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시그니처 정책과 자유보수 미래 권력의 조건

목소리 없는 다수를 보는 정치적 혜안

by 박대석

[표지 사진: 필자가 whisk로 생성한 이미지]


정치적 시그니처 정책과 자유보수 미래 권력의 조건

목소리 없는 다수를 보는 정치적 혜안


필자가 고양시장과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목소리 없는 다수'의 존재였다.


보수 정치인들에게 재건축 용적률 상향이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작 고양시 전체 가구 중 무주택 가구는 약 17만 가구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4%를 차지했다. 이는 전국 평균과 거의 동일한 수치다.


재건축을 원하는 이유는 집이 낡아서가 아니라 자산 가치 상승을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절반에 해당하는 무주택 가구들이 이를 좋아할 리 없다. 문제는 보수 정치인들이 가까이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주택 소유자들의 요구만 듣고, 조용히 살아가는 무주택자들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좌파 정치인들은 표가 많은 층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내어 공략을 잘한다. 보수 정치인들의 진정한 정치적 시그니처 정책은 바로 이런 '목소리 없는 다수'의 실질적 필요에 응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시그니처의 힘


정치적 시그니처 정책(Political Signature Policy)이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이고 핵심적인 정책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해당 정치 주체의 철학과 비전을 응축한 대표작으로,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며 정치적 지지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 도구다.


정치인 이재명의 지역화폐와 기본소득 정책이 바로 그런 시그니처다. 필자를 비롯한 비판론자들은 이를 '현금 살포식 포퓰리즘'이라 규정하지만, 정작 이재명 본인은 이 정책들의 한계와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했을 때,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소득세를 실제 납부하는 가구는 최대 40%에 불과하다. 나머지 60%는 소득세 무납세자 가구로, 기존의 감세 정책이나 성장론으로는 직접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더욱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6%를 차지하는 극심한 불평등 구조에서, 전통적인 낙수효과론은 설득력을 잃었다.


▲ 한국 정치사의 시그니처 성공 사례들


한국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는 성공한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강력한 시그니처 정책을 보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농촌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정면으로 응답한 시그니처였다. 197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에서 1,000달러로 급상승한 것은 이런 과감한 정책 실험의 결과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부패와 특권 구조를 해체하는 상징적 정책이었다. 1993년 8월 12일 전격 시행된 이 정책은 도입 첫날 예금 인출이 1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IT·벤처 육성과 햇볕정책은 IMF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미래 성장 동력과 평화 통일의 비전을 제시한 혁신적 시그니처였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벤처기업 수가 8,000여 개에서 1만 1,000여 개로 증가하고, 남북 교역액이 3억 달러에서 7억 달러로 배증한 것은 이런 정책적 선견지명의 성과였다.


▲ 글로벌 정치 리더들의 시그니처 전략

필자가 whisk로 생성한 프랭클린, 메르켈, 마크롱 이미지

세계 정치사를 보면 시대를 변화시킨 지도자들은 모두 강력한 시그니처 정책을 통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통해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실업률을 25%에서 17%로 낮추고,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앙겔라 메르켈의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Energiewende) 정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이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과감한 전환을 이끌었다. 초기 전력 요금 상승과 산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미래 어젠다를 선점한 결과였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노동시장 개혁 역시 프랑스 내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시그니처 정책이었다. 2017년 시행된 개혁으로 프랑스의 실업률은 10.1%에서 7.3%로 하락했고, 경제 경쟁력 회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 정치인 이재명 시그니처의 정치적 계산법


정치인 이재명이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한 포퓰리즘을 넘어선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있다. 첫째, 소득세를 내지 않는 다수에게는 '순혜택'으로 작용해 즉각적인 지지 확보가 가능하다. 둘째, 보수 야당이 이를 비판할수록 '서민을 위한 정책을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수 있어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실제로 경기도의 지역화폐 정책 도입 이후 이재명 당시 지사의 전국적 인지도와 지지율은 크게 상승했다. 2019년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당시 전국 여론조차에서 찬성 의견이 60%를 넘어선 것은 이런 정책의 정치적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이런 정책의 경제적 실효성에는 논란이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가 전국적 관점에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소비의 지역 간 이동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역화폐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가 예상보다 제한적이며, 지역 내 생산 및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정 건전성 악화다. 총 42조 원 규모의 현금성 지원은 결국 국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청년 세대가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빚이 된다. 기본소득의 경우 막대한 재원 조달 문제와 인플레이션 유발 가능성, 근로 의욕 저하 등의 부작용이 지적된다.


하지만 정치인 이재명은 이런 경제적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AI와 자동화로 인한 미래 일자리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포퓰리즘적 시그니처 정책이 권력 획득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 자유보수 진영의 시그니처 부재와 위기


현재 자유보수 진영은 혁신적 시그니처 정책의 부재가 뚜렷하다.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원론적 가치만 반복할 뿐, 현실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46%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9.8%만을 보유하는 극심한 불평등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성장론과 감세론에만 의존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이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60% 이상의 국민에게 법인세 인하나 소득세 감세는 아무런 직접적 혜택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정치적 지지 기반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백화점식 공약 나열과 사후 약방문 식 대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원한다.


