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 패싱,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
7월 24일 오후,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이 출국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받은 미국의 일방적 통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급한 일정으로 한미 2+2 통상 회담을 취소한다"는 차갑고 간결한 메시지였다. 8월 1일부터 25% 관세 폭탄이 예정된 급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었다. 미국이 한국을 동급의 동맹국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같은 시기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신속히 타결 지으며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받았다.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模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쌀 시장까지 개방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인 대가였다. 필리핀 역시 미군기지를 확대하고 합동훈련을 대폭 늘리며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만이 대화의 테이블에서조차 배제되는 굴욕적 상황에 처했다.
위성곤 국가안보실장의 워싱턴 방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 인사들과의 공식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고, 그는 실질적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는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신뢰할 만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미국의 차별적 대우 뒤에는 이재명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모스탄(단현명) 교수가 이끄는 국제선거감시단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한국 6월 3일 대선의 공정성 의혹이 미국 내 보수 네트워크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 그리고 국제사회 대부분은 모든 부정선거 주장을 사실무근으로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미국 정치권, 특히 트럼프 진영에서 이러한 의혹 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통계적 불일치, 전자개표 시스템의 보안 취약성 등을 구체적 데이터와 함께 문제 삼은 이들의 주장이 워싱턴 정가에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국제적 신뢰도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다. 대법원에서 징역 7년 8개월이 확정된 이 사건은 총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을 포함하고 있어 미국의 대북제재 체계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검찰 수사에서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현 대통령의 실질적 주도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관련 재판은 현재 중지된 상태다.
미국은 과거 중국 단둥은행(2017년), 러시아 개인 무역업자들(2019년), 동남아 소규모 기업들(2021년)까지 대북 거래 연루를 이유로 제재한 전례가 있다. 국제비상경제권법에 따르면 제3 국 개인이라도 대북 불법거래에 연루되면 미국 독자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대북 불법송금 연루 의혹은 미국에 한국 정부 자체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10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미 외교·국방 당국자 회의에서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를 근거로 동맹 범위를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하고, 국방예산을 GDP 대비 5%까지 증액하며,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분담과 대중 견제 다자안보체 적극 참여를 공식 요구했다고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이는 70여 년간 한국 안보를 지탱해 온 기본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 억지에서 중국 견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3월 말 공개한 '임시 국가방위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상정했다. 다음 달 발표될 새 국방전략(NDS)에는 이를 대비한 미군의 재편이 담길 방침이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친중 성향과 대북 유화 정책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대만·중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최근 한중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요 장관 후보자들이 북한을 '주적'이 아닌 '위협'으로 규정하며 대북 유화정책을 예고한 것도 미국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전작권 환수 요구, 종전선언 논의, 주한미군 재배치 검토 등은 표면적으로는 자주국방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정책들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와 맞물려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계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일본, 호주, 필리핀에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 측에 기여할 것을 요구했고, 이들 3국은 이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미일은 이미 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일대를 하나의 전구(戰區)로 묶는 '원시어터(One Theater)'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만이 이 틀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친중 성향의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미관계 악화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17.2%에 달하며,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의 대미 의존도는 30%를 넘는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25% 추가 관세 부과 시 한국의 대미 수출이 40-50%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의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미국이 예고한 25% 상호관세가 기존 관세와 중첩될 경우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일본은 이미 2019년 미국산 소고기 월령(나이) 제한을 폐지하고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통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 상태다.
현재 미국 내 현대·기아차 연간 판매량과 관련 일자리를 고려할 때, 관세 인상으로 인한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 및 협력업체에서 상당한 규모의 고용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대미 반도체 수출액 3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이 위험에 처했다. 25% 관세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산 대비 경쟁력을 상실하고,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 TSMC 등과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이다. 예상 피해액은 연간 75-100억 달러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련 협력업체에서 상당한 고용 충격이 예상된다.
철강·알루미늄 산업은 추가 50% 관세로 인해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연간 대미 수출액 35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감소할 시 다수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한다.
