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나의 사회 첫 성장기
2020년 말, 나는 코로나 시기 한복판에서 온라인 코딩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회사의 주력은 B2B와 B2G였고, B2C는 상대적으로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B2C는 성인과 초중고로 나뉘는데, 업력(?)으로 따지면 성인이 우세했고 초중고는 당해연도에 갓 시작한 신생 팀이었다. 내가 맡게 된 곳이 이 신생 팀이었다.
나는 ‘IT서비스 운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입사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기획, 영업,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걸 다루는 멀티 포지션이었다. 1차적으로는 선임들이 짜놓은 판을 굴리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곧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첫 회사 + 떨려서 + 잘 모르니까) 3단 콤보로 당시 심적으로도 많이 쭈굴쭈굴했던 시절이었다. 한 예로 기존에 선임이 했던 방식이 너무나 이해가 안 되고 별로인 거 같았다. 그런데 다른 동료에게 듣기로 그 선임이 서울대 출신이란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든 생각.
서울대...? 참나... 그게 뭐!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ㅇ.ㅇ)
입사 3개월쯤 됐을까. 함께하던 선임들이 모두 퇴사했다(?). 스타트업 특성인지 그 회사 때문인지 사람들이 정말 자주 바뀌었다. 결국 내가 맡은 서비스의 운영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대학생 인턴을 붙여주긴 했지만, 오히려 내가 후임을 매니징해야 하는 업무가 생긴 셈이었다. 물론 실질적인 책임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더 문제는 인턴들이 대학생이라 다들 복학 이슈로 2,3개월 하다가 교체되니... 업무 알려주고 숙련시키고 제대로 이제 효과 좀 내볼까 싶으면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또 가르쳐야 하는... 효율적이지 못한 에너지 소모의 반복이었다.
다행히 회사 입장에서는 이 사업이 주력도 아니었고 사회초년생이 애쓰면서 끌고 가고는 있었기에 나에게 큰 압박을 주지는 않았다. 그 덕에 비교적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동시에 외로움이었고, 부담이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
① User/Work Flow
3개월 간은 선임이 그려준 전체적인 틀 안에 일부를 단편적으로 진행하기만 했었다면, 혼자 남게 된 이후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의 입장에서 어떤 순서로 입장하고 퇴장하는지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튜터 모집부터 정산까지, 학생의 체험 신청부터 리포트 제공까지—모든 과정을 직접 살펴보며 점검했다.
동시에 각각의 퍼널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정보를 주고받는지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들과 업무를 나열했다. 지금 보면 이 행위가 'User Flow'를 살피고 그에 맞는 'Work Flow'를 만든 것이었다.
② 업무 Tool들
Slack, Notion, Excel, Google Data Studio 등등 전부 낯설었지만 배워야만 했다. 서점에서 관련된 책을 사서 최소 월 1권을 읽고, 실습할 수 있는 것들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그렇게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각화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말 그대로 삽질이 성장의 동력이었다.
엑셀 함수 vlookup, index, match 등 새로운 것을 알아오면 집에 와서 직접 해봤다. 어떻게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새벽 4시까지 삽질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ChatGPT가 다 해주더라...)
③ 유사 경험의 구조 대입
나는 대학생 때 교육 대외활동을 했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인 아이들이었고,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게 했었다. 그런데 이 경험이 첫 회사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왜냐하면 이 둘의 구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강사'로 활동했다면, 회사에서는 ‘사무국’의 입장에서 학생과 강사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내가 player였던 '강사'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때 나는 무엇이 필요했지? 뭐가 불만이었지? 뭘 하면 더 좋을까?’ 등을 대입해 보며 업무를 할 수 있었다.
④ 코딩 입문 지식
이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내가 코딩 교육 플랫폼 회사에 입사했다니까 코딩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코딩을 전혀 몰랐다. 친구들 다 국비지원받으면서 코딩 배우던데 나는 돈 받으면서 코딩이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간 거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코딩 회사인데 코딩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심지어 이런 망상까지 했었다. '회사 측에서 나의 강사 대외활동 경험을 수학이 아니라 코딩으로 착각해서 나를 뽑았나...?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회사에 와서 여기저기 물어보니 운영자가 코딩을 전문가처럼 잘할 필요는 없지만, 그게 무엇인지 기본적인 이해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당시 회사의 B2B 상품 중 기업재직자의 초등 저학년 자녀들이 듣는 입문용 수업을 내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코딩 관점에서 나이로 보면 그들과 나는 동갑이었다...ㅎ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반복문 중 “i = i + 1”이라는 구문을 이해 못 해 한참을 끙끙대다가 결국 교육팀 동기에게 SOS를 쳤던 적도 있다. 나는 순수 정통 수학만 알았기에 좌우를 i로 소거하면 '0 = 1'. 도대체 어떻게 성립한다는 것인지 답답해 미쳤던 기억이 난다.
기초는 저렇게 배웠고 조금 심화된 내용은 회사의 B2C 성인 대상의 교육을 찾아서 직접 실습하며 공부했다. 자사의 교육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회사의 복지 중 하나라 그걸 이용했다.
위와 같이 코딩 세계의 지식을 따라가고자 했던 덕분인지 나의 본업에서 학부모에게 결제를 유도하는 상담을 할 때, 오히려 내가 학부모처럼 코딩을 몰랐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기에 설득하기에 유리했다.
⑤ 직접 영업, 그리고 성과까지의 경험
운영을 하면서 전화로 체험 상담을 하고, 정규 전환 영업까지 직접 맡았다. 전화 상담 후 고객이 결제했다는 알림이 울릴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이게 '비즈니스'인가(!). 게다가 성과도 괜찮았기에 힘들어도 일할 맛이 났다.
근데 또 내가 잘한 것도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이 너무나 순풍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개발자 붐과 어린 학생들의 코딩 선행학습...!
지금 돌이키면 뭣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 인턴과 또래 동기와 으쌰으쌰 하며 회사 돈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는 경험을 했던, 어쩌면 내 직장생활 인생 중 해맑게 즐겁게 했던 시절일 것 같다.
체험 신청 584명
체험 전환율 75%
정규 전환율 35%
정규 학생 수 17명 → 113명
누적 정규 학생 수 316명
(불과 6개월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⑥ 스타트업의 빠른 속도와 문화
돌이켜 보면,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스타트업’이라는 환경 덕분이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해보자고 하면 일단 믿고 맡겨주는 문화.(너무 주력 부서가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일 수도...!?) 이런 곳에서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게 곧 성장으로 이어졌다.
책이나 여기저기서 정보를 찾아보고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보는, 이런 실험들을 계속해서 해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이 시절을 돌아보면, 단순히 운영자가 아니었다. 실무부터 기획까지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사람. 그렇게 나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서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으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무언가 부족한 환경, 혼자 감당해야 했던 상황들. 모두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불완전함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시절을 지나친 현재의 나는 안다. 그 첫 회사에서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내가 스스로 힘들 때마다 계속 되뇌었던 문구가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역경'들이
나중에는 좌우 글자가 바뀐 '경력'이 된다."
그러니 혹시 지금 당신도 첫 회사를 고생 중이라면,
언젠가 멋지게 써먹을 수 있는 경력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