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본 시민 교양론 - 제6장-1'
[표지사진: 필자가 감마로 생성]
21세기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인터넷 한 번의 클릭으로 지구 반대편과 연결되고, 경제적 결정 하나가 전 세계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 연결된 세상, 자유롭게 무역하고 소통하는 세계화의 시대가 지금 큰 변화를 맞고 있다. 30년간 지속되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였다. 이는 단순히 자유무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한 포괄적인 세계 시스템이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면서 만들어진 이 질서 속에서 한국은 기적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제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유무역에 등을 돌렸고, 바이든 행정부도 "Buy America" 정책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4년 다시 집권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에 대해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며, 전 세계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더 결정적인 것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023년 자유무역 자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60년간 전 세계에 자유무역을 전파해 온 미국이 스스로 그 깃발을 내린 것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답은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자유무역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던 중국이 이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 게임의 룰로 중국이 자신을 이기려 하니 게임 자체를 바꾸고 싶어진 것이다.
국제정치에는 냉혹한 법칙이 있다.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현실주의'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을 말해도 결국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패권 전환기'다. 기존 패권국인 미국과 도전국인 중국 사이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기존 강대국과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에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라고 했다.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물론 21세기에 핵무기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직접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무역전쟁, 기술전쟁, 이념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러한 갈등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전 세계를 두 진영으로 나누고 있다.
한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이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경쟁을 넘어 가치와 체제의 대립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2025년 현재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점진적으로 점령지를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군사·경제 지원에 힘입어 강하게 저항했으나,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러시아가 우세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전쟁은 국제질서가 여전히 힘의 논리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1세기에도 강대국이 자의적으로 무력 침공을 감행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국제법과 규범이 전체주의 국가의 의지 앞에서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하며, 경제·외교·정보·사이버 등 다양한 수단을 총동원하는 초한전 양상의 전쟁을 전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하고 파병까지 하면서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들 간의 연대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군사협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6월 이스라엘-이란 충돌 역시 이러한 패권 경쟁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이란의 보복은 글로벌 패권 구도와 에너지 질서, 국제 금융시장에 중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사건은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라 패권 전환기 국제질서의 한 단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안보를 뒤흔들었고, 중동 지역의 불안정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교란시킨다. 이는 한국과 같은 에너지 수입 의존국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원유와 가스 가격 급등, 금융시장 불안정, 국민 안전 위험 등 다방면에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이 얼마나 글로벌 질서의 변화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 벌어진 사건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 안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시대 상호의존성의 양면성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한국에도 직접적인 경고가 된다. 국제사회가 단합하지 못하고 억지력과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전체주의 국가의 무력 도발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참전, 중국의 대만 위협 등은 모두 전체주의 국가가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힘에 기반한 질서를 추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단면이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초한전을 넘어 무력행사까지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 강화는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안보와 자유, 평화는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이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와 강력한 억지력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형성된 근대 국제체제는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바탕으로 했다. 각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최고 권력을 행사하며,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원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나 중국의 대만 위협을 보라. 이것들이 단순히 해당 국가들만의 문제일까?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직결되고, 대만해협의 긴장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뒤흔든다. 국가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 탄압이나 환경 파괴는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들은 "내정불간섭"을 방패로 삼아 자국민을 억압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내정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족을 탄압하면서도 홍콩의 자유를 짓밟고, 대만을 위협하는 것이 그 예다. 러시아는 "NATO 확장이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일까, 아니면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패권 전환기가 더욱 첨예하게 만든 질문이다.
권위주의 진영은 "아시아적 가치"니 "중국적 특색"이니 하며 인권 탄압을 정당화한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을 "테러 척결"이라고 하고, 미얀마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국가 안보"를 위해 진압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한국의 경험을 보면 답은 명확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인권보다 한미동맹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1987년 6월 항쟁에서는 국제사회의 지지가 민주화의 큰 힘이 되었다. 인권의 보편성은 서구적 가치 강요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근본이다.
지금 권위주의 진영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사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진정한 다양성과 관용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잘 보장된다.
