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시트로 본 한국,
동맹국의 자율성은 어디로 갔나

산업, 에너지, 금융, 원전 등 주권 상실인가?

by 박대석


[표지사진: whisk로 생성한 이미지]


▌ 불확실성 해소, 그러나 그 대가는 무엇인가


2025년 11월 14일, 한미 양국은 지난 10월 29일 경주 정상회담 이후 16일 만에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를 공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한미 무역통상 협상 및 안보협의가 최종 타결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합리적 결단과 용단에 감사한다"라고 밝혔다. 같은 시각 백악관도 공식 홈페이지에 동일한 팩트시트를 게재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공동 문서다. 자동차 업계를 비롯한 수출 기업들이 매일 수백억 원의 관세를 물며 애태우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문서의 화려한 표면 뒤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엄중한 대가가 숨어 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지지, 반도체 최혜국 대우, 한반도 비핵화 재확인 등 굵직한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서를 꼼꼼히 뜯어보면, 주요 정책 영역에서 한국의 자율적 결정권이 상당 부분 미국의 승인과 협의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모든 합의가 국가의 장기적 이익보다 정권의 단기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팩트시트 서두에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2024년 승리와 대한민국의 민주적 역량과 회복력을 보여준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을 계기로"라는 표현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공식적인 협상 파트너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선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정이 이후 광범위한 협력 구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3,500억 달러와 외환정책 자율성의 제약


팩트시트는 대미 투자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조선 분야 1,500억 달러와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따른 2,000억 달러다. 한국 정부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해 외환시장 부담을 최소화했다"라고 강조한다. 표면적으로는 외환시장 충격을 분산시키는 합리적 조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백악관 팩트시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신뢰받는 파트너로서, 한국은 어떠한 역년에도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미화 자금을 조달할 의무가 없다. 한국은 시장 매입 이외의 수단을 통해 미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문구가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이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서 직접 조달할 경우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는 외환정책의 상당한 자율성이 제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2025년 10월 기준 약 4,288억 달러다. 그러나 이 중 현금성 자산은 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장기 채권이나 위탁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달러 자산은 전체의 약 70% 수준인 약 3,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여기에 3,500억 달러를 10년간 집행해야 한다면, 연간 200억 달러 상한 이라는 것도 한국 외환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결코 여유로운 수치가 아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러한 조항이 환율 방어, 국채 발행, 해외 차입, 외환시장 개입 등 주요 금융 조치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데 일정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팩트시트가 한국의 통화주권을 전면적으로 미국에 양도한다고 명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외환정책의 핵심 영역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불가피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놓친 기회, 혁신적 투자 전략의 부재


이번 협상에서 아쉬운 부분은 투자 방식의 창의성 금융전문성 부족이다. 연간 200억 달러씩 10년 분할 투자는 외환시장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리금 상환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한국의 재정 부담을 장기화시킨다.


협상 과정에서 좀 더 혁신적인 금융 전략을 모색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 전략이나 투자액 유동화를 통한 대안적 접근을 검토할 수도 있었다. 달러투자를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여 활용하면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직접 매입하지 않고도 대규모 달러 자금을 조달할 여지가 있다. 이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유연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투자액 유동화(Securitization) 전략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미국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지분을 증권화하여 국제 금융시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초기 투자금을 빠르게 회수하고, 원리금 상환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일본이나 중동 국부펀드들이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대안들이 팩트시트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며, 이는 필자의 제언일 뿐이다. 그러나 10년 분할 투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금 유입을 보장받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이 장기화되고 투자 수익 실현도 늦어진다. 더구나 10년 후에도 정치적 상황 변화나 미국 경기 변동에 따라 원금 회수가 불확실할 수 있다. 외환시장 안정과 원리금 조기 상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반도체·자동차, 핵심 산업의 미국 의존 심화


