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할까'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서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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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보면 세상은 자아와 타자만 존재한다. 세상은 '나'와 '남'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남을 어떻게 구분할까. 큰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감을 동원해서 나와 타인을 구분한다. 머리 색, 얼굴 모양, 키, 향기, 피부촉감, 등등이 나와 타인의 것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그리고 사회나 국가에 소속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특징들로 타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주로 인종, 국가, 나이, 지위, 언어 등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비슷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면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동질감과 안정감 속에서 힘을 얻고, 새로운 긴장감과 두려움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이 관계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여기서 '비슷하다'는 감각은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적용된다. 거울을 보면서 어제와 크게 바뀌지 않은 자신의 외모와 향기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이 자신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다'하는 감각 그리고 그 이전에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감각이 인식과 삶의 토대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스스로에게 '비슷하다'는 감각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는 것을 인식하기가 어려워지고, 거울을 보면 안정감 보다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생긴다면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이러한 상상을 스크린 속에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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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사람'이다' 남성도, 여성도, 한국인도 외국인도, 노인도 어린이도 청년도 아닌 그저 사람이다. 그를 하나의 지속되는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변한다. 자신의 기억외에는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이 바뀐다. 단순한 모습 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와 인종과 같은 사회적인 특성도 변한다.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왜?'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 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 아마 영화가 '왜?'에 집중했다면 주인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떠나는 모험담 같은 구성이 되었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관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매일 같이 변하는 사람의 직업은 가구 디자이너이다. 매일 바뀌기 때문에 고용되어서 직장을 다니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력서에 있는 얼굴과 전혀 다른 얼굴과 특징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니 일일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가구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우연히, 혹은 다행히도 이 사람은 이 일에 꽤나 재능이 있고 유능하다. 이 사람의 모습이 잠들고 나면 바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의 단짝 친구 한 명 뿐이다. 이런 사람이 가구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잘생기고 젊고 미남인 모습으로 일어난 날에 여성에게 고백을 하고 사랑을 나눈다. 모습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몇날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 버티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은 잠들었고 모습이 바뀐다. 모습이 바뀐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다른 여성과의 만남에서 의례 그랬듯이 그 여성과의 만남을 끝내고자 마음 먹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는 달리 용기를 내서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여성은 이 사람의 이야기에 처음엔 혼란스러워한다. 놀랍게도(!) 이내 곧 이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여성은 많은 노력을 하지만 매일매일 변하는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공포고 스트레스가 된다. 어느 날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전혀 알아보지도 못할 수 있다는 공포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주거나 만나게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여성을 점점 더 지치게 한다. 결국엔 서로 갈등이 생기고 그 사람은 떠난다. 여성은 그 사람을 찾아 떠나고 마지막엔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키스씬을 보여주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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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몇번 봤지만 지식도 부족하고 글 재주도 부족해서 느끼는 것만큼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내가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절하게 정리하는 것에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문뜩 어설프게라도 정리하는 것이 후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중심주제는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이다. 당연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할 때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모든 '감각적인 것'들이 매일 변한다면 어떨까? 나는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을까? 기억에 의존하더라도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진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고 매일 아침마다 거울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에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이 적응조차 할 수 없는 무한의 공포와 매일 마주해야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수십년의 세월동안 이것에 완전히 적응한 것처럼 나오지만 나는 죽을 때 까지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갑자기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리고 거울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면 뇌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머리카락을 미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 다른 존재가 된다면 뇌가 받을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계속된 스트레스로 온갖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글의 첫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나의 생각에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상과 자신의 실재가 일치되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자신이 상상한 만큼의 능력이나 외모를 가진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들과의 갈등을 견뎌낸다. 매일 같이 자신이 극도로 변한다는 것은 이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는 의미다. 또한 타인과의 갈등을 이겨낼 힘도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안정성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을 인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인식의 주체는 '나'이고 타인은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주체와 대상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런 조건에서 인식자체가 성립되기가 쉽지 않다. 정치에서 이야기하는 보수와 진보의 양날개처럼 자아의 안정감과 타인의 역동성의 균형 맞추어 져야하는데 이것이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이런 사람이 과연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밤에 조종사들이 바다에서 비행을 하다보면 바다에 하늘이 비쳐져서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바다에 비행기들이 종종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를 '야간 비행 사고'라 불린다.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은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는 조종사들처럼 타인과 자아를 구분하지 못해서 수 많은 타인들에게 휩쓸려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아조차 타인이 되어버리는 공포와 불안으로만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독약에 중독되거나 하면 온 세상이 회전하면서 자신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연출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이 딱 이 사람의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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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관계맺고 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까? 계속 변해서 안정감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면 된다. 영화에서 감각적인 부분들은 바뀌지만 그의 의식에 가까운 부분들은 변하지 않는다. '기억이나 생각, 느낌' 같은 감각보다는 의식에 가까운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들마저 모두 변해버린다면 정말로 나를 나로 인식하지 못해서 '자아의 아노미'상태에 빠져서 자살해버릴 지도 모른다. 오감에 의존해서 관계를 맺고 안정감을 만드는 것을 대신해서 철저히 생각과 이야기에 의존하는 관계맺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어제와 같은 생각과 기억을 하는 '나'만이 어제와 오늘의 나를 연결시켜준다.


근대철학의 시작이라는 데카르트가 계속되는 회의 끝에 '생각을 하는 나' 를 찾았던 것과 비슷하다. 신이 자신의 동질성을 보장해주는 것에서 벗어나서 스스로의 동질성의 찾고자 했던 데카르트의 노력의 끝은 결국 자신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는 색채부터 무지개 빛 가득이지만 근대초기사람들의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근대의 특징을 어떻게 정의 하는 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영화에서는 한 사람만 감각적인 부분이 변화하지만 모든 인간이 감각적으로 변화한다면 어떨까. 서로와 서로를 어떻게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역시 '생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제 나누었던 대화를 서로 기억하고, 그 감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사상과 생각들을 공유하는 작업만이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서로를 확인하기는 힘들겠지만, 오히려 지금보다 편견이 적은 상태로 언어와 소통에 더 집중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외모로 상품화하고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가 하는 생각과 말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도 꽤나 즐거울 것이다. 만나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이야?"로 시작해서 서로를 확인하는 세상은 더 사려깊고 즐겁지 않을까?서로의 변화와 행동을 모두 대화와 말로 동의를 구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보다는 행복한 세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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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1. 어느 날 애인에게 '사람은 어차피 매일 죽고 아침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내가 한 이야기를 가장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죽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어제의 일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고, 내일의 삶에 공포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
#2. 한효주가 너무 이쁘게 나온다. 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의 색채가 너무 아름답다. 다시봐도 아름다운 한효주 짱짱.

#3.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영화라는 글들이 많이 있었다. 난 그 이야기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효주가 진정으로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순간들에는 절세미남들이 등장한다. 여성으로 변하더라도 아름다운 여성과 대화하고 사랑을 나눈다. 여전히 외모지상주의의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영화의 주제가 '외모지상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신경은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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