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견관찰, 인간 인식의 완성된 형식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보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다가가서 만나고, 입체적으로 살피고, 직접 체험하며, 그 속에 사고를 대입하여 지식 화하고 지혜화한다.
시견관찰은 단순히 '본다'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나고, 다각도로 살피며, 깊이 통찰하는 과정을 통해 현상을 지혜로 체화하는 인간 사고의 4단계다.
이 용어는 필자가 오랜 인생 경험과 독서, 사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집약한 개념이다. 視(보기), 見(만나기), 觀(살피기), 察(통찰하기)로 이어지는 이 네 단계는 우리가 흔히 '통찰력'이나 '지혜'라고 부르는 것의 심화된 과정이며, 보는 것에서 시작해 지혜로 완성되는 인간 인식의 여정이다. 글쓰기도 삶도 결국 이러한 패턴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노출된 시대를 살고 있다. 손 안의 스마트폰은 시시각각 새로운 소식을 쏟아내고, 인공지능(AI)은 궁금한 모든 것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본다'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저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졌다. 겉핥기식 정보 소비가 만연하고, AI의 편리함에 기대어 스스로 사유하는 근육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이 바로 시견관찰(視見觀察)의 지혜다. 단순한 감각적 지각에서 시작하여 단계별 심화하는 사고 과정으로, 지혜로운 판단에 이르는 인간 고유의 인식 체계다.
AI 시대의 가장 큰 위협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사유의 부재다. 우리는 이제 궁금한 것이 생기면 굳이 직접 찾아보거나 고민할 필요 없이 AI에게 묻는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가장 '정확해 보이는' 답변을 내놓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탐색과 해석, 그리고 판단이라는 핵심적인 사유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첫 번째 위험은 비판적 사고 능력의 상실이다. 뉴스 제목만 보고 내용을 다 안다고 착각하거나, AI의 첫 번째 답변을 맹신하는 태도는 정보의 이면을 보려 하지 않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주입된 정보에 쉽게 현혹되고, 조작된 사실에도 쉽게 흔들리는 '생각 없는 대중'을 만들 위험이 있다. 최근 가짜뉴스나 딥페이크가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통합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력의 저하다. AI는 특정 질문에 대한 최적의 답변을 제공하지만, 이는 파편적인 지식일 뿐이다. 환자의 질병 진단을 넘어 삶의 질, 가족 관계, 경제적 상황까지 아우르는 전인적 판단은 AI의 영역이 아니다.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는 습관은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게 하고,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방해한다.
세 번째는 융합적 창의력의 쇠퇴다. 진정한 창의는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입체적으로 연결하고 융합할 때 발현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 기술과 디자인, 인문학적 감성을 결합했던 것처럼, 혁신은 단편적 지식의 단순 조합이 아닌 복합적 사고에서 나온다. 그런데 AI에 의존한 정보 소비는 이미 정제된 답만을 제공받는 데 익숙하게 만들어, 스스로 다양한 영역을 탐색하고 연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한다. 이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퇴화시킬 위험이 있다.
네 번째는 인간다움의 상실이다. '察'의 단계, 즉 경험과 윤리가 결합된 지혜로운 판단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해도, 인간의 감정과 윤리, 그리고 역사적 맥락과 미래에 대한 비전까지 아우르는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察'의 과정을 AI에게 맡기려 한다면, 결국 인간 고유의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시기소이(視其所以) 관기소유(觀其所由) 찰기소안(察其所安)"이라 했다. 이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위의 동기와 과정을 살피며, 그가 마음 편해하는 바를 깊이 관찰하라"는 뜻으로, 시견관찰의 완벽한 단계적 구조를 보여준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는 외적 관찰을 내적 성찰로 연결하는 시견관찰의 최종 단계를 예견한 것이었고, 베이컨은 『신논리학』에서 선입견을 배제한 순수한 관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일찍이 깊이 보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시견관찰의 완벽한 실천 모델이다. 그는 단순히 지방 행정의 현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지방 행정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視), 유배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직접 만나며(見), 역사적 사례와 현실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한 후(觀), 실현 가능한 개혁안을 윤리적 판단과 함께 제시했다(察).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닌,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한 건설적 대안 제시의 모범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하고 AI 시대에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시견관찰이야말로 그 해답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깊이 있게 보는 것을 넘어, 인간 고유의 인식 체계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과정이다.
의식적인 '느리게 보기'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뉴스 기사를 읽을 때 제목 뒤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바로 '視'와 '見'의 단계다.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 유입을 줄이고, 정제된 정보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접 경험과 상호작용의 확대가 그 다음이다. AI가 제공하는 간접 정보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대화하며 세상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여행이나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오감을 통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見'의 단계를 강화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다.
다각도 분석과 비판적 사고의 생활화도 필요하다. 하나의 이슈를 볼 때 단순히 AI가 제공하는 요약본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자료를 찾아 비교 분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전문가의 견해와 일반인의 경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觀'의 단계를 통해 편향된 시각을 극복하고 균형 잡힌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AI의 답변조차도 맹신하지 않고, '이것이 최선의 답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윤리적 판단과 창의적 통찰의 연습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적 결론을 도출하지만, 인간은 윤리적 가치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독서 후 자신만의 해석을 도출하고, 복잡한 문제 상황에서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 판단을 연습하는 것이 '察'의 단계다. 이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지혜를 발휘하는 핵심이다.
현대 정보학의 DIKW 피라미드는 시견관찰의 현대적 타당성을 증명한다. 원시 데이터(Data)가 맥락을 가진 정보(Information)로 가공되고, 이것이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지식(Knowledge)이 되며, 최종적으로 경험과 윤리가 결합된 지혜(Wisdom)에 이르는 과정은 시견관찰의 네 단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편리함과 효율성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인간 고유의 사유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궁극적으로 지혜로 승화시키는지가 중요해진 시대다.
시견관찰은 AI 시대,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동시에 더 풍요로운 삶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깊이 보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결국 깊이 보는 것이야말로 깊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