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문명 충돌: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한국의 역할

by 박대석

▲ 30년 만에 증명되는 헌팅턴의 예언


1993년 새뮤얼 헌팅턴이 발표한 '문명의 충돌'이 2025년 현재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임이 드러나고 있다. 냉전 이후 시대는 서방과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힌두교, 유교, 일본 등 7, 8개의 문명들로 나뉘어 있으며 국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그의 이론이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6월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충돌로 인해 한국 외교부는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고,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과학기술 경쟁을 포괄하는 전방위적 대립으로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명확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 중동의 종교 문명 갈등과 한국에 미치는 파급효과


이스라엘 육군이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국경까지 넘나들면서 사실상 5차 중동전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국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5년 6월의 이스라엘-이란 공습은 헌팅턴이 예측했던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 간의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동 상황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긴급 상황점검을 실시하며, 에너지, 수출, 물류, 공급망 등에 미치는 영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통행 곤란 등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며 유사시 신속한 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은 한국에게 단순한 원유 공급 차질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문명 간 충돌이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 질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 미중 패권 경쟁,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 대결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부과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산업기술 패권경쟁으로 심화되면서 5G,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경제 갈등이 아니다. 이는 전체주의 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의 근본적인 가치 대립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은 5G,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강하게 경계하며, 첨단기술 분야는 미래의 경제·군사 패권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기술 자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서구의 기술 헤게모니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이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국가적인 지원과 더불어 5G, AI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과 한국 간의 근본적인 정체성 차이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통제를 우선시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반면 한국은 피땀으로 이룩한 민주화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를 확고히 정착시킨 국가다. 이러한 체제적 차이는 단순히 정치 제도의 차이를 넘어서 문명적 정체성의 차이를 의미한다.


▲ 한국의 명확한 정체성,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파트너

8ZIbjon0A3dPLnal-oYGG.png 필자가 감마로 생성한 이미지

대한민국은 서·북 방면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접해 있고, 동·남 방면으로는 미국과 일본을 마주 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간자나 균형자 역할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양쪽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접근은 결국 양쪽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최상위권 지역강국이지만, 명확한 가치 기반 없이 실용주의만을 추구한다면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 없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굳건한 안보동맹 관계를 구축해 왔고, 이는 단순한 군사협력을 넘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 가치에 기반한 동맹이다.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바로 이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다. 6·25 전쟁에서 한국을 구해준 것도, 경제발전의 기반을 제공한 것도, 민주화를 지지해 준 것도 모두 자유민주주의 진영이었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 가치와 정체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홍콩의 민주화 탄압,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 대만 위협 등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는 우리가 지켜온 가치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 2025년 지정학적 현실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2025년 글로벌 지정학적 트렌드로 보호무역주의 확산, 신흥국 경제 블록화, 반이민 정책 확대, AI 생태계 장악 경쟁, 우주 경제 패권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 경제 블록의 재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같은 복합적인 글로벌 리스크 환경에서 한국은 더욱 명확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안보전략은 미중전략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자국 우선주의, 보호주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기술혁신 연계 구축, 기술 주권 강화를 통한 국제협력의 지렛대 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기반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의 연대여야 한다.


▲ 원교근공(遠交近攻)의 현대적 적용, 가치 외교의 실천


고대 중국의 전략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멀리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가까이 있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 호주, 유럽 등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중간자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파트너 역할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QUAD Plus, AUKUS와의 협력 확대, NATO와의 파트너십 강화 등을 통해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력, 특히 반도체, 배터리, 5G 기술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기술 주권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다.


▲ K-문화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확산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문화적 성취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K-드라마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것은 자유로운 창작 환경에서 나온 문화 콘텐츠의 힘이다.


이는 검열과 통제 하에서 나올 수 없는 창의성과 다양성의 산물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사회 비판적 요소,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과 조화가 K-문화의 핵심이다. 한국의 문화 소프트파워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매력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 가치에 기반한 확고한 선택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현재의 국제정세를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분석틀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중동의 종교적 갈등과 미중 간의 체제 경쟁은 그의 예측이 상당 부분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선택이 끝났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선택했고, 이 가치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 땀으로 일궈낸 경제발전, 눈물로 쟁취한 민주화는 모두 자유민주주의 진영 내에서 이룩한 성취다.


▲ 2025년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며 이를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연대의 핵심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 핵 위협뿐만 아니라 중국의 패권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둘째, 기술 주권을 강화하되 이를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집단적 역량 강화와 연계해야 한다. 반도체, AI, 배터리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K-문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문화 외교를 적극 전개해야 한다. 이는 전체주의의 억압적 통제와 대비되는 자유로운 창작 환경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본, 호주, 인도 등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과도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문명의 교차로에 서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이미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말이다. 양다리를 걸치는 기회주의가 아닌, 가치에 기반한 확고한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적 품격을 보여주는 길이다.


분단국가라는 냉전의 유산을 안고 있으면서도, 놀라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고, 전 세계적 문화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는 한국의 경험은 자유민주주의의 역동성과 창조력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이것이 바로 2025년 현재 우리가 다시 써야 할 '문명의 충돌'에 대한 한국의 답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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