조선 분야 1,500억 달러 투자는 "승인된 투자(Approved Investments)"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한국의 조선 기술과 자본이 미국의 해양 패권 복원 전략에 투입되는 구조다. 한화오션은 필라델피아 조선소 현대화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고, HD현대와 삼성중공업도 미국 조선소 협력에 참여한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조선 사업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협의했다"라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팩트시트 자체에는 건조 위치가 명시되지 않아 향후 협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반도체는 어떤가.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반도체(반도체 제조 장비 포함)에 부과되는 모든 232조 관세에 대해 한국에 최혜국 대우를 제공할 예정이며, 이는 한국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반도체 무역 규모를 포괄하는 미래 협정에서 제시될 수 있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제공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대만과 같은 수준의 대우"로 해석하지만, 구체적인 관세율은 향후 협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수출 통제(ITAR, EAR)와 공급망 표준화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삼성전자의 텍사스 투자 370억 달러,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AI 반도체 공장 38.7억 달러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핵심 기술과 생산 거점의 미국 이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동차 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관세 인하처럼 보이지만, 한미 FTA 체제에서 0%였던 것에 비하면 15% 포인트 전액 인상이다. 일본과 EU는 기존 2.5%에서 15%로 12.5% 포인트 인상에 그쳤다. 한국만 유독 불리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같은 15%로 수렴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조지아 투자 260억 달러는 이러한 관세 구조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산업 분야 합의가 곧 "산업주권의 완전한 이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요 산업의 생산 거점과 기술 협력 구조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산업의 자율적 발전 경로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는 충분히 정당하다.


▌원자력과 에너지, 승인 체계에 묶인 자율성


팩트시트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123 협정)에 기반하여 한국의 평화적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절차를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긍정적인 진전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법적 요건에 따라"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는 한국의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가 미국의 승인 절차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이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완전한 "면허제" 체제로 전환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하거나 다양한 기술 선택지를 모색하는 데 미국의 승인과 협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원자력 분야에서의 정책 자율성이 상당 부분 제약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가스공사가 연간 약 330만 톤의 미국산 LNG를 장기 계약으로 구매하기로 했고, 센 트러스에너지·한국수력원자력·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오하이오주 피케톤의 우라늄 농축 용량 확장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조치다. 트럼프가 언급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참여까지 포함하면, 에너지 분야 투자는 수백억 달러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식량·농업·축산, 미국 표준으로의 전환 우려


팩트시트에는 "한국은 식품 및 농산물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며, 농업생명공학 제품에 대한 규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미국 원예·축산물 전담 데스크'를 설립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쌀과 소고기 등 민감 품목을 방어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개방 범위는 향후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결정될 사항이다.


이 조항이 즉각적으로 한국 식량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 내 식품 유통 체계와 검역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적 구조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산 소고기, 옥수수, 유전자변형(GMO) 작물, 유제품은 한국 내에서 보다 유리한 지위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식량 안보와 농업 정책의 자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노동·환경·지식재산권, 중국 배제의 이중 효과


팩트시트에는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여 국제노동기준(ILO)과 환경협약을 강화하고, 불공정 경쟁 및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차단한다"는 조항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권과 환경 보호를 위한 규범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산 제품과 중국식 공급망을 한국 시장에서 배제하기 위한 통상적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 '강제노동 금지'라는 명분 아래 중국의 저임금·저 규제 생산체계를 한미 무역 구조에서 자동적으로 차단하도록 설계된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은 미국의 특허 기준을 따르기로 하면서 '특허법 조약(PLT)' 가입을 추진한다. 이는 한국의 기술·특허 보호 체계를 미국식 산업 표준에 일치시키는 조치다. 한국 기업은 미국식 규제·특허·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조항은 중국산 제품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동시에 한국 기업을 미국 기술 질서 안에 고정시키는 이중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안보와 방위비, 예산 구조로 고정된 주한미군


팩트시트에는 안보 관련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은 GDP의 3.5%를 국방비로 유지하고, 2030년까지 미국 무기 250억 달러를 구매하며, 주한미군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구체적 금액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전 협상 과정에서 330억 달러가 거론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방위비 분담을 넘어 주한미군 체제를 예산 구조 속에 장기간 고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주한미군 운영이 예산화·계약화된 구조 속에서, 한국은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2030년까지 미군 장비와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역할 재조정을 논할 수 있겠지만, 예산 구조가 이미 장기간 고정되어 있는 한 실질적 변화의 여지는 크지 않다.


▌정권의 정통성과 협상의 역학


이재명 정부는 2025년 초 취임 과정에서부터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다. 사법 리스크, 각종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범한 정권이었다. 나아가 미중패권전쟁을 하는 미국에 친중정권으로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팩트시트 서두의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을 "대한민국의 민주적 역량과 회복력"으로 서술한 미국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이를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국제법상 정통한 정부로 공식 승인한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물론 이는 팩트시트의 명시적 내용이 아니라 필자의 해석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해석이 타당하다면, 미국은 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절박한 필요를 지렛대로 활용하여 광범위한 구조적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보수 정권이 계속되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보수 정권 역시 한미 동맹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국익을 협상 테이블에서 신중하게 다루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중에도 주한미군 지휘권 문제와 정전협상에서 미국과 맞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과 새마을운동, 자주국방을 통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종속을 경계했다. 이후 보수 정부들도 "동맹은 필요하지만, 국익 결정은 서울이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등장은 한국 현대사의 균형추를 흔든 변수가 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정권의 안위와 정치적 생존에 대한 우려가 국가적 이해보다 앞섰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결과 미국이 오랜 세월 두드려도 좀처럼 열리지 않던 문이 비교적 수월하게 열렸다는 분석이다.