거시경제 전체로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포괄적 경제제재 시행 시 한국 GDP는 첫 해에 8-12%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 GDP 감소율 5.8%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1인당 소득 감소와 실업률 급증으로 약 50-8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가 관세 인하 등 조건으로 대규모 대미투자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주요 그룹 총수들과 연쇄 회동하며 대미투자 확대를 압박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심각한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데다 기준금리가 2.5%로 일본(0.5%)보다 5배나 높아 대규모 해외투자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이 천문학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조업 고용비중이 25%에 달하는 한국 경제구조상 대미투자 확대는 곧 국내 일자리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들이 일본처럼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할 경우 국내 제조업 기반이 급속히 공동화되고 내수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압박을 외면하면 관세 폭탄을, 수용하면 경제구조 붕괴를 감수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덫에 빠진 것이다. 정부는 무작정 기업들에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체력 한계를 인정하고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미국이 바라고 우리한테 유리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는 게 현명하고 필요한 전략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중국과의 경제적 연관성과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성급한 선택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한미동맹의 70년 역사와 상호 의존성을 바탕으로 극단적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은 이러한 낙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한말 조선의 비극을 되새겨야 한다. 1880년대부터 1910년까지 조선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쳤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일진회와 같은 친일 세력의 득세, 을사조약(1905년)을 통한 외교권 박탈,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한일병합조약(1910년)이라는 참혹한 결말이었다.
당시 조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강대국 후견인은 청나라, 러시아, 일본뿐이었다. 지금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강대국 후견인은 미국과 중국뿐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의 국력은 19세기 청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해졌고, 북한은 핵무장까지 완료한 상태다. 미국이라는 후견인을 잃는다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북한에 핵의 인질로 끌려다니고 적화통일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나 북한은 반문명적 독재, 전체, 공산주의 국가다.
베네수엘라 사례는 더욱 직접적인 경고다. 2017년 이후 시행된 미국의 다층적 제재로 베네수엘라 GDP는 2013년 3,820억 달러에서 2023년 1,020억 달러로 약 73% 감소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약 760만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한 핵심 이유는 마두로 정권의 반미 좌파 노선과 권위주의적 통치방식, 그리고 선거 조작 의혹이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선거 공정성 논란, 정치적 탄압 의혹, 대북 불법거래 연루, 친중 정책 추진이라는 네 가지 위험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베네수엘라보다 더 강력한 제재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25일 긴급 통상회의를 열고 농산물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고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이 포함돼 있다"라고 공식 확인한 것은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쌀과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개방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농민층의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서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일본이 쌀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해도 관세를 25%에서 15%로만 낮춘 현실을 보라. 미국이 진정 원하는 것은 농산물 개방이 아니다. 아시아판 나토에서 한국이 확실한 미국 편에 서는 것,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일본·호주·필리핀으로 구성되는 서태평 양 대중국 전선에 한국이 참여하는지를 보고 이재명 정부가 자신들의 우군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있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지난 21일 "한국과 같은 아시아 동맹들이 국방 지출과 집단 방위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힌 것은 사실상 아시아판 나토 구축을 향한 미국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진짜 게임 체인저는 여기에 있다. 한국이 아시아판 나토의 핵심 멤버가 되어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유대 속에서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선다면, 관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더 나아가 한국은 G7 정회원국 진입, 첨단기술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 글로벌 금융허브로의 도약 등 세계 정상국가로의 진입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한미동맹을 포기하거나 약화시킬 이유는 되지 못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 하에 관리해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호혜적 협력을 추구하되, 안보 분야에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한국이 아시아판 나토에 참여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외교적으로 설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 역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현실을 이해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반발에 대비한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경제 보복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해 대중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인도·동남아·유럽 등과의 경제협력을 다변화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여 중국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더 이상 친중·종북 성향의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할 수 없다. 쌀과 소고기 몇 가지 품목 개방으로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략적 대전환이다.
첫째, 정치적 보복성 3대 특검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 특검을 통한 투명한 검증으로 정통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이는 미국 내 보수 네트워크의 의구심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 아시아판 나토에서 일본보다 더 선명하고 적극적인 미국 측 지지를 표명해서 주도해야 한다. 셋째, 대북 불법거래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한미동맹 우선 원칙을 명확히 천명하고 이를 헌법적 가치로 격상시켜야 한다.
이러한 정책 변화를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솔직하게 알리고, 국회에서의 여야 초당적 논의를 통해 국가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문가 토론과 공개 세미나를 활성화하여 국민들이 아시아판 나토 참여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시절은 끝났다. 70여 년간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해 온 한미동맹의 가치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강력한 후견인 없이는 중국, 러시아, 북한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 없는 미군도 끌어들여야 할 절박한 현실에서 망설일 이유는 없다.
이제 끌려가지 말고 주도해야 한다. 일본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아시아판 나토의 핵심 축이 된 것처럼, 한국도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해야 한다. 국방비 GDP 대비 5% 증액,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분담, 대만 유사시 역할 분담까지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당당히 협상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 하에 관리하되, 한미동맹이 한국의 레드라인임을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아시아판 나토의 핵심 멤버가 되어 세계 정상국가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하며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100년 대계를 결정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기로다. 선택은 이재명 정부와 국민의 몫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이 글은 2025.07. 26. FN투데이에 필자 명의 칼럼으로 게재되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