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협상도 가짜뉴스로 하나?

3500억, 6000억, 9500억 달러, 도대체 뭐가 맞는가?

by 박대석

[사진: 10월 29일 경주에서 한미정상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다운로드]


한미협상도 가짜뉴스로 하나?

3,500억, 6,000억, 9,500억 달러, 도대체 뭐가 맞는가?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관세협상이 최종 타결됐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7월 말 큰 틀의 합의 이후 석 달간 이어진 세부 협상이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한 안정적 합의"라며 환영했다.


그런데 협상 발표가 나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혀 다른 내용을 쏟아냈다.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6,0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것이다. 폭스뉴스는 한 발 더 나아가 9,500억 달러 협상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도대체 뭐가 진실인가.


❚ 정부 발표와 미국 발표의 충격적 괴리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0월 29일 브리핑에서 최종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3,500억 달러 투자 총액은 유지됐으나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하고, 현금 투자는 연간 200억 달러 상한선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됐고, 반도체는 경쟁국 대만과 비슷한 수준을 확보했다. 자동차와 부품은 15%, 일부 의약품과 항공기 부품은 무관세 또는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


367050_283232_3514.jpg


그런데 회담이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놀라운 내용을 올렸다. "한국은 미국이 부과한 관세를 인하받는 조건으로 3500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한국은 미국의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구매하기로 했으며, 부유한 한국 기업들과 사업가들이 미국 내에 투자하는 금액이 6000억 달러를 초과하게 될 것이다." 3500억 달러에 6000억 달러를 더하면 총 9500억 달러다.


미 백악관 홈페이지 10월 29일 팩트시트 홈페이지에는

1) 한국가스공사는 Trafigura, TotalEnergy 등의 판매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Cheniere 등 미국 LNG 생산업체와의 포트폴리오 및 오프테이크 계약을 통해 연간 약 330만 톤의 미국산 LNG를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


2) 센트러스에너지, 한국수력원자력,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오하이오주 피케톤에 있는 센트러스의 우라늄 농축 용량 확장을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에서 3,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예정


3) LS그룹은 2030년까지 해저 케이블, 전력 장비, 권선 등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 LS전선의 미국 자회사인 LS 그린링크는 버지니아에 6억 8,100만 달러 규모의 제조 시설을 건설하고 있음.


4) HD 현대와 세르베루스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미국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강화, 자율 운항, 디지털화, 자동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 적용을 위한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을 위해 협력할 예정, 삼성중공업과 비거마린그룹은 해군 함정의 정비, 수리 및 점검(MRO), 조선소 자동화, 미국 국적 선박의 신규 건조 분야에서 협력할 예정, 한화오션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조선소의 인력을 강화하고 현재 생산 용량을 10배 이상 늘리기 위한 5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계획을 발표했음 등이 공개되었다.


20251030_105333.png fox뉴스 캡처

폭스뉴스(비즈니스)는 즉각 "트럼프, 9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 협상 환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는 트럼프가 한국에 3500억 달러 지불과 6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받았으며,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도 승인했다고 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트럼프가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산업이 곧 거대한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만 언급했는데 미국 대통령은 9500억 달러를 거론했다. 한국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고 했는데, 트럼프는 미국 땅에서 건조한다고 못 박았다. 도대체 어느 쪽 말이 맞는가.


❚ 외신들은 여전히 3500억 달러 이상을 보도한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외신들의 보도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2000억 달러로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외신들은 여전히 "3500억 달러 합의"로 보도하고 있다. 로이터는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미국에 약속한 내용이 포함됐다"라고 전했다. 가디언도 "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3500억 달러 투자와 교환으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라고 전하면서, 이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과 함께 약 1조 달러 규모의 경제 패키지의 일부로 체결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조선업 1500억 달러와 현금 투자 2000억 달러로 구성됐다고 상세히 보도하면서도, 총액은 3500억 달러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한국 정부의 발표와 외신이 보도하는 내용이 다르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가 6000억 달러 추가 투자를 거론하며 총 9500억 달러라고 밝힌 점이다. 한국 국민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 7월에도 있었던 거짓말, 이번에도 반복


사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31일 한미협상 당시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합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협상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0%인 관세가 25%가 될 것을 15%로 낮췄다"는 희한한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한미 FTA로 원래 0%였던 관세가 15%로 올라간 것인데, 마치 25%를 15%로 낮춘 것처럼 포장했다.


