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배우는는 오늘도 >를 만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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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막.
오래간만에 집에 드러누워있다가 티브이 무료 영화 칸에 못 보던 영화가 있었다. 배우 문소리가 드레스를 입고 트랙을 뛰고 있는 포스터의 영화였다. 제목은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였다. 문소리가 레드 카펫을 밟고 상을 받기까지의 삶을 그린 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클릭했다. 우리에게 보이는 여배우의 삶의 뒤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화려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처량함일까 궁금증을 가지고서 영화를 봤다. 영화는 후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레드 카펫과 드레스로 상징되는 '여'배우의 화려한 삶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레드 카펫과 드레스를 입는 삶 이후, 그 시기 이후의 여배우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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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있다. 1막에서는 더 이상 영화계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여'배우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디션 봤던 배역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1막이 시작된다. 문소리가 친구들과 등산을 하고,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술집에서 막걸리를 먹는다. 중간에 영화제작자와 문소리의 팬이라고 주장하는 남성들과 반강제로 합석을 하게 된다. 이들은 술을 먹으면서 자신들이 문소리의 팬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문소리에게 끊임없이 무리한 요구들과 말들을 쏟아낸다. 성희롱적인 발언들에도 문소리는 배우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웃으면서 받아낸다.
갑자기 자신의 아내에게 온 전화를 문소리에게 받게 하고, 자신의 아내보다 못생겼다고 면전에서 비난도 한다. 뜬금없이 '민노당' 문소리와 같은 헛소리도 한다.(몰랐는데, 문소리가 과거에 민주노동당 지지를 했었고 당원이었다고 한다.) 문소리의 친구는 문소리를 위로해주려고 이정도는 극복해버리고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되어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냥 문소리'로서 연기하고 살아가고 싶은 문소리에게는 짜증 나는 이야기일 뿐이다. 한물간 여배우인 문소리를 그 누고도 '문소리'라는 사람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누군가와 비교되어서, 아니면 과거의 경험을 들먹이며 깎아내려야 만 문소리로 호명된다. 겨우겨우 술자리는 마무리되고 문소리를 데리러 온 매니저와 함께 집에 간다.
집에 가는 길에 자신이 더 이상 이쁘지 않냐고 매니저에게 막 화를 내면서 짜증을 부린다. 늘 모든에게 이쁜다는 찬사와 최고의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던 문소리는 더 이상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고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짜증 난다.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이 없으면 스스로 '문소리'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그녀를 화나게 한다. 도대체 배역도 안 들어오고, 주변에서 희롱이나 당하는 순간에 '나는 뭐지?'하는 의문이 그녀의 머리를 계속 맴돈다.
* 1막에서 막걸리 먹는 아저씨들은 정말 짜증 나고 화난다. 계속해서 무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술이나 퍼마신다. 진짜 40~50대 중년 남성들은 도통 예의라는 것을 모른다. 글을 쓰는 나도 남성인지라 저렇게 되지 않아야지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을 한다. 일반화시키지 않으려고 해도 너무 많은 경험들이 있으니 일반화되지 않을 수도 없다. 경험적으로 저 나이 때는 다 그런 것 같다. 막걸리나 먹다가 빨리 땅으로 돌아가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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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배우이자, '엄마'이자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문소리의 이야기다. 당장 하고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는 배우이지만 그녀의 삶은 무척 바쁘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은행에 가서 3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은행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준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남긴 5천 원 만 원짜리 통장의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서 시어머니의 병원에도 가보지만 큰 소득은 없다. 시어머니가 준 고귀한 십 원짜리 뭉치만 '뇌물(?)'로 가져온다. 이제 그녀에게 사인은 은행 계약서류와 직원들에게나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팬사인회를 한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녀의 엄마가 다니는 치과의사가 그녀의 팬인데 사진 한 장만 찍게 해주면 임플란트를 싸게 해준다고 했다. 거부하다가 거부하다가 그녀는 결국 치과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었지만 아빠의 임플란트는 싸게 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 또 물어봐야 하는 처지가 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이제 딸이 문제를 일으킨다. 딸이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그녀의 엄마는 그런 식으면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다. 겨우겨우 엄마와 딸을 분리시키고 딸과 이야기를 나눈다. 딸에게 왜 유치원을 가지 않으려고 하느냐고 묻자. "나 너무 힘들어, 힘들면 조금 쉬어도 되는 거잖아!"