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판 리더십
뜻하지 않는 130명 리딩 프로젝트
우리 학부의 행사로 학부생부터 대학원생, 교수님까지 참여하는 3박 4일 떠나는 것이 있었다. 당시 목적지는 전라남도. 해야 할 일은 이동부터 일정, 프로그램, 예산, 협조 요청까지. 누군가는 이 어마어마한 행사를 총괄해야 했고, 그 누군가는 복학한 지 1년 된 나였다.
사실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보상도 없고, 책임만 크고, 방학도 반납해야 하니까. 불행하게도 나의 학번이 맡아야 하는 순서였고, 동기들과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다들 시선을 바닥에 박고 있을 때, 나는 어느새 총대를 메고 있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내가 총대 멜 테니, 너희는 도와줘." 협상의 결과였다.
문제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사람 구하기에서 탈진 직전이었다. 방학 내내 매주 최소 1회 모여야 한다는 소문 덕분에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않았다. 결국 새벽까지 구슬리고, 또 구슬려 12명의 팀원을 꾸렸다. (체험판 리더십 시작의 순간)
1) 회의보다 준비가 더 길다
내가 이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갈아 넣고 있다
방학 때 열린 첫 회의 날, 나는 의외의 감정을 느꼈다. 그건 바로 죄책감. 물리적으로는 1시간이었지만, 인원수를 곱하면 1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회의보다 회의 준비가 훨씬 길었다. 어젠다 만들고, 구조 짜고, 흐름 정리하고, 막히는 부분 예상하고…
처음엔 나도 미숙했다. 12명을 모아놓고 헤매기 일쑤. 그래서 변화를 시도했다. 구조화, 팀을 나누고, 각 팀에 리더를 세웠다. 회의 순서는 [전체 공유 건 → 리더 간 논의 → 팀별 논의]로 진행했다. 나는 팀별 논의 때는 각 팀을 돌며 막힌 부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회의가 구조를 만나자, 회의는 시간 낭비가 아닌 전략이 됐다.
2) 어느새 내 입에서 나온 말
어라? 이거 회사에서 우리 팀장님이 하는 말 아니었나…
“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깔끔하게 정리 좀 해줘.”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뭐야?”
“결론이 뭐야? 지금 이걸 다 읽을 시간 없어.”
그때 깨달았다. 리더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구나.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자료를 만들 때,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기 좋게’ 정리하는 훈련이 자연스레 시작됐다. 잘하진 못해도, 왜 필요한지는 확실히 안다. 내 체험판 리더십 덕분이다.
3) 실무보다 어려운 건 사람 매니징
같이 일하는 건, 혼자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일의 성장단계'를 깨닫고 난이도를 체감했다.
개인 과제 → 주어진 걸 혼자 처리하기
조별 활동 조장 → 교수님과 팀원 사이에서 조율하기
전체 행사 총괄 → 설계하고 위임하고 전체를 매니징 하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내 손은 덜 움직이지만,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그 사람이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감정, 일정, 역량, 팀워크까지 챙겨야 한다. 리더십은 실무보다 더 사람 중심이었다. 이 경험 덕분에 지금 회사에서 팀장님들이 어떤 마음일지 유추하는데 도움이 됐다.
직접 다녀오지 않아도 머릿속으로는 얼마든지 수없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130명이 지방을 다녀왔고, 큰 사고 없이 모든 일정이 흘러갔다. 외부 협조도 잘 이루어졌고,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감각이 생겼다: '시뮬레이션'. 다르게 표현하자면 ‘빈틈을 찾는 습관’. 설계한 내용이 적합한지, 더 필요한 게 없을지 고민하는 능력.
사실 처음 이걸 맡게 되었을 때 진짜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소중한 대학 추억을 만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웃긴 대화로 글을 마친다.
행사 마지막 날, 외부 관계자가 내게 물었다.
“업체 직원이신 줄 알았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요? 대학교 3학년이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