▲ 미래 권력을 위한 시그니처의 조건


자유보수 진영이 재집권하려면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저성장·고령화·불평등 심화라는 구조적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시대적 과제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혁신적 시그니처 정책이 필요하다.


현대 국민 다수가 절실히 원하는 설루션을 보면 명확한 방향이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의 77%가 주거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고, 중소상공인의 68%가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국민의 82%가 미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 고민에 답하는 시그니처가 바로 '청년 주거 안정 프로그램',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젝트', '미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 혁신 R&D 전략' 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적 스타의 등장이다. 자유보수 진영에는 지금 당장 시대를 아우르는 카리스마와 비전을 갖춘 정치 리더가 절실하다. 그런 인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정치적 시그니처를 구축하고 이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 정치 스타 육성을 위한 필수 조건들

필자가 whisk로 생성한 이미지

진정한 정치적 스타가 되려면 무엇보다 시대를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끊임없는 공부와 현장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김대중이 야당 시절 하버드 대학 연구원 생활을 통해 세계 경제와 IT 혁명의 흐름을 파악했던 것처럼, 현재의 정치 지망생들도 글로벌 트렌드와 미래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현장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영삼이 부마항쟁 당시 현장에서 민주화 열망을 직접 체감했고,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시절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것처럼, 현재의 정치인들도 청년층의 취업 현장, 중소상공인의 생존 현실, 농어촌의 고령화 문제 등을 몸으로 체험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곁에 두는 것이다. 역사상 성공한 정치 리더들은 모두 탁월한 참모진과 브레인을 보유했다. 루스벨트에게는 프랜시스 퍼킨스 같은 사회정책 전문가가, 처칠에게는 린더만 같은 과학 고문이 있었다. 마크롱 역시 경제학자 출신답게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적극 등용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의 성공 뒤에는 진념 같은 경제 전문가들이 있었고, 박정희 시대에는 오원철, 김정렴 같은 실무진이 뒷받침했다. 현재 자유보수 진영에서 미래의 정치 스타를 꿈꾸는 인물이라면, 경제·사회·기술·외교 등 각 분야에서 자신을 능가하는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다.


▲ 미래로 건너가는 시그니처의 설계

필자가 whisk로 생성한 자유 보수 정치인의 미래로 건너가는 시그니처의 설계 이미지

진정한 시그니처 정책은 현재의 문제 해결을 넘어 미래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을 담아야 한다. 정치인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시그니처로 작동하는 이유는 AI와 자동화로 인한 미래 일자리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미래 지향적 성격 때문이다.


자유보수 진영도 이런 미래 지향성을 갖춘 시그니처가 필요하다. 특히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적 정책 모델이 요구된다.


첫째, '국가 AI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와 동시에 새로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정부 직접 지출보다는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교육 인프라 구축, 세제 혜택을 활용한 기업 참여 유도, 그리고 성과에 따른 후불제 교육비 지원 등의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둘째, '청년 주거 혁신 플랫폼'으로 기존 대출 지원을 넘어선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간 자본 유치를 통한 공공임대주택 확대, 청년 창업가와 연계한 리빙랩 형태의 주거 공간 조성, 지방 이주 청년을 위한 원격근무 지원 주택 등을 통해 주택 공급 확대와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셋째, '탄소중립 산업 전환 가속화 전략'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을 결합하는 방안이다.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비한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그린뉴딜을 활용한 일자리 창출, 그리고 ESG 경영을 통한 글로벌 투자 유치 확대 등을 통해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


넷째, '전 국민 금융 리터러시 혁명'을 통해 자산 불평등 해소와 개인 경제 역량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정책이다. 초등학교부터 금융 교육 의무화, 디지털 자산 관리 플랫폼 구축, 그리고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자산 형성 능력을 높일 수 있다.


▲ 포퓰리즘이 아니라 지속 성장하는 시그니처가 필요

필자가 whisk로 생성한 자유 보수 정치인들이 미래로 건너가는 시그니처의 설계를 위한 회의 모습 이미지

이런 정책들의 핵심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 강화와 구조적 문제 해결을 통한 '자립형 복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재원 조달 역시 정부 지출 확대보다는 민간 참여 유도, 세제 개편, 규제 혁신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로 설계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들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실행 계획과 예산, 그리고 성과 지표까지 갖춘 완성된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단계적 추진 전략과 보완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김영삼의 금융실명제나 마크롱의 노동시장 개혁처럼 강력한 시그니처 정책은 필연적으로 기존 이익 구조에 충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거 성공 사례들도 정책만의 결과가 아니라 당시의 세계 경제 상황, 기술 발전, 사회적 여건 등 복합적 요인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현재 상황에 맞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이제 말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과 데이터 기반의 실현 가능한 정책을 갖춘 리더를 원한다.


시대는 변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면서 상대방의 정책만 비판하는 것으로는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을 수 없다. 지금부터 체계적인 준비와 학습을 통해 시대를 통찰하는 정치 스타를 육성하고, 그들이 미래까지 내다보는 혁신적 시그니처 정책을 제시할 때만이 자유보수 진영의 재집권이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시그니처의 시대, 이제 진정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윗글은 2025년 7월 20일 파이낸스투데이에 필자 명의 칼럼으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7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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