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대미 투자액
[표지: 2025.10.25. 경주에서 한미정상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다운로드]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한국과 미국은 같은 회담을 놓고 전혀 다른 내용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연간 200억 달러 상한으로 2000억 달러 현금 투자,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3500억 달러 총 투자액 중 현금은 200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이 관세 인하 대가로 3500억 달러를 지불하고, 석유·가스 구매와 기업 투자로 6000억 달러를 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 9500억 달러, 한화로 약 1330조 원이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3500억 달러의 거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폭스뉴스는 즉각 "$950 Billion South Korea deal(9500억 달러 한국 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언론의 태도다. 한국 주요 언론들은 모두 대통령실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 현금 투자, 연간 200억 달러 상한"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단 한 곳도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발표나 폭스뉴스 보도를 확인하지 않았다. 미국 측에 확인 전화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저버린 행태다. 협상은 양측이 합의해야 성립한다. 한국 정부만의 일방적 발표로는 진실을 알 수 없다. 특히 협상 상대인 미국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전혀 다른 내용을 공개했다면, 이를 반드시 확인하고 비교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정부 브리핑장에서 나눠준 보도자료만 복사해 기사를 썼다.
조직과 취재원을 갖춘 언론사들이 왜 이런 보도를 하는가. 방송법 개정으로 정부와 밀접한 세력이 장악한 일부 언론은 실체가 아니라 환상을 전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잠시 국민의 눈을 가릴 수는 있지만, 올바른 대책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면 정부는 갈수록 엉뚱한 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측 발표의 일관성이다. 지난 7월 31일 첫 합의 당시부터 미국은 3500억 달러를 명확히 밝혔다. 8월 25일 백악관 회담 후에도 같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10월 29일 경주 회담 후 트럼프는 여기에 6000억 달러를 추가해 총 9500억 달러를 공개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3500억 달러는 "관세 인하 대가"이고, 6000억 달러는 "석유·가스 구매와 기업 투자"라고 명확히 구분했다. 로이터, 워싱턴포스트,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도 모두 "3500억 달러 합의"로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3500억 달러 투자와 교환으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정부의 발표는 매번 달라졌다. 7월 31일에는 "합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협상"이라고 했다. 일부 언론은 "0%인 관세가 25%가 될 것을 15%로 낮췄다"는 희한한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한미 FTA로 원래 0%였던 관세가 15%로 올라간 것인데, 마치 25%를 15%로 낮춘 것처럼 포장했다. 8월 25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10월 29일, 이번에는 "3500억 달러가 2000억 달러로 줄었다"는 식의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3500억 달러가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 연간 200억 달러씩 10년이면 2000억 달러, 여기에 조선업 1500억 달러를 더하면 정확히 3500억 달러다. 선불을 할부로 바꿨을 뿐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딘 베이커 선임경제학자는 "한국이 25%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대미 수출 감소액은 125억 달러 정도인데, 그 20배가 넘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관점에서 보면 투자, 대출, 보증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위험 노출 형태다. 약정이 체결되는 순간, 총액 기준으로 국가나 기업의 총부채에 산입되며, 이에 따라 국가 신용도나 기업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금리 작용과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혔다. "한국은 미국이 부과한 관세 인하 대가로 3,500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를 구매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의 부유한 기업과 사업가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금액은 6,000억 달러를 넘을 것입니다."
이는 관세 인하 대가 3500억 달러에 에너지 구매 및 기업 투자 6000억 달러를 합친 총 9500억 달러(약 1330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3500억 달러의 거의 3배에 달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트럼프가 직접 밝힌 세부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한국이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필요성에 공감, 후속 협의"라고만 발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에서 건조한다"고 공개했다. 한국은 "도입"을 말하고, 미국은 "미국에서 건조"를 말한다. 이것이 같은 회담 결과인가.
트럼프가 밝힌 3500억 달러는 관세 인하 대가이고, 여기에 석유·가스 구매와 기업 투자로 6000억 달러를 추가하면 총 9500억 달러가 된다. 이는 한국 정부가 발표한 3500억 달러의 거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발언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한국이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다"고 발표했다. 러트닉은 또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 정부는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을 확보했다"고 성과를 주장했다. 누구 말이 맞는가.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를 보면 한국 기업들의 구체적 투자 내역이 나열되어 있다. 대한항공 362억 달러 보잉 항공기 103대 구매, GE 엔진 137억 달러 구매, 한국가스공사 연간 330만 톤 미국산 LNG 구매, LS그룹 30억 달러 전력망 인프라 투자, 아마존 50억 달러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 등이다. 미국 측 발표는 구체적이고 공격적인 반면, 한국 정부는 신중하고 제한적인 설명에 그쳤다.