패권 전환기의 또 다른 특징은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가 된다.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를 규제하고, 중국이 한국에 사드(THAAD) 보복을 가한 것을 보라.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자유주의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경제적 무기화가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러한 경제 무기화는 더욱 노골적이 될 전망이다. 중국에 대한 60% 관세는 물론, 전 세계적 관세 인상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크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국경을 넘나들며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다국적 기업의 결정이 한 나라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그 나라 정부의 정책보다 클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전 세계 서민들의 삶을 파탄 냈지만, 정작 책임져야 할 이들은 "대마불사"라는 논리로 구제받았다.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변화는 중국의 부상과 미중 패권 경쟁이다. 한국은 이러한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하고 있다. "경중안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전면적 디커플링을 추진하면서도, 동맹국들에게는 더 많은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실용적 계산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체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시장경제와 국가자본주의, 개방과 폐쇄 사이의 선택이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같은 중견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세력과 미국이라는 해양세력 사이에 끼인 반도 국가다. 더욱이 북한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은 이미 "대국 주변 소국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역내 대국을 따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역외 대국의 지지 아래 신변의 대국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자의 경우 소국은 왕왕 자아를 잃고, 후자의 경우 위험해진다"라고 협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지난 70년간 이룩한 번영과 자유는 어떤 가치 위에 세워진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 덕분에 한국전쟁 이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자유무역질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 덕분에 독재를 극복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패권 전환기에 권위주의 진영은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을 중심으로 한 "반미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다극화"나 "다자주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지역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고, 중국도 은밀히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병력을 제공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을 전수하는 교환관계는 한반도 군사적 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들의 연대는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며, 동시에 한국의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반미연대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중국, 러시아 등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다원주의가 아니라 자국 중심의 새로운 패권이다. 홍콩의 자유 억압, 신장 위구르족 탄압,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보면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다.
물론 미국도 완벽하지 않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 조작,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 국내 인종갈등 등 비판받을 점이 많다.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더욱 강화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고,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선할 능력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해관계다. 미국과는 70여 년간 피로 맺은 동맹이며,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은 일어섰고 번영을 누리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과 함께 "아메리카 퍼스트", 브렉시트 등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노동자들과 이민자 경쟁에 내몰린 서민층에게 "내 나라 우선" 정책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1930년대 대공황 시기처럼 오히려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국제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소비자 부담 증가와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는 고무역 의존국가로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상호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 혼자만의 번영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무역 파트너 다변화를 통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고, 첨단 기술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패권 전환기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첫째, 가치 동맹의 강화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 쿼드(QUAD), 아우쿠스(AUKUS) 등 새로운 협력체에 대한 참여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강화되더라도,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둘째, 경제 안보의 강화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리스크 분산은 필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셋째, 억지력의 확보다.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고, 대신 한국의 발언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적 핵무장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로마의 격언이 현실이다.
넷째, 시민 사회의 역량 강화다. 가짜뉴스에 대한 판별 능력, 비판적 사고력, 민주적 토론 문화를 키워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늘리고, 건전한 시민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내부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 외부 위협을 막는 첫걸음이다.
다섯째, 전략적 유연성의 활용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모든 사안에서 흑백논리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핵심 이익은 분명히 하되, 부차적인 문제에서는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패권 전환기에는 통일 문제에 대한 접근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통일의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현실적으로는 "선 평화공존, 후 통일"의 전략이 필요하다.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평화로운 공존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더라도 핵무기는 포기하도록 하고, 경제 교류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과거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더욱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연결자(connector)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서구와 비서구를 연결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연결자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규범 창출자(norm entrepreneur) 역할도 가능하다. 한국의 민주화 경험, 경제발전 모델, 문화적 매력 등은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식 민주주의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
혁신 허브(innovation hub)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혁신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AI, 반도체,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에서 한국이 글로벌 리더가 되어야 한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더욱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균형자(balancer) 역할도 필요하다. 트럼프의 극단적 정책에 대해 동맹국으로서 때로는 조율하고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조건적 추종보다는 건설적 협력이 필요하다.