이번 10월 29일 협상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은 "3500억 달러가 2000억 달러로 줄었다"거나 "연간 최대 200억 달러"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3500억 달러는 그대로인데 연간 상한만 200억 달러로 정한 것을, 마치 투자액 자체가 줄어든 것처럼 호도했다. 방송법 개정으로 정부와 밀접한 세력이 장악한 일부 언론은 실체가 아니라 환상을 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도 9월 18일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제시한 대미투자 안을 그대로 동의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협상 결과를 보면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는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 단지 선불을 할부로 바꿨을 뿐이다. 그렇다면 탄핵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바꿨다는 것인가.


❚ 껍데기만 바뀐 3500억 달러, 본질은 그대로(선불을 할부로 변경했을 뿐)


대통령실이 발표한 3500억 달러 협상의 본질도 우려스럽다. 첫째, 3500억 달러라는 금액 자체가 과도하다. 한국이 25%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대미 수출 감소액은 125억 달러 정도인데, 그 20배가 넘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


둘째, 협상의 본질은 '총액 감축'이 아니라 '지불 방식 변경'에 불과하다. 연간 200억 달러씩 10년이면 2000억 달러, 여기에 조선업 1500억 달러를 더하면 정확히 3500억 달러다. 선불을 할부로 바꿨을 뿐, 미국이 처음 요구한 금액 그대로다.


셋째, GDP 대비 부담을 보면 한국의 불리함이 명확해진다. 한국의 GDP는 1조 8500억 달러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18.9%에 해당한다. 이를 일본, EU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일본의 GDP는 4조 3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액은 5500억 달러로 GDP 대비 13.66%다. EU는 GDP 19조 4200억 달러에 투자액 6000억 달러로 3.09%에 불과하다. 한국은 18.9%로 일본의 1.4배, EU의 6배가 넘는 부담을 떠안았다.


넷째, 외환보유액 측면에서도 위험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162억 달러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84%에 달한다. 외환보유액이란 국가 경제의 최후 방어선이다. 이를 대규모로 투입하면서도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협상의 중대한 실패다.


❚ 국민을 기만하는 언론의 책임


더욱 심각한 것은 조직과 취재원을 제대로 갖춘 언론사들이 미국 측에 확인도 없이 대통령실 발표만 받아쓰는 망국적 언론 상황이다. 폭스뉴스는 트럼프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도 3500억 달러 또는 그 이상을 거론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정부 발표만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이런 보도는 잠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올바른 대책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면 정부는 갈수록 엉뚱한 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진실을 알려야 국민들이 단합하고, 정부도 제대로 된 협상을 추진할 수 있다.


❚ 이제라도 국회 등에서 진실을 밝혀야


정부는 이번 협상을 "외교적 승리"로 포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통화스와프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 투자 조건에서 여전히 불리한 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트럼프가 6000억 달러 추가 투자를 거론한 것은 무엇인지. 민간 기업 투자인가, 에너지 구매인가, 아니면 새로운 약속인가. 9500억 달러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건조한다는 내용 등이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3500억 달러 투자의 구체적 내역, 투자 조건, 수익 배분, 통화스와프 협상 경과, 외환시장 안전장치의 실효성, 트럼프가 언급한 6000억 달러의 실체를 낱낱이 따져야 한다. 국회 동의 없이는 단 한 푼도 집행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군에서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안된다. 한 번의 실수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밥 먹듯 거짓말을 하면 국가는 금방 무너진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국제사회의 신뢰도 무너진다.


이번 한미협상을 보면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협상 결과와 더불어 거짓말이다. 7월 31일에도 거짓말을 했고, 8월 25일 백악관 회담에서도 거짓말을 했으며, 10월 29일에도 또 거짓말을 했다. 미국과 한국의 발표가 다르고, 정부 발표와 외신 보도가 다르며, 국민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이 사실이라면 이재명 정부는 진상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관련 각료들은 총 사퇴해야 한다. 좌파정권이 그동안 거짓말 가짜뉴스 만들어 재미본 국내 개딸만 바라보는 정치 형태로 국제 외교를 하면 안 된다. 협상 상대자가 있고, 동맹국이며, 세계 최강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1-PDS.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