한국의 GDP는 1조 8500억 달러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18.9%에 해당한다. 이를 일본, EU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해진다. 일본의 GDP는 4조 3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액은 5500억 달러로 GDP 대비 13.66%다. EU는 GDP 19조 4200억 달러에 투자액 6000억 달러로 3.09%에 불과하다. 한국은 18.9%로 일본의 1.4배, EU의 6배가 넘는 부담을 떠안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직접 밝힌 9500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9500억 달러는 한국 GDP의 51.35%에 달한다. GDP의 절반을 넘는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거나 지불한다는 것이다. 국민 1인당 부담으로 환산하면 EU는 약 185만 원, 일본은 약 638만 원이다. 한국은 정부 발표 기준으로도 약 974만 원인데, 트럼프 발표 기준으로는 약 2660만 원에 달한다.
외환보유액 측면에서도 위험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162억 달러다. 3500억 달러는 이 중 84%에 달한다. 트럼프가 밝힌 9500억 달러라면 외환보유액의 2배가 넘는다. 외환보유액이란 국가 경제의 최후 방어선이다. 이를 대규모로 투입하면서도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협상의 중대한 실패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9월 18일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제시한 대미투자안을 그대로 동의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협상 결과를 보면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는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
단지 선불을 할부로 바꿨을 뿐이다. 그렇다면 탄핵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바꿨다는 것인가. 9월 22일 로이터 인터뷰에서는 "통화스와프 없이 3500억 달러를 미국 방식대로 투자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 안전장치를 끝내 마련하지 못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10월 1~2일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미국의 3500억 달러 선불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겼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0.8%가 한미관세협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협상 결과와 더불어 거짓말이다. 결과적으로 7월 31일에도, 8월 25일에도, 10월 29일에도 또 거짓말을 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뼈아픈 실패는 통화스와프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대미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9월 14일 정부 당국은 미국에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개설 필요성을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결과는 외환시장에 즉각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은 협상 교착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급등했다. 10월 초 1407원까지 치솟았고, 10월 말 현재도 1400원 중반대 선에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환율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환율은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만으로도 하루 만에 30~40원씩 급락했다. 심리적 안정 효과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이번 협상의 후유증은 이미 시작됐다. 매년 200억 달러씩 10년간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여기에 조선업 펀드 1500억 달러를 합치면 총 3500억 달러, 한화로 약 488조 원이다.
여기에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1500억 달러와 에너지 강제구입 1500억 달러, 보잉 항공기 구매 250억 달러, 방위분담금 100억 달러를 더하면 총 6850억 달러, 약 956조 원에 달한다. 이는 2025년 정부 예산 677조 원을 능가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이 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투자는 필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2030년까지 37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38.7억 달러 규모의 AI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한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260억 달러를 투입하고,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 도입에 362억 달러를 투자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핵심 기술과 인력의 해외 이전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국내 일자리와 소득은 급격히 줄어든다. 관련 대기업 주가는 오를지 몰라도, 하청 중소기업과 조선소 지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외교적 승리"로 포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3500억 달러는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는 사실, 통화스와프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 투자 조건에서 여전히 불리한 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트럼프가 6000억 달러 추가 투자를 거론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민간 기업 투자인가, 에너지 구매인가, 아니면 새로운 약속인가. 3500억 달러 관세 대가와는 별도로 6000억 달러가 추가된 것인지, 아니면 3500억 달러 안에 포함된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9500억 달러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건조한다는 것은 사실인가. 러트닉 장관이 말한 "시장 100% 완전 개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는 발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3500억 달러 투자의 구체적 내역, 투자 조건, 수익 배분, 통화스와프 협상 경과, 외환시장 안전장치의 실효성, 트럼프가 언급한 6000억 달러의 실체(민간 투자인지 에너지 구매인지, 3500억 달러와 별도인지 포함된 것인지), 러트닉 장관이 밝힌 추가 2000억 달러의 정체를 낱낱이 따져야 한다. 국회 동의 없이는 단 한 푼도 집행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현재까지의 발표는 양측의 입장 표명일 뿐, 공식적인 약정서나 조약 체결 단계가 아니다. 국회 비준도 거치지 않았고, 세부 조건에 대한 실무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이는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투자 방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통화스와프를 포함한 금융 안전장치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투자 조건에서도 최대한 유리한 조항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회와 민간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가 절실하다.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민주적 정당성 확보의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어정쩡한 전략적 모호성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확고한 한미동맹 강화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협상의 전략적 자산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모두 무너진다.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로 동맹을 대하며, 거짓말로 외교를 하는 정권은 결국 자멸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정부는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닥치자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바닥났고, 나라는 IMF 관리체제로 넘어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정부는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협상의 진상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관련 각료들은 총 사퇴해야 한다. 좌파정권이 그동안 거짓말 가짜뉴스로 재미 본 국내 개딸만 바라보는 정치 형태로 국제 외교를 하면 안 된다.
협상 상대자가 있고, 동맹국이며, 세계 최강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협상, 국익을 지키는 협상, 당당한 협상을 위해서는 먼저 진실부터 밝혀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위 글은 2025.10.230. FN투데이에 필자 명의 칼럼으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7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