패권 전환기를 살아가는 자유주의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글로벌 사고(global mindset)가 필요하다. 한국만의 관점이 아니라 세계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나 중국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현혹되지 말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제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을 키워야 한다. 가짜뉴스와 프로파간다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들의 정보 조작과 민주주의 국가들의 포퓰리즘 정치에 모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문화적 감수성(cultural sensitivity)을 기르되,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는 타협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가치의 보편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를 알아야 미래의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이 한국 발전에 기여한 바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적응력(adaptability)을 기워야 한다. 패권 전환기는 급변의 시대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강점이기도 하다.
시민교양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정치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는 우리 각자의 자유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공론장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단순히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향한 집단적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쇠퇴하면서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규칙 기반 국제질서"다. 이는 자유주의의 이념적 색채를 희석한 채, 국제법과 다자주의에 기반한 질서를 말한다.
미국과 서방이 더 이상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규칙 기반 국제질서"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자유주의"라는 말이 많은 나라들에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게는 서구의 가치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자유무역보다는 "공정무역"을, 다자주의보다는 양자주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무정부 상태보다는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자유무역주의는 포기하더라도 다자주의와 국제법은 유지하려는 시도다. 완전한 자유방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다극체제보다는 나은 선택이다. 한국 같은 중견국에게는 이런 질서가 가장 유리하다. 순수한 다극체제에서는 강대국들만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규칙 기반 질서에서는 중견국도 다자주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권 전환기에도 희망은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들이 증가하면서 "지구시민"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기후변화, 팬데믹, 핵확산 등은 어느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지구시민 의식이 강하다. BTS의 유엔 연설, 기후변화 시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 국제 NGO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모두 새로운 시민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류의 전 세계적 확산은 문화를 통한 지구시민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구시민주의가 기존 국가 시민권을 대체할 수는 없다. 여전히 복지, 안전, 교육 등 삶의 기본적 토대는 국가가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국가 시민권과 지구 시민권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패권 전환기에는 강대국 갈등으로 인한 난민과 이주민이 증가한다. "모든 인간은 이동의 자유를 가진다"는 선언과 "국가는 자국의 국경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이민 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전망이다. 대규모 추방 정책과 국경 장벽 건설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반이민 정서를 확산시킬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멘 난민들의 제주도 입국, 중국 조선족의 불법체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난민들까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안주해 왔던 한국 사회에게 다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주와 난민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손익이나 치안 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인간 존엄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동시에 급격한 변화가 기존 사회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충격도 고려해야 한다. 통합과 배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패권 전환기 한국의 자유는 새로운 위협과 기회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위협 요소들:
중국의 경제적 압력과 정치적 간섭
북한의 핵위협과 대남 도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질서 불안
권위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 역행
가짜뉴스와 사이버 공격을 통한 여론 조작
내부 분열과 진영 갈등의 심화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한미동맹의 불확실성 증가
특히 주목할 점은 내부의 분열이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이 외부 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증폭될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분열 조장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기회 요소들:
한류를 통한 소프트파워 확산
기술 강국으로서의 글로벌 경쟁력
자유민주주의 성공 사례로서의 매력
중견국 외교를 통한 국제적 영향력 확대
다자주의 활용을 통한 발언권 강화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 증대
한류의 전 세계적 확산은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K-pop, K-드라마, K-뷰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국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사회 문화 때문이다. 반도체, 5G, 전기차, K-배터리 등에서 한국이 보여주는 기술력은 경제적 자립성을 높이고,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토대가 된다.
패권 전환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한국은 지난 70년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었고,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으며, 아시아 금융위기도 극복했다.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패권 전환기도 마찬가지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불가능한 길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국민적 단합을 이루는 것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이것이 절망의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미국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한국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야 할 때다.
글로벌 시대의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가치의 공유에서 나온다. 자유, 인권, 법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더 많은 나라로 확산될 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한국은 이러한 가치의 전파에 앞장서는 책임 있는 중견국이 되어야 한다.
패권 전환기라는 격동의 시대에 한국이 선택할 길은 명확하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현실주의적 지혜로 국익을 추구하며, 국제사회에서 건설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시대 한국의 사명이자 기회다.
한국이 지난 70년간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면서, 동시에 지켜나가야 할 과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체제,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트럼프 2기든, 중국의 부상이든, 러시아의 도전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패권 전환기를 맞은 우리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이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한다는 것을. 패권 전환기라는 위기 속에서도 한국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이 가진 불굴의 정신이며, 우리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