▌팩트시트의 애매한 표현들과 불확실성


팩트시트가 공개되었지만, 여전히 모호하거나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먼저 투자 규모다. 팩트시트에는 "조선 부문 1,500억 달러 승인 투자"와 "전략적 투자 MOU에 따른 2,000억 달러 추가 투자"로 총 3,500억 달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은 관세 인하 대가로 3,500억 달러를 지불하고, 추가로 에너지와 가스를 구매하며,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6,0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3,500억 달러가 관세 대가인지, 아니면 총투자액인지, 6,000억 달러와는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지 않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위치도 애매하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조선 사업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협의했다"라고 했지만, 트럼프는 "한국이 필라델피아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팩트시트에는 건조 지역이 명시되지 않았다.


반도체 관세도 마찬가지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반도체 교역 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복잡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고 해석했지만, 구체적인 관세율은 없다. 향후 대만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 정도도 불분명하다. 팩트시트에는 "식품 및 농산물 무역의 비관세 장벽 해결, 농업생명공학 제품 규제 승인 절차 간소화, 미국 원예·축산물 전담 데스크 설립"이 명시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쌀과 소고기 등 민감 품목을 방어했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개방되는지는 향후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결정될 사항이다.


이러한 애매함은 협상의 투명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동 팩트시트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사항들이 여전히 "향후 협의", "후속 논의", "공동위원회 결정" 등으로 미뤄져 있다는 것은, 이번 합의가 얼마나 불완전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일본·EU와의 비교, 한국의 불리한 조건

청록색 깔끔하고 단순한 시트.png 박대석 작성

대통령실은 "반도체의 경우 주요 경쟁국인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며 유리한 협상 결과를 강조했다. 과연 그런가?


11월 14일 공개된 팩트시트를 기준으로 비교해 보자. 먼저 관세 구조다. 한국은 한미 FTA 체제에서 0%였던 무관세가 15%로 전면 인상되었다. 15% 포인트 전액 인상이다. 반면 일본과 EU는 기존 2.5%에서 15%로 12.5% 포인트 인상에 그쳤다. 출발점 자체가 달랐다. 한국만 유독 불리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같은 15%로 수렴된 것이다.


투자 규모는 어떤가? 팩트시트에 명시된 한국의 3,500억 달러는 GDP(1.85조 달러) 대비 18.9%에 달한다. 일본의 5,500억 달러는 GDP(4.03조 달러) 대비 13.66%다. EU의 6,000억 달러는 GDP(19.42조 달러) 대비 3.09%에 불과하다. 한국의 GDP 대비 부담은 일본의 1.4배, EU의 6배다.


1인당 부담으로 환산하면 더욱 극명하다. EU는 27개국 4억 5천만 명이 분담하니 1인당 약 185만 원이다. 일본은 1억 2천만 명이 나눠 1인당 약 638만 원이다. 한국은? 5천만 명이 3,500억 달러를 부담하면 1인당 약 974만 원이다. 만약 트럼프가 언급한 6,000억 달러 이상이 실제 부담이라면 1인당 1,67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외환 안전망은 어떤가? 일본은 외환보유액이 1조 3,044억 달러에 달하고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88억 달러로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고, 통화스와프는 없다. 연간 200억 달러 조달 상한이 설정되어 있지만, 외환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여유로운 수치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합의의 형식이다. 일본과 EU는 모두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팩트시트는 있지만 구속력 있는 조약문이나 양해각서(MOU) 서명 내용의 전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핵심 사항들이 "향후 협의", "후속 논의"로 남아 있다.


