까지 걸어가는 생각의 궤적이 궁금했던 사람으로서 아쉬웠다.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는 역시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게 답인 것 같다. 엄청나게 특별하고 유별난 생각과 삶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운동권의 롤모델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김문수였다. 읽으면서 '의외로 무난한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수정치인을 하면서도 재산을 크게 부풀리거나 거대한 저택에 살지도 않고, 30평대 아파트와 오래된 자동차를 사용하면서 한동안 살았다고도 하고, 나름대로 삶의 소신은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이번에 서울시장에 출마하셨는데 자서전 같은 것 내시면서 노골적인 생각의 궤적들을 더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학년때에는 김문수가 '변절'을 했고,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나도 활동을 쉬고 있고, 김문수의 삶의 궤적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읽고나니 그 나름대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주변에서는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변절자'로서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달아주고 있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신념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듯 하다. 

평범하고 순수한(?) 운동권이었던 그 뒤로는 실용주의 합리주의 노선까지 표방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했다. 그런 김문수가 태극기 집회까지 나갔던 것은 한국현대사에서 상징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정계에 입문하고 의원을 하던 시절과는 또 다른 변화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은 오래전에 쓰여진 것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 된 것인지,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는 것인지, 독재와 싸우면서 20대를 보냈던 사람이 왜 독재자의 딸의 탄핵을 막는 집회에 나갔는지 그 속사정은 매우 궁금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혹여나 패배하시면 시원하게 인터뷰해서 알려주시고, 더 이상의 변화(내가 보기에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을 겪지 마시고 남은 여생 사랑하는 가족과 편히 사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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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이가 들어거나, 자서전을 쓸일이 있다면 나의 생각의 궤적과 삶은 어떻게 바뀌어갈까 궁금하기도 하다. 군국주의자, 밀덕에서 혁명적 운동권에서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서있다. 이 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나의 신념을 어떻게 만들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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