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공허의 시대> by 조남호
이게 맞나..? 왜 이렇게 허무하지
요즘 자주 드는 감정이 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고, 계획도 세우고, 어떤 일들은 해내기도 했는데도, 이상하게 허무하다. 아무 일도 안 한 건 아닌데도, 어딘가 계속 비어 있는 느낌. 커리어도 관계도 일정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게 정말 괜찮은 삶인지, 가치 있는 인생인지 헷갈리는 기분. 마치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이게 진짜 의미 있는 건지 모르겠는 상태랄까. 단순히 게으르거나 방향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방향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그게 계속 멀게 느껴지는 묘한 공허함이다.
책 <공허의 시대>에서는 바로 이 감정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허무함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무력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삶의 철학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설치된(?) 목적주의가 틀렸고, 대안으로 충만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목적주의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나눠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긴다. 얼핏 들으면 생산적이고 논리적인 삶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이 만족하거나 행복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방식이 삶을 흑백 논리로 만든다. 100점을 받아야 성공이고, 그 외는 실패처럼 느껴진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하루는 곧 낭비로 여겨진다.
두 번째 이유는 인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로 가득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건 결국 내 컨디션, 외부 환경, 타인의 반응, 우연한 사건들까지 모두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 이 구조는 무한 반복된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만족은 찰나고, 곧 다음 목표가 생긴다. 목적은 항상 미래에 있고, 오늘은 그 수단이 된다. 결국 우리는 잠깐의 성취를 위해 영원한 긴장과 불안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 책은 여기서 ‘충만주의’라는 개념을 꺼내든다. 충만주의는 삶의 의미를 성취나 결과가 아닌, 경험 자체에서 찾는다. 말하자면 “무엇을 이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냈는가”에 초점을 두는 방식이다. 충만주의는 모든 경험을 편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패, 지루함, 불확실함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주어진 경험을 ‘full로’, 즉 최대한 몰입해서 살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설명할 수 있고, 그건 곧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느냐”를 의미한다. 계획이나 목표는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면 삶은 계속 비교되고 평가된다. 충만주의는 그 반대 방향에서, 모든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내는 걸 삶의 본질로 본다. 온전히 살아낸 하루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하루다. 충만주의는 그런 삶을 지향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기획 일을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목적주의적인 방식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하루는 결국 성과를 향해 이어져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의미 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결과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에 완전히 몰입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된 회의, 한 문장에 오래 집중했던 글쓰기, 누군가와의 깊은 대화처럼 말이다.
이 책은 계획을 버리라고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계획은 필요하되,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충만주의에 가까워야 한다고 말한다. 계획은 방향이지만, 경험은 내용이니까. 나는 이 말을 꽤 현실적인 조언으로 느꼈다. 계획은 있어야 하지만, 그걸 수행하는 하루하루는 충실히 살아내야 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단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다.
군대에서 본 책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그땐 그냥 벽에 붙은 글귀 같았는데, 지금은 몸으로 느껴진다. 책을 읽은 지금은 이해까지 되는거 같다.
성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매 순간을 그 자체로 살아낼 수 있어야, 그 성취조차도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말 같다. 앞으로 나는 어떤 계획이 있든, 그 안에서 내가 겪는 감정과 경험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면, 그 하루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충만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