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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꿈을 놓치고 깨달은 점

축구소년 시절 이야기

by Cosmo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축구를 접했다. 나이가 계란 한 판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적도 있고, 당연히 재발할까 봐 무섭지만, 이상하게 끊을 수는 없었다. 축구라는 스포츠... 이놈 아주 마약이다 진짜로




1. 축구의 시작: 공과 함께 한 어린 시절

(생각보다 너무 거창할 게 없는데... ) 초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잘하는 친구가 되게 멋있어 보였고 당시 2002년 월드컵이 있었다. 이후 부모님이 또래 친구들끼리 묶어서 취미 차원으로 방과 후 활동을 시켜줬다. 이밖에도 나는 거의 매일 축구를 달고 살았다. 학교 쉬는 시간 10분, 학교 체육시간, 학교 끝나고, 주말까지.



2. 축구가 알려준 인생 교훈

1) 학교 대항전: 왼발잡이의 도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간단 요약하자면 '자연스레 축구를 많이 했다'는 말이고 실력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매번 학교 대표로 대회를 나가는 정도였다. 사실 관할 시의 내에서 하는 학교 대항전은 엘리트 축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냥 고만고만한 아마추어들이 나가는 정도?

학교 대항전: OO시 내에서 최고의 초중고를 가려보자!

팀 이름: OO초등학교, OO초등학교 등등


나와 친구 A는 왼발잡이로 주목을 받았다. 그때는 사이드에서 돌파하다가 바로 크로스를 올리는 베컴 같은 '클래식 윙어'가 트렌드였다. 그래서 나랑 친구 A 모두 왼쪽 측면 공격수 자리를 선호했다.

그런데 각 부모님은 자식이 축구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달랐고, 코치님에게 보여준 적극성의 차이였는지 친구 A는 원했던 왼쪽 공격수가 되었고 나는 우측 공격수가 되었다.

나의 부모님: 취미까지만 하기를 희망

친구 A의 부모님: 선수 생활까지 도전해 보도록 밀어줌


근데 나는 그 구멍을 못 찾았다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우측에 있으면 무조건 뛰다가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려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선책으로 한번 접고 왼발로 올리기도 했는데, 템포가 늦어져서인지 그렇게 하면 혼이 났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다가 교체 멤버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너무 분했지만 지금은 "내가 인버티드 윙어에 대해 그때 알았다면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 나의 상황과 축구계의 트렌드가 일치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내가 리오넬 메시가 될 우연찮게 찾아온 찬스는 놓쳤다.

과거 윙어 트렌드: 클래식 윙어 (왼발이 왼쪽 사이드에 위치, 뛰면서 즉시 크로스 올리기)

최근 윙어 트렌드: 인버티드 윙어 (왼발이 오른쪽 사이드에 위치, 중앙으로 드리블하며 골대로 슛)



2) 경기도지사 대회: 현실을 마주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메타인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학교 친구 몇 명을 교외 취미축구 수업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도 나는 압도적인 실력에 속했다. 어느 날 코치님이 규모가 큰 대회를 나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그분이 왕년에 잘 나가셨는지 인맥이 좋아서 지인 찬스를 통해 내가 경기도지사 대회에서 OO시 대표로 선발되었다.

경기도지사 대회: 경기도 내에서 최고의 OO시를 가려보자!

팀 이름: 김포시, 남양주시, 안양시, 용인시, 포천시, 하남시 등등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축구를 잘하는 줄 알았다. (내 주변만 봤을 때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도지사 대회의 같은 팀 동료들과 훈련을 해보니 나의 실력이 처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엘리트 체육을 하던 친구들이었다. 말도 안 되는 피지컬과 킥력, 드리블력을 보니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또 그들에게 나는 굴러 들어온 돌이었고 실력도 그다지이라 무시(?) 및 천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ps. 나중에 고등학교 대항전에서 그 친구들을 상대팀으로 만났는데 그때는 내가 이겨서 너무 고소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보고 공감하기

친구 A와의 질긴 악연(?)은 ing였는데... 나와 위 상황들을 같이 마주했고 신의 장난인지 또 왼발잡이는 나랑 그 친구밖에 없었다. 각 부모님의 입장도 크게 바뀌지 않아서 이번에는 우측 윙어도 아닌 '좌측 풀백'이 되었다. 규모가 큰 대회라 수준/난이도도 높았다. 팀이 1등을 했으면 해외 연수를 무료로 갈 수 있었는데 막판에 아쉽게 2등으로 마무리했다. 이것도 신의 장난인가... 그때 갔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싶다.

출전 시간: 전경기 풀타임 출전(왼발잡이가 없어서)

팀 순위: 2등(내가 잘한 것보다 팀원들이 괴물들이었음)


여기서 느낀 것은 항상 공격수 입장에서 앞에만 있어봤지 뒤에 있는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축구는 뒤에 있을수록 전방을 넓게 볼 수 있어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하기 더 좋다. 이를 계기로 오히려 내가 공격수로 위치해 있을 때, 같은 측면에서 팀 파트너 혹은 상대방으로 있는 풀백의 입장을 몸소 체감할 수 있던 것 같다. 축구를 떠나서 나중에 인생을 살면서도 내가 겪어봐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커진다는 가르침을 그때 깨달은 것 같다.



3. 무너진 세계정복의 꿈

초등학교 6학년 때 경기도지사 대회를 나가며 확실히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엘리트 축구는 저렇게 훈련하고 경기하는구나...' 좌절하기보다는 나도 저 시스템 안에서 살아보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이후 부모님께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때까지의 인생 중 가장 크게 다투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집이랑 가까운 평범한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럼에도 나는 '학교대항전에서라도 눈에 띄면 언젠가 귀인을 만나 좋은 기회를 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세계정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속마음을 항상 지니며 살았다.

그런데 사실 동네축구만 했던 점, 피지컬 차이도 커지는 점으로 인해 중학교 이후부터는 '내가 다른 애들과 상대가 안되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중학교, 고등학교 넘어가면서 만나는 친구들의 지역이 넓어짐에 따라 더더욱 잘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선출이었던 친구와 축구해 보면서 진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어쩌면 내가 도전을 했었어도 안 됐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마음은 한순간이 아니라 서서히 내 마음에 가득해졌다. (세계정복이 아니라 동네정복도 못했다)


중학교 때부터 슈퍼스타k가 유행이었는데 참가자들이 정말 부러웠다. 일반인이 유명해지고 잘 나가서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저렇게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다. 만약 저 시기에 축구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남자라면 한 번쯤 해봤던 축구선수를 꿈꿨다가 포기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2가지 감정을 온전히 느꼈다. 하나는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했던 열정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것을 놓아야만 했던 상실감이었다. 하지만 그 상실감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다가올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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