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공동선을 가치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병들어 가고 있다. 정당의 숭고한 이념은 사라지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 대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공천이라는 사적 이해관계뿐이다. '정치는 사람 쫓아가면 반드시 허망하다'는 경구는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 특히 중앙공천제의 폐단과 그로 인해 양산된 기회주의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죽비소리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폴리스 광장에 모여 오직 공동선(Common Good)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페리클레스가 "권력이 소수의 손이 아니라 전 국민의 손에서 나온다"라고 천명했듯이,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한다.
그 시대의 정치는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 정치'가 아니었다. 시민적 덕성과 공동의 이상을 바탕으로 작동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형이며,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근본정신이다.
그러나 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라는 매개체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면서도, 한국의 중앙공천제는 이 모든 것을 뒤흔드는 주범이 되었다.
정당의 역할은 명확했다. 유사한 이념과 정책을 가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 정당의 존재 이유는 개인의 영달이 아닌 국가 발전에 있었다. 하지만 소수 권력자의 공천권 독점은 이 모든 이상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지역구 주민의 뜻은 무시되고, 오직 공천권자의 심기만이 기준이 되었다. '밀실 공천', '낙하산 공천', '공천 헌금' 논란이 선거마다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은 정당의 철학이나 국민의 요구보다 차기 공천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부화뇌동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라. 차기 당권을 췰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누구나 아는 허물을 외면하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라는 단 한 사람을 향해 줄을 서는 정치인들과 정치 지망생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행태다.
시도의원 공천을 노리는 자들,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자들,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아등바등하는 자들이 차기 공천권을 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정당의 이념은 없다. 국민의 진정한 요구도 없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성공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국 곳곳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특정 인물의 눈치를 살피며 아부하는 자들, SNS에서 과도한 찬사를 늘어놓는 자들, 각종 모임에서 충성 경쟁을 벌이는 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이 추악한 광경이 바로 '사람 쫓는 정치'의 민낯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좀먹는 암세포다.
이러한 '사람 쫓는 정치'는 세 가지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온다. 첫째는 정치의 본질적 가치 훼손과 정책 실종이다. 정치는 이념과 비전, 현실적 대안을 담은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묻지 마 지지'를 낳고, 심도 있는 정책 담론을 사라지게 만든다. 맹목적 추종은 이성적 비판을 마비시킨다. 정치가 얕고 가벼워지며, 국가의 중대사를 개인의 인기와 운에 맡기는 지경에 이른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국민 신뢰의 붕괴다. 국민들은 자신이 선출한 대리인들이 특정인의 눈치만 살피며 소신 없는 행보를 거듭하는 것을 보며 깊은 좌절을 느낀다. 이는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진다. '레밍 정치'라는 비판처럼, 맹목적 추종은 비판적 사고를 결여시킨 채 군중 심리에 휩쓸리는 위험한 현상을 야기한다.
셋째는 정치인 자질 저하와 미래 리더십의 부재다. 개인의 이해관계와 권력 유지만을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은 장기적 안목이나 전문성 대신 '처세술'과 '눈치'만 발달시킨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이념과 정책으로 무장한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데, 줄 서기가 우선시 되는 후진적 정치 문화는 이를 원천 차단한다.
역사는 '사람 쫓는 정치'의 허망함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진실한 친박' 후보들을 내세우려 했다.
친박계 인사들은 공천권을 쥔 권력자에게 줄 서기 위해 온갖 충성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야권 분열이라는 절호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원내 1당 지위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는 참패를 기록했다. 권력자의 심기만 쫓아간 공천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였다.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비명(非明)계 학살' 논란도 마찬가지다. 당 대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계파 간 갈등이 공천에 직접 반영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정 인물 중심의 줄 세우기 정치가 민심을 왜곡하고 유능한 인재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22대 총선 후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서 낙선한 김문수 후보의 일갈은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심, 현장과 밀착하지 않고 동떨어진 점이 선거 결과로 나타난다", "민심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구의원부터 국회의원까지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그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권력자 줄 서기에 급급하여 민심의 흐름을 놓친 정치인들이 결국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인, 그리고 정치 지망생 여러분! 권력자를 쫓아가는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를 넘어 궁극적으로 자기 파멸로 이끄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특정 권력자의 해와 달은 영원하지 않다. 그 권력이 기울어지는 순간, 권력자의 심기만 살피며 소신을 잃었던 정치인은 지지 기반을 잃고 참담한 정치적 단명에 이를 수밖에 없다.
권력자의 그늘에서 얻은 한 줌의 공천은 잠시의 영광일 뿐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결코 오래 설 자리가 없다. 다음 선거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쌓아 올린 경력은 허망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진정한 정치적 생명을 지키고 싶다면, 오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소신을 지켜야 한다. 당리당략과 개인의 영달을 넘어 공동선과 시대적 대의를 좇는 용기 있는 결단만이 정치인 개인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을 포함한 모든 정당은 이 역사적 교훈을 뼈저리게 명심해야 한다. 정당은 특정 개인의 사조직이 아니며, 정치인은 특정 권력자의 대리인이 아니다. 정당은 명확한 이념과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경쟁을 통해 오직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할 시점이다. 당원이 아니더라도 해당 선거구 유권자라면 누구나 참여하여 후보자를 직접 선출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공천권을 특정인의 손에서 국민에게 돌려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공천권자가 아닌 지역구 주민과 국민의 뜻에 귀 기울이게 되고, 불공정한 '밀실 공천' 시비를 근절하며, 지역 주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경쟁력 있는 후보자를 선출할 수 있다. 나아가 정당의 활력과 민주적 정당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정치는 사람 쫓아가면 반드시 허망하다.'이 준엄한 경고가 한국 정치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고, 모든 정치 행위의 나침반이 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하루빨리 정치 개혁을 단행하여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그 허망함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어 암울한 미래를 초래할 것이다.
더 이상 특정인을 위한 줄 서기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갈망하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정치가 마주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