하고 대답이 돌아온다. 딸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딸이 대신 이야기해주어서 그런 것인지 그 말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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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무대는 자신의 첫 작품을 했고, 얼마 전에는 우정출연을 부탁했던 감독의 장례식장이다. 달랑 영화 한 편 찍은 감독이라 장례식장에 사람도 없다. 영정과 가족들에게 절을 하고 조용히 장례식장을 떠나려는 차에 감독의 영화에서 함께 연기했던 남자 배우가 혼자 술을 먹고 있다. 물론, 이 배우도 한물 간 배우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물에 한번 떠오르지도 못한 뭍에 있는 배 같은 배우다. 얼떨결에 술을 한잔 하게 되고, 이번에는 감독과 작품을 함께 하기로 했다는 신인배우가 나타난다. 감독의 예술은 엉망이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종국에는 유가족 아내까지 등장한다. 신인 여배우가 감독과 불륜 비슷한 관계였던 것 같다. "얼른 나가 쌍년야"라는 강렬한 멘트와 함께 개싸움이 벌어진다. 싸움이 마무리되고 묘지를 배경으로 세명이 2차로 술을 한잔하러 떠난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나눴던 대화는
"좋은 배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긴 될 때까지 해보는 거지 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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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를 보고서 알았는데, 이 영화는 문소리가 직접 감독/연출을 본인이 다했다. 그래서 허구의 스토리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본인의 자서전 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찬사라고 이야기하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이야기도 본인에게는 짜증 나는 이야기였다. 메릴 스트립에게 한국의 문소리라고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항상 문소리가 아닌 메릴 스트립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불만이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불리고, 누군가의 딸로서 불리고, 엄마로서 여기저기 불리지만 본인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이름은 '여배우 문소리'였다.
하지만 그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지키는 것도 여간 쉽지 않다. 누군가의 희롱에 웃으면서 받아쳐야 하고, 짜증 나도 밖에서는 화도 못 내고 항상 어딘가에 상품이나 사은품처럼 팔려 다녀야 한다. 특히, 작품을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여배우'라는 타이틀만 가지고서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처지는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문소리는 누군가의 꿈이나 환상의'여배우'라는 타이틀을 지키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또 현실의 '직장인 여성'으로서 아내와 딸,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고뇌를 함께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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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을 모두 관통하는 것은 '술'이다. 정확하게 하는 '만취'다. 그녀는 계속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본인이 원하는 술은 타인이 모두 쓰러진 다음에야 혼자서 유유히 마실 수 있다. 그녀는 만취가 되어서 힘들어하지만, 힘든 것을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서 만취하고 싶어 한다.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꼭 한잔 두 잔씩 술을 먹는 것은 그녀가 지향하는 것이 '만취'임을 보여준다. 그녀가 만취가 되려는 상황은 여배우로서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배우'의 정체성과 관련된 자리에서 이다. 집에서나, 남편과는 술을 먹지 않는다.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배우'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만취가 아니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술을 먹는 것은 '배우'의 길을 포기하려는 도피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마지막 대사처럼 버티는데 까지 버텨보려는 발버둥이다. 1차, 2차 술을 먹으면서 그녀는 오늘도 내일도 배우로서 버티고 남아있을 수 있다. 당장 작품 하나 없더라도 내일의 작품을 기다리며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어쩌면 배우, 연기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취한 상태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그녀에게 술은 '여배우'로서 해서 안될 것 같은 금기를 깨고 자신을 찾는 도구이자, 오늘도 내일도 배우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끊임없이 술을 먹는 이상 그녀는 끊임없이 금기를 깨고 억압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고, 내일도 새로운 배우로서 새로운 작품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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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나 스토리가 엄청나게 흥미로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문소리가 등장한다는 자체로 흥미로웠다. '여배우'의 금기와도 같은 것인 술과 담배를 끊임없이 하고 소리치고 달리고 울고 하는 인간적인 '문소리'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원래 팬이었지만 더 팬이 되었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문소리가 자신을 지키면서 오늘도 내일도 배우로서 버티고 남아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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