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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27. 2018

책<세월호 생각> 中 "자유와 안전"

내가 처음으로 책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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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리 잘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글을 쓰고 나면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2014년에 세월호가 침몰하고 나서 친구들이랑 부산에서 이런저런 추모활동을 했다. 출판사를 하는 아는 분이 나의 활동을 보고서 세월호에 관한 책을 내려고 하는데 글을 한편 써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너무 흥분되고 좋았다. 글을 SNS에 쓰기는 했지만 작긴해도 출판사에서 내는 책에 내 글이 실릴 수 있다니 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글을 썼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추상적인 글에 멋을 느끼고 일명 '뽕'에 취해있을 때라 추상적인 인상비평에 가까운 글을 썼다. 그렇게 원고를 넘겼더니 출판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본인들이 원하는 글은 나의 활동에 대한 것들이나 좀 더 현장감 넘치고 솔직한 글이니 원고를 수정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글을 못써서 글을 수정해달라고 한다고 생각하고 무섭고 기분이 안좋아서 그분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흔히 이야기하는 '잠수'를 탔다. 그래서 내 글은 책에 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상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연히 책을 보니 그 속에 내 글이 있었다. 수정하나 되지 않고 내가 원래 보내주었던 버전 그대로 였다. 나는 너무 감사했고, 미안했다. 이렇게 나의 최초의 기고글은 나의 불안과 공포 좌절 속에서 시작되서 약간의 안도로 끝이 났다. 오늘 책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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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안전
이대희
"최근의 세월호 참사, 지하철 화재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천벌인 것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저 수 많은 자유들은 우리가 보장받아야만 하는 하나의 권리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에게 여러 가지 자유를 보장하고 인정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함부로 구속되거나 억압되지 않을 신체의 자유, 권리 보장을 위한 단체를 만들 권리인 결사의 자유, 어떤 출판물이든 출판하고 보급할 수 있는 출판의 자유, 우리는 항상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권리들이 이미 헌법에 성문화 되어 있다. 물론, 그것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근에 일어났던 세워호 참사, 지하철 화재 이러한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천벌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게 된다. 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헌법 속의 수 많은 자유들은 우리가 보장받아야만 하는 하나의 권리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안전의 권리'가 그것이다. 신체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 신체의 '안전'이 먼저 보장되어야하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외부의 공격이나 재해에 의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결국 개인이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존립한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하다. 이 보장의 주체는 국가 또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사회계약설이라는 근대 국가 성립의 기원을 찾아보면, 인간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계약을 맺고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나 기구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국가이다. 그렇다. 국가란 그 어떤 것보다도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집단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이러한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 사회의 기본은 갖추어졌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던 한국 사람들에게 기본 중의 기본, 국가라는 것이 생긴 뒤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던 '안전'에 대한 문제가 거대한 화두로 떠올랐다. 모든 자유의 근본인 '안전'이 흔들리면서 다른 모든 자유와 권리들은 하나 둘 뒤로 밀려났다.정말로 '생존' 그 자체를 고민해야하는 사회가 되버린 것이다.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멀리 물어볼 것도 없이 나부터 지하철을 타는 것이 두려워졌고, 등하교 길에 버스가 잠시라도 멈추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비행히간 기차를 타는 것은 자살 행위처럼 느껴진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쟁취나, 청소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장애인들의 이동권, 착취적 에너지 관계 등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오늘 무사히 집에는 돌아올 수 있을까?"

일단 사람들의 고민이 당장 몸의 안전에만 집중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의 것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전국적으로 불처럼 일어나던 세월호 희생자 추모의 물결이 점점 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추모의 형태로 변해가는 것은 아마 위에서 한 질문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가한다.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언론에 보도되고 국가는 그것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무책임함을 보여준 속에서 누가 자신의 권리를 쉽게 외칠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내 생명의 보장을 위해서는 생명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도 길거리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권력과 싸우고 있다.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사람들은 '안전'이라는 한계의 틀을 넘어서려고 한다. 이는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죽음이 만연하고 사고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있지만 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순수한 사유가 가능하게 되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지탱해 주던 세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안전'이라는 가치의 붕괴는 사람들의 모든 자유를 자신의 생명 유지의 차원으로 끌어내려버렸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안전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순수한 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는 나라들이 그렇듯, 그 사유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쪽이 될 것이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는 죽음의 질문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자유와 권리의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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