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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11. 2018

행복한 불량품'들'이 되어보자.

임승수 작가의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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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으로 임승수 작가의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를 읽었다. 책 읽기에 강박이 하나 있는데, 제대로 읽고 싶은 책은 꼭 정리를 하면서 읽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보니 돌아다니면서 읽는 e북은 제대로 읽고 싶은 책들이라기 보다는 그냥 흥미롭게 읽고 싶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임승수 작가의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도 평소에 읽는 e북 사이트에 올라와 있길래 무심결에 다운 받아서 읽었다.


임승수 작가는 이전 책인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자본론을 읽어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구입했던 책이 집에있다. 더 잘 알게된 것은 임승수 작가가 경희대에서 하는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어떤 학생이 국가정보원에 신고했던 해프닝 덕분이었다. 잘 안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고, 그가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며, 마르크스주의를 사랑(?)하는 운동권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그의 아내도 작가라는 것 정도를 정보로서 알고있다. 나의 성향도 임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주위사람들이 늘상 하는 이야기들도 들어있고, 내가 늘상 하는 생각들도 들어가 있었다. 나와 같은 사회 불온세력들이 읽기에는 자신의 일기마냥 편안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임승수 작가의 평소 생각을 담은 에세집이다. 어떤 계기로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자본론과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글을 쓰는 사회과학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회과학 작가로서, 한 명의 운동가로서 글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들과 소소한 일상들이 들어있다. 중간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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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생활을 꽤 오래했던 나에게 임승수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은 솔직히 그렇게 새롭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이야기를 정말 쉬운 표현과 언어 경험들로 이야기해주는 임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구조적으로 '착취'를 일삼고, 그 구조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을 양산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가치를 화폐와 교환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능력과 사람은 사회적인 낙오자로 밀려나거나 그림자 노동자가 된다. 한국의 수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 들이나 운동권들이(난 이 두부류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수 없이 해왔던 이야기들이고 또 어떤 이야기들의 기본 전제들이기도 하다.


난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소유가 아니라 시간을 구매해야한다'는 '체험형 소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소유는 아무리 많이 하고 좋은 것을 해도 결국 기억과 시간 속에서 멀어지기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했던 기억 새로운 것들을 체험했던 시간들은 소유보다는 훨씬 오래 기억과 시간 속에서 보존된다. 그러니 우리는 소유를 구매하려고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구매하려고 애써야한다. 이것의 예시로 임작가는 '여행'을 들었다. 차를 사려고 몇년씩 할부로 카드를 긁는 사람들이 자신이 할부로 여행을 간다고 하며 어리석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소유'가 '체험의시간'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작가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에게는 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을 하는 '체험의 시간'이 몇배나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운동권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운동권으로 남아있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에 하나는 나의 활동이 전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점이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활동은 화폐로 교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을 대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글을 쓰고 여러 가지 실무를 하는 능력들을 배우기도 했다. 화폐로 교환되지 않았을 뿐 나의 삶과 가치를 규정하는 철학을 만들어왔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북극성의 위치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의 삶은 '소유'로 이루어져있지는 않지만, '체험의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임승수 작가가 '자본론'을 만나고 '행복한 불량품'으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의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행복한 불량품의 삶에 만족한다. 다만, 임승수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서 그의 시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한다고 하는데, 나의 직업은 작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 노동자여서 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고 있지는 않다. 노동의 시간을 최소화 하면서 살고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반드시 해야하는 것'으로 둘러 쌓여서 시간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그런 직업과 일이 많지 않기에 나도 임승수 작가처럼 작가로서 먹고 사는 것을 꿈꾼다. 다만, 실력과 능력이 부족해서 아직 실행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비밀이라면 비밀을 알고는 있지만 그 비밀을 내 개인적인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더 행복한 불량품이 될 수 있을지가 책을 읽고 든 큰 의문이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시간을 통제하기는 커녕 세상의 수 많은 부조리와 싸우기 위해서 더 시간에 억눌려서 살아간다. 시간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작가나 프리랜서로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개인이 행복한 불량품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2명이 3명이 어떤 집단이 집단적으로 이런 것들을 실험할 수는 있지 않을까? 행복한 불량품 단품은 어렵고, 행복한 불량품들 복수는 좀 더 쉬울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한 불량품'들'이라는 공동체나, 모임이 만들어져서 함께 이런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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