▌트럼프의 전략, 시스템 차원의 구조적 합의

P20251029DT-1864.jpg 2025.10월 경주 apec에서 미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이번 합의의 특징은 단기적 거래가 아니라 장기적 구조 설계라는 점이다. 조약, 투자계약, 외환한도, 군사협정이 법적 구조로 고정되어 있어, 앞으로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세력이 친중적 노선을 내세우더라도, 금융·무역·군사 네트워크가 이미 미국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실질적 정책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 원자력, 식량, 자동차, 반도체, 달러, 군사, 디지털, 지식재산권 등 여러 축을 통해 한국의 산업, 금융, 안보가 하나의 연계 구조로 묶였다. 한국은 여전히 주권국가이지만, 그 주권의 작동 범위가 미국과의 협의와 승인 체계 안에서만 원활하게 작동하는 구조로 변화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트럼프는 이재명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했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이재명은 트럼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더욱 초조해졌고, 스스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다. 협상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워싱턴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지도부의 절박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여, 한국의 경제·안보 구조를 미국 질서 안으로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것이 거래의 냉혹한 본질이다. 협상에서는 언제나 상대의 약점이 가장 비싼 화폐가 된다.


이번 협정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동맹 강화가 아니라 시스템적 연계 구조의 심화다. 한국의 금융, 무역, 조선, 에너지, 방위, 데이터 인프라 전체가 미국의 전략적 질서 속으로 더욱 깊이 편입되는 체계적 고정(Lock-in)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점령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의 시스템 전체를 미국 질서의 협력 구조로 재편했다. 이것이 백악관 팩트시트가 보여주는 트럼프식 동맹 관리의 현실이다.


▌역사가 기록할 중대한 전환점


미국은 6·25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번 협정을 통해 상당 부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미 경제안보 일체화'였다. 자주국방을 외치며 때로 반미를 부르짖던 세력들이, 결국 그들의 불안과 약점 때문에 미국이 원하던 광범위한 구조적 합의에 서명하게 되는 역설이 펼쳐졌다.


이것은 트럼프가 이재명 정권에 제시한 거래이자, 동시에 중국이나 다른 세력도 이제는 한국을 섣불리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어렵게 만든 트럼프식 동맹 재설계의 완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한국의 정책 자율성 상당 부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마치 구원의 밧줄을 붙잡듯 트럼프의 인정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리고 협상을 거래로 바꾸는 데 탁월한 트럼프는, 처음부터 이재명 세력이 권력을 쥐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트럼프에게 이재명은 오랜 숙제를 단숨에 해결해 줄 '기회의 인물'이었을 수 있다. 한국 내부의 혼란과 지도자의 불안은 미국이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되었고,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 순간부터 판의 흐름은 상당 부분 정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70년 넘게 한국의 보수 진영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주권만큼은 신중하게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버텨왔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그 긴 세월 동안, 동맹 속의 자주라는 균형의 문은 결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명의 등장은 한국 현대사의 균형추를 흔든 중대한 변수가 되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


이제 국민은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이 계속 집권한다면, 한국은 정책 자율성의 제약과 경제적 부담의 가중 속에서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국부는 유출되고, 산업은 공동화 우려에 시달리며, 정책 자율성은 약화될 수 있다.


한국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하루빨리 이재명 정권의 정책 방향을 전환하거나, 정권 교체를 통해 한미 동맹을 보다 균형 잡힌 방식으로 복원해야 한다. 친중·반미 노선을 버리고, 명확한 친미 노선 속에서도 국익을 신중하게 지키는 외교를 확립해야 한다. 한미 FTA를 재협상하여 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과 경제의 동맹으로 격상시키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


팩트시트로 본 한국의 현실은 냉혹하다. 동맹국의 지위는 유지되었지만, 정책 자율성은 상당 부분 제약되었다. 주권은 형식적으로 유지되나, 실질적 작동 범위는 축소되었다. 경제는 미국 질서에 더욱 긴밀히 연결되었고, 안보는 예산에 장기간 고정되었다. 사실상 동맹국에서 통제대상국이 되었다. 이것이 이재명 정권이 한국에 안긴 유산이다. 역사는 이 순간을 한국 외교사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선동과 미사여구로는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없다. 진실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책 방향의 전환, 나아가 정권 교체만이 대한민국의 자율성과 번영을 지키는 길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참고자료

백악관,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2025.11.14

대통령실, "한미 오찬 정상회담 관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브리핑", 2025.10.29

대통령실, "한미 오찬 정상회담 관련 김용범 정책실장 브리핑", 2025.10.29

동아일보, "美 '한국 핵잠 건조 승인' 팩트시트 못 박아… 우라늄 농축도 지지", 2025.11.14

한국경제, "[기획] 팩트시트 '깜깜'… 車, 하루 400억 날린다", 2025.11.12

한국은행, 외환보유액 통계, 2025.10

백악관, 일본·EU 팩트시트, 2025.7~10

각종 언론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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