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에세이로, 나의 경기를 돌아보다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by 손흥민

by Cosmo
하루라도 손흥민 선수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어릴 적 축구선수를 꿈꿨던 축구소년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상상은 꽤 흥미롭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는, 그 상상이 조금 달라졌다. 화려해 보이던 삶의 이면이 보였고, ‘축구천재’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고독이 쌓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유럽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을 그의 어린 시절 타지 생활과 겹쳐보니, 그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의 삶을 엿보며, 나는 내 인생에 참고하고 싶은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 봤다.





1. 위치에 맞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손흥민 선수의 전매특허인 ZD 감아차기. 소위 ‘손흥민 존’이라 불리는 그 구역은 우연이 아니었다. 매일 1,000개씩 반복한 연습의 결과였다. 득점왕을 만들어낸 골도 결국 그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휴식 시간조차 회복에 쓴다. 훈련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도 축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리한다. 다른 자극에 에너지를 흘려보내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타지에서 생활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축구에 쏟았고, 그래서 친구도 많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단순한 감탄보다 조금 불편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원하는 만큼의 input을 넣고 있는가?


‘못 살기 vs 잘 살기’ 무엇을 원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후자를 고를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output은 높은데,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원하는 결과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투입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현실이다.



2.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계속’ 잘하는 것

손흥민 선수만큼 인상 깊었던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전 축구선수였던 그는 그 세계의 냉혹함을 알면서도 그 길을 원하는 아들에게 안내했다. 대신 옆에서 끝까지 함께했다.


그의 교육 철학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첫째는 기본기였다. 화려한 슈팅보다 패스, 리프팅, 트래핑을 반복하게 했다. 축구는 결국 공을 다루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골 장면은 하이라이트에 남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시간은 대부분 볼과 친해지는 순간들이다.

모두가 골을 연습할 때, 그는 볼 감각을 연습했다. 모두가 화려함을 쫓을 때, 그는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 손흥민 선수는 양발을 잘 쓰는 드문 강점을 갖게 됐다.


둘째는 멘탈 관리였다. 함부르크에 입단했을 때, 프로 계약을 했을 때, 첫 골을 넣었을 때. 자칫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 순간마다 아버지는 마인드셋을 점검했다. 심지어 대중 반응을 보지 못하게 노트북을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깨달은 건 하나였다. 순간의 임팩트보다 더 어려운 건, 그 임팩트를 오래 유지하는 힘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관리도 실력이라는 것.


나는 늘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경기를 뛰면서, 거칠기로 유명한 리그에서 큰 부상 없이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알고 보니 과거에 수차례 부상을 겪었고, 그 이후 철저히 몸을 관리해 왔다. 우리는 결과만 본다. 하지만 그 결과 뒤에는 반복된 회복과 조절이 있었다.



3. 프로는 ‘좋아하는 일’ 앞에서도 긴장한다

축구선수로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떠올릴 때, 설레고 신나는 장면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꿈의 무대니까. 그런데 손흥민 선수가 표현한 감정은 의외였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같은 긴장감이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길인데도, 부담과 책임이 먼저 온다는 것. 그 경기는 나에게는 치맥과 함께 보는 하나의 경기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을 쏟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생각을 바꿔보게 됐다.

“축구선수가 밥 먹고 축구만 하는데 왜 저러냐?”처럼

“나는 밥 먹고 이 일만 하는데 왜 아직 이 정도일까?”라고 나에게도 묻는 게 맞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항상 가벼울 수는 없다. 프로의 세계는 즐거움 위에 책임이 얹힌다.





어릴 적 축구선수를 간절히 꿈꿨던 나에게, 이 책은 잠깐이나마 그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시간이었다. 유럽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던 장면을 직접 봤던 사람으로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증명해 왔는지도 다시 느껴졌다.


나는 축구선수가 되지는 못했다. 현실적인 이유로 그 길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태도, 관리, 반복, 멘탈은 어떤 분야에서든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축구 인생사에서 오르막 내릭막이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우연찮게 그가 잘 나가던 시기와 주춤하던 시기의 흐름이, 당시 나의 인생 곡선과도 비슷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인생사... 다 그런 걸까?


그가 자신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듯, 나는 나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손흥민으로 살아보는 상상은 여전히 즐겁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상상하게 된다.

이제는 그 자리를 부러워하기보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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