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지만 듣지 않고 있는 우리

경청을 가로막는 12가지 이유

by 진현정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경청을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진정한 대화의 기술은 경청에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실 경청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경청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거나

‘사랑의 동사형’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신과 의사 스캇 펙 박사는 그의 저서 *『끝나지 않은 길』*에서 진지한 경청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진지한 경청의 본질적인 부분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를 가능한 한 많이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욕구와 편견을 잠시 내려놓는, 즉 ‘괄호로 묶는’ 훈련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이 생기며,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험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의 자아를 확장합니다. 이러한 경청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의 춤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 정의를 참 좋은 정의라고 늘 생각합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든 상담 장면에서든, 이 정의를 마음에 두고 지금 내가 진정으로 경청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거울로 삼습니다.


경청은 단순히 귀로 듣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비워서 상대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경청을 방해하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방해 요인을 ‘경청을 가로막는 12가지 걸림돌 (12 Listening Blocks)’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며,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서 자주 멈추는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진심으로 듣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1. 비교하기 (Comparing)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누가 더 낫지?’를 따집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가, 더 성숙한가, 더 아픈가를 저울질하느라 정작 그 사람의 마음은 놓치고 맙니다.


2. 마음 읽기 (Mind Reading)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진짜 속마음’을 추측합니다.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피곤할 거야.”
이렇게 단정하는 순간, 그 사람의 말은 사라지고 내 머릿속 상상만 남습니다.


3. 리허설하기 (Rehearsing)

상대가 말하는 동안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뭐라고 답해야 하지?’, ‘이때 이런 말을 하면 괜찮을까?’ 하고 다음 말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지금의 이야기는 흘려보내게 됩니다.


4. 필터링 (Filtering)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상대의 불편한 감정이나 불만은 슬며시 걸러내어 놓치게 됩니다.


5. 판단하기 (Judging)

‘저 사람은 너무 예민해’, ‘그건 말도 안 돼’처럼 이미 마음속에서 평가가 내려진 순간, 귀도 닫히게 됩니다.


6. 공상하기 (Dreaming)

대화 도중 어떤 말이 나의 기억을 건드리면 마음은 과거의 장면으로 흘러갑니다.
눈앞의 사람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7. 동일시하기 (Identifying)

상대의 이야기를 내 경험에 빗대어 해석합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공감처럼 보이지만, 관심은 이미 나에게 향해 있습니다.


8. 조언하기 (Advising)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돼.”
조언은 쉽지만, 공감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9. 논쟁하기 (Sparring)

이야기 속에서 반박할 거리를 찾습니다.
대화는 점점 ‘이기기 위한 싸움’이 되고, 마음은 닫히며 말은 날카로워집니다.


10. 옳으려 하기 (Being Right)

틀리고 싶지 않아 사실을 비틀거나 변명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내가 이기는 것’이 됩니다.


11. 주제 바꾸기 (Derailing)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면 농담하거나 화제를 바꿉니다.
잠깐의 가벼움은 주지만, 상대는 ‘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구나’라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12. 무조건 동의하기 (Placating)

갈등을 피하고 싶어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은 진짜 경청이 아니라 ‘회피’입니다.



이 12가지 경청 방해 요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듣는 방식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자주 멈추는지, 어떤 습관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는 걸 방해하는지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잘 듣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경청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며,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확장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마음의 춤에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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