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담아주고, 버텨주기

마음의 그릇이 되어주는 부모

by 진현정

감정을 안아주고, 담아주고, 버텨주기

– 마음의 그릇이 되어주는 부모


누군가의 감정을 버텨준다는 것은, 그 마음이 다시 안정될 수 있도록 함께 머물러주는 일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꾸 우는 거야…”
잠을 거의 못 잔 젊은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한숨을 내쉰다.
아기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엄마는 “그만 좀 울어!” 하고 소리를 지르고, 곧바로 자신을 탓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러면 안 되는데… 또 참지 못했어.’


상담실에서 만난 젊은 엄마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기가 울거나 보채거나 투정 부릴 때마다 짜증이 치밀고, 감정이 폭발하고, 후회가 뒤따른다.
그 순간의 감정이 얼마나 버겁고, 스스로를 얼마나 무력하게 느끼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울 때 안아주고 달래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지친 엄마에게는 그것조차 쉽지 않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조절할수록 아이를 진정시키기 쉬워지기 때문에,
부모의 정서적 안정은 아이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물론 육아는 신체적 에너지를 크게 요구하는 일이기에,
부모의 스트레스 수준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감정 조절 능력이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아주기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D. W. Winnicott)은

“안아주기(holding)”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안아주기’는 단순한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
아이가 느끼는 불안·분노·두려움을 부모의 마음이 함께 품어주는 행위이다.

아이가 울 때 그 울음을 막기보다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어.”
이 한마디가 아이에게 전해주는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안정감이다.



담아주기(Containing) – 감정을 소화해 되돌려주는 마음의 그릇

정신분석가 윌프리드 비온(Wilfred R. Bion)은
‘담아주기(containing)’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는 견디기 힘든 분노나 불안을 부모에게 쏟아내고,
부모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다시 안정된 형태로 되돌려준다.


즉,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담아주는 그릇이다.
“왜 화를 내?”라고 다그치기보다
“지금 많이 속상했구나.”
감정의 의미를 담아 되돌려주는 것이 바로 컨테이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점차

“감정은 무섭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것”이라는 내적 확신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아이의 감정을 안아주고, 담아주고, 버텨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내 감정은 괜찮은 거구나’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하며 정서 조절 능력을 발달시킨다.



함께 조율하며 배우는 감정의 언어

애착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아이가 부모와의 안정된 정서적 교류 속에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부모가 함께 조율해 주는 **공조절(co-regulation)**의 형태로 시작하지만,
이 상호작용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점차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자기조절(self-regulation) 능력을 길러간다.


신경과학자 앨런 쇼어(Allan Schore)는
“보호자의 감정 조절 능력이 아이의 뇌 속 정서 조절 체계의 청사진이 된다”라고 말했다.
즉, 부모가 감정을 버텨주는 그 순간들 속에서
아이는 ‘감정을 느끼고, 견디고, 가라앉히는 법’을 배운다.


이 경험은 단순한 위로나 공감을 넘어,
아이가 세상 속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느끼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정서적 토대가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고 버텨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순간의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부모의 힘 또한 연습을 통해 자란다.



감정을 버텨주는 순간

한 청소년 내담자와의 상담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최근 있었던 부모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에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학생이었다.


나는 그 감정을 멈추게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함께 있었다.
그의 감정이 충분히 흘러나올 수 있도록 하며,
“그렇게 느껴도 괜찮고, 여기는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
그 메시지를 말이 아닌 눈빛과 침묵으로 전하고 싶었다.


잠시 후, 나는 그 학생이 자신의 폭발적인 감정이
제지받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보았다.

‘이렇게 울어도 괜찮은 걸까?’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점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그가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경험은 자기인정과 자기사랑의 작은 싹이 트는 시점이었다고 믿는다.



부모를 위한 마음의 연습

• 아이의 감정을 바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잠시 함께 머무르기.
• “그만 울어.” 대신 “지금 속상하구나.”처럼 감정을 언어로 이름 붙여주기.
•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부모 자신도 잠시 숨 고르며 마음을 돌보기.



감정을 버텨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내 감정은 괜찮은 거구나’라는 내적 메시지를 배우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 역시,
감정을 버텨내는 연습을 통해 조금씩 단단해진다.



© 2025 진현정. All rights reserved. 본 글의 내용은 저자의 창작물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