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호도하고, 외신은 사실을 말하고, 국민만 모르나?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관세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7월 말 큰 틀의 합의 이후 석 달간 이어진 세부 협상이 막을 내린 것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한 안정적 합의"라며 환영했지만, 협상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우려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는 한 푼도 깎이지 않았고, 단지 선불을 연간 200억 달러씩 분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통화스와프 같은 핵심 안전장치는 끝내 확보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협상 내용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언론이 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0월 29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발표한 최종 합의 내용을 보면, 3500억 달러 투자 총액은 유지됐다. 다만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마스가) 1500억 달러로 구성하고, 현금 투자는 연간 200억 달러 상한선을 설정했다. 관세는 0%에서 25%를 적용하다가 15%로 인하됐고, 반도체는 경쟁국 대만과 비슷한 수준을 확보했다. 자동차와 부품은 15%, 일부 의약품과 항공기 부품은 무관세 또는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정부의 노력에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냈고, 자동차 관세 인하만으로도 연간 2조 원 이상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본질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첫째, 3500억 달러라는 금액 자체가 과도하다. 한국이 25%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대미 수출 감소액은 125억 달러 정도인데, 그 20배가 넘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 돈의 20분의 1만 써도 피해 기업과 노동자를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협상의 본질은 '총액 감축'이 아니라 '지불 방식 변경'에 불과하다. 연간 200억 달러씩 10년이면 2000억 달러, 여기에 조선업 1500억 달러를 더하면 정확히 3500억 달러다. 선불을 할부로 바꿨을 뿐, 미국이 처음 요구한 금액 그대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 보도다. 지난 7월 31일 한미협상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합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협상이라고 공식 발표했고, 일부 언론은 "0%인 관세가 25%가 될 것을 15%로 낮췄다"는 희한한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한미 FTA로 원래 0%였던 관세가 15%로 올라간 것인데, 마치 25%를 15%로 낮춘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이번 10월 29일 협상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은 "3500억 달러가 2000억 달러로 줄었다"거나 "연간 최대 200억 달러"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3500억 달러는 그대로인데 연간 상한만 200억 달러로 정한 것을, 마치 투자액 자체가 줄어든 것처럼 호도한 것이다. 방송법 개정으로 정부와 밀접한 세력이 장악한 일부 언론은 실체가 아니라 환상을 전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잠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올바른 대책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면 정부는 갈수록 엉뚱한 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진실을 알려야 국민들이 단합하고, 정부도 제대로 된 협상을 추진할 수 있다.
객관적 지표로 보면 한국이 얼마나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였는지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의 GDP는 1조 8500억 달러(2024년 기준)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18.9%에 해당한다. 연간 투자액 200억 달러는 GDP의 1.08%로, 10년간 누적하면 약 19%에 달한다.
이를 일본, EU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일본의 GDP는 4조 3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액은 5500억 달러로 GDP 대비 13.66%다. EU는 GDP 19조 4200억 달러에 투자액 6000억 달러로 3.09%에 불과하다. 한국은 18.9%로 일본의 1.4배, EU의 6배가 넘는 부담을 떠안았다.
외환보유액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162억 달러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84%에 달한다. 연간 200억 달러씩 투자해도 매년 외환보유액의 약 5%가 빠져나간다. 외환보유액이란 국가 경제의 최후 방어선이다. 이를 대규모로 투입하면서도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협상의 중대한 실패다.
흥미로운 점은 외신들의 보도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2000억 달러로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주요 외신들은 여전히 "3500억 달러 합의"로 보도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번 협정에 대해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미국에 약속한 내용이 포함됐다"라고 전했다. 다만 세부 조항에 대해 양측 간 이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명시했다.
평소 이재명 정권에 우호적인 보도를 해오던 로이터조차 한국 정부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지 않고 3500억 달러를 거론한 것이다. 가디언 역시 "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라고 보도하면서, 이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과 함께 약 1조 달러 규모의 경제 패키지의 일부로 체결된 것이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투자금 구성은 2000억 달러 현금 투자와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산업 협력 패키지로 이루어졌다"라고 전하면서도, "이 협정이 한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야 하며, 아직 법적 효력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한국 정부의 발표와 외신이 보도하는 내용이 다르다. 한국 정부는 실제로 양국 간 공식 서명 절차를 마치고, 협정이 완전하게 체결된 이후에 발표해야 하는데, 항상 먼저 "타결됐다"라고 발표한 뒤 나중에 말을 바꾸는 행태는 현재 이재명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적 연출이 아닌, 실제 서명된 협정문을 보고 싶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뼈아픈 실패는 통화스와프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대미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9월 14일 정부 당국은 미국에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개설 필요성을 제시했으나 거절당한 사실을 확인했다. 10월 16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무제한이든 유제한이든 통화스와프는 별로 진전이 없다"라고 밝혔다.
