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전쟁의 본질을 직시하라
한국 정치에서 '극우'라는 단어가 날아다니는 빈도가 심상치 않다. 특히 좌파 성향 언론과 정치세력들이 보수 정치인이나 시민들을 향해 던지는 이 용어는 이제 일종의 마법의 주문처럼 작동한다. 상대방을 한 방에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 놀이에 더 이상 흔들릴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이제는 당당히 말할 때가 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지키며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이 극우라면, 그렇다. 나는 극우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경고했듯이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사고를 지배한다. 한국의 좌파 세력은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언어 게임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어 자신들은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인 세력으로, 상대방은 낡고 보수적인 세력으로 프레이밍 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극우' 프레임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25년 현재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지형을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강력한 보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이 집권 중이고, 네덜란드에서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이 제1당을 차지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 독일 대안당(AfD), 프랑스 국민연합(RN) 등도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유럽정치연구센터(CEPS)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27개 EU 회원국 중 절반 이상에서 우파 또는 극우 정당이 정부 여당이거나 주요 야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정당의 공통분모는 반이민, 주권 수호, 전통적 가치 옹호 등이다. 한국의 좌파들이 '극우'라고 규정하는 바로 그 가치들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는 모두 극우에 의해 지배당하는 위험한 국가들인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모두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전체주의로 향하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다. 이들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당들이다.
한국에서 좌파들이 '극우'라고 비난하는 세력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좌파들이 극우라고 몰아붙이는 자들은 대한민국 헌법 체제 수호, 자유시장경제 옹호,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 불법적인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 등을 주장한다. 이것이 어떻게 극우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한국에서 진짜 '극단'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쪽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면서, 6·25 전쟁을 '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세력들 말이다. 이들은 법원의 판결도 거부하고, 국정감사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며, 무자비한 탄핵 남발로 입법독재를 넘어 지난 6월 조기대선으로 행정부까지 장악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이 제시한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공정한 선거,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정보 접근권 등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민주주의 원칙을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언론을 장악하고 사법부를 압박하며 시민사회를 분열시키는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들이 당내 경쟁자들을 향해 '극우'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는 좌파의 언어를 빌려와 동지를 공격하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조갑제 등 일부 인사들이 보이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내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며 '극우화 우려'를 표명한다. 하지만 정작 당원들과 보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타협과 굴복이 아니라 원칙과 소신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024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층의 73%가 '당이 더욱 보수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당 지도부의 인식과 당원·지지자들의 요구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관점을 바꿔보자. 만약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것이 극우라면, 기꺼이 그 딱지를 받아들이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함께하는 미국을 반대하고 북한과 중국의 전체주의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키는 것이 극우라면, 모두 당당히 극우주의자가 되자.
정치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관용의 역설"을 제시했다. 무제한적 관용은 관용 자체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자유사회는 자유의 적들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것은 극우가 아니라 자유의 수호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런 접근이 과도한 이분법적 사고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연속선상에 있으며, 극단적 대립보다는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진정한 '극단'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1948년 제주 4·3 사건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것, 1950년 한국전쟁에서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것,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것, 이런 것들이 진정한 극단이다.
반면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나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도에서 보수 시민들이 보인 모습은 어떠했나.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왔지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에 불복했지만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이것이 극우의 모습인가.
이제 프레임 게임에 휘둘리지 말고 당당히 우리의 정체성을 밝힐 때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자다. 시장경제 옹호자다. 법치주의 신봉자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키려는 애국자다. 이것이 극우라면 기꺼이 극우가 되자.
좌파들과 위장 보수정치인과 추종자들이 던지는 '극우' 딱지에 위축되어 소극적으로 변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용어를 역이용해 우리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세계적 추세도 우리 편이다. 시대정신도 우리와 함께한다.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금, 당원들과 보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좌파의 프레임에 굴복하는 지도부가 아니라, 당당히 보수의 가치를 외치는 지도부다. '극우' 프레임에 겁먹고 숨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정면돌파하는 정치인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이 글은 2025.07. 24. FN투데이에 필자 명의 칼럼으로 게재되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