통화스와프가 만능도 아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환율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환율은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만으로도 하루 만에 30~40원씩 급락했다. 심리적 안정 효과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협상 교착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급등했다. 10월 초 1407원까지 치솟았고, 10월 말 현재도 1400원 중반대 선에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환율 변동에는 글로벌 금리, 국내 무역수지, 국제 정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통화스와프 부재가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킨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를 대미투자 주요 협상 요인으로 공개했었다.
이번 합의에서 투자 수익 배분 조건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사업에만 투자하고, 원금 회수 장치를 명시했다"라고 설명했다. 투자 수익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 5대 5로 나누고, 한국이 20년 내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산일보 사설은 "미국 측이 투자처를 정하고, 수익의 최대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모델을 강하게 요구했다"라고 보도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CNBC 인터뷰에서 일본 모델을 언급하며 한국에 유사한 조건을 요구했다. 최종 합의에서 한국이 이를 얼마나 완화시켰는지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투자위원회 구성이나 투자 대상 선정 과정에서 한국이 얼마나 실질적 발언권을 확보했는지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한국 기업 주도로 추진한다"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거버넌스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원장은 "외국 정부가 조성한 펀드로 미국이 직접 투자를 주도하고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간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협상의 후유증은 이미 시작됐다. 매년 200억 달러씩 10년간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여기에 조선업 펀드 1500억 달러를 합치면 총 3500억 달러, 한화로 약 500조 원이다. 여기에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1500억 달러를 더하면 총 5000억 달러, 약 7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2025년 정부 예산 677조 원을 능가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이 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투자는 필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2030년까지 37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38.7억 달러 규모의 AI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한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260억 달러를 투입하고,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 도입에 362억 달러를 투자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핵심 기술과 인력의 해외 이전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국내 일자리와 소득은 급격히 줄어든다. 관련 대기업 주가는 오를지 몰라도, 하청 중소기업과 조선소 지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물론 이번 협상에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진 것은 현대차와 기아에 큰 이익이다. 일부 품목에서 최혜국 대우를 확보한 것, 반도체 관세를 대만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것, 쌀과 소고기 등 민감 농산물의 추가 개방을 막아낸 것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은 "최악은 아니다. 매년 250억 달러 요구를 200억 달러로 줄였고, 한미동맹과 조선업·반도체·원자력 협력 등 얻을 것도 많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부 외신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경제적 고통을 덜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론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첫째, 자동차 관세 인하는 한미 FTA에서 원래 누렸던 0% 특혜를 잃고 되찾은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일본과 EU가 기존 2.5%에서 15%로 12.5% 포인트 인상된 반면, 한국은 0%에서 15%로 15% 포인트 인상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경쟁국 대비 2.5% 포인트 불리한 구조가 됐다.
둘째, 조선업·반도체 협력은 우리가 애원할 사안이 아니라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미국 조선업은 완전히 쇠퇴해 한국 기술과 인력 없이는 재건이 불가능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통화스와프는 여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로이터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3500억 달러를 미국 방식대로 투자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는데, 그 안전장치를 끝내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한미 협상은 문득 옛이야기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시골 사람이 처음 서울역에 와서 고층 건물을 구경하고 있는데, 사기꾼이 다가와 "20층까지 봤으니 20만 원을 내라"라고 협박했다. 시골 사람은 황당했지만 꾀를 내서 "10층까지만 봤다"라고 하면서 "5만 원은 지금 주고, 5만 원은 시골 내려갈 때 드리겠다"라고 했다.
사기꾼은 "그래, 할부로라도 받지 뭐"라며 5만 원을 챙겨 갔다. 시골 사람은 집에 돌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10만 원 벌었고, 10만 원도 할부로 바꿔 냈으니 내가 사기꾼을 이겼다"며 의기양양해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이번 협상 태도가 꼭 그렇다.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를 한 푼도 깎지 못하고, 단지 선불을 "연간 200억 달러씩 할부"로 바꿨을 뿐인데, 마치 큰 승리를 거둔 것처럼 자축하고 있다. 총액은 그대로다. 지불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일찍 협상을 마쳤다. 일본은 5월, EU는 7월 초에 이미 합의를 끝냈다. 한국만 10월 말까지 질질 끌다가 급하게 협상을 마무리했다. 급하게 하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협상의 기본 원칙을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 협상단과 관료들이 보여준 노력과 전문성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23차례의 장관급 회담과 수많은 실무 회의를 통해 "전액 선불" 요구를 "연간 200억 달러 상한"으로 바꿔낸 것,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 농산물 추가 개방을 막아낸 것은 엄중한 협상 환경 속에서 이뤄낸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산업통상부 장관을 "만만치 않은 협상가"라고 불렀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협상단의 노력과 협상 결과의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근본적 문제는 이재명 정권이 친중과 친미 사이에서 명확한 노선을 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 시대는 이미 끝났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진정으로 자유 진영에 서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고, 그래서 더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일부 정치권의 반미 정서에 기댄 감정적 대응이나, 종북·자주파의 이념적 구호는 현실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냉철한 실용주의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의 경제 영토를 넓히고 핵심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전략적 위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외교적 승리"로 포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3500억 달러는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는 사실, 통화스와프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 투자 조건에서 여전히 불리한 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정부도 올바른 방향으로 후속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다행히 협상은 계속 보완될 수 있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 원칙을 명시하고, 투자 대상 선정에 한국이 참여하며, 수익 배분 구조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3500억 달러 투자의 구체적 내역, 투자 조건, 수익 배분, 통화스와프 협상 경과, 외환시장 안전장치의 실효성 등을 낱낱이 따져야 한다. 국회 동의 없이는 단 한 푼도 집행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점진적 재협상"을 주문한다. 한국이 확실한 친미 행보를 보이면서, 동시에 투자 조건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식 일방적 조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투자 대상 선정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수익 배분 구조를 명확히 하며, 무엇보다 통화스와프를 재추진해야 한다.
이번 협상 타결은 무역 전쟁의 종지부가 아니라 보호무역 시대 개막의 신호탄이다. 한국을 최빈국에서 번영으로 이끌었던 자유무역 시대는 끝났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다.
앞으로 우리는 한미 FTA에 따라 누렸던 0% 관세 대신 15% 관세를 물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평균 이익률이 5~1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담이다. 수출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투자 여력이 축소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국내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지킬지가 국가 차원의 중대 과제가 됐다.
외환시장 불안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에 투자할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환율이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지금 상황은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당시에도 정부는 "문제없다"라고 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바닥났다.
지금 전 세계는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준의 미래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정부 지원과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노란 봉투법이나 중대재해법과 같은 반기업법도 재검토돼야 한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 감정이 아니라 전략,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말해야 한다.
이번 협상 성과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한데 있다. 정부는 이번 협상 타결을 성공으로 자축하기보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냉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축배를 들기엔 우리가 처한 대외 환경이 너무나 엄중하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안정적 합의"라고 포장해도,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고,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번에 협상단이 보여준 치열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계 통상 질서 변화에 대비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국회는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하며, 국민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국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불균형한 조약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세계 무역 질서의 대격변 시기에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전략과 한 발 앞선 준비뿐이다. 반미 종북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 노선으로, 포장된 홍보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일회성 협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보완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이번 관세 타결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통상 외교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제대로 된 협상, 국익을 지키는 협상, 당당한 협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참고자료
한국은행, 외환보유액 통계 (2025.8)
대통령실, 한미 관세협상 합의 발표 (2025.10.29)
로이터,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 보도 (2025.10.29)
부산일보 사설, "미 '투자 수익 90% 내놓으라' 압박" (2025.9.15)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딘 베이커 선임경제학자 분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대미 무역수지 확대 요인별 분석
KB국민은행, 환율 전망 리포트 (2025.10)
리얼미터 여론조사 (2025.10.1~2)
문화일보, 서울신문, 뉴시스 등 협상 타결 보도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