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정치 도구로 삼는 민주당의 망국적 행태
[종묘모습,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김민석 국무총리가 2025년 11월 10일 종묘를 찾았다. 세운상가 재개발을 추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정조준하며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허민 국가유산청장 등을 대동한 이날 현장 방문은 문화유산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 총리의 존재감 과시로 읽혔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김 총리는 이명박 후보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두고 "교통 대책 없는 뜬구름 잡기"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당시 그는 "지금은 어린이보육과 노인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며 청계천 복원을 시대착오적 사업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 청계천은 생물 다양성이 회복된 도심 하천으로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연간 2천만 명 이상이 찾는 청계천은 이제 서울의 자랑이자 도심재생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다.
배현진 국민의힘 서울시당 위원장은 이를 두고 "김민석 총리 말의 반대로 하면 성공 정책이 된다"라고 꼬집었다. 과언이 아니다. 김 총리는 청계천 외에도 강북 재개발 사업에도 반대했던 전력이 있다. 그때마다 그의 반대는 빗나갔고, 서울은 발전했으며, 시민들은 혜택을 누렸다.
정작 대법원은 지난 11월 6일 서울시의 역사문화환경 보전지역 바깥 개발 규제 완화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마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김 총리의 반대는 법리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가깝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세운상가는 1968년 완공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1980~90년대 컴퓨터·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이곳은 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등이 탄생한 한국 IT 산업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후화가 극심해 빗물 누수, 외부 자재 추락 등 안전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약 1km에 달하는 세운상가 건물 라인 일대는 60년 가까이 판잣집 지붕으로 뒤덮여 폐허처럼 방치되어 왔다.
세운 재정비촉진지구는 약 43만 9천㎡(약 44헥타르, 약 13만 3천평) 규모로, 2004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후 20여 년간 표류해 왔다. 서울시는 이 지역에 평균 용적률 1,000% 내외(최대 1,500%까지 허용), 최고 30~50층 높이의 복합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약 1만여 가구 규모의 주거시설과 상업·업무시설을 조성하고, 13만 9천㎡ 규모의 녹지축을 만들어 남산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생태문화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오세훈 시장이 "수도 서울의 중심이라 할 종로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종묘를 위한 일인지 냉정한 눈으로 봐달라"라고 호소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세운상가 주민들 역시 "종묘의 경관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흉물처럼 남은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심 한복판의 슬럼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물론 문화유산 보호는 시대를 초월한 공공 가치다. 종묘는 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 건립한 조선왕조의 왕실 사당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유교 전통에 따른 왕실 제례 공간으로 동양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1995년 종묘 등재 당시 주변 경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고층 개발을 허가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제시한 점은 매우 중요하다.
김민석 총리의 우려도 이 지점에 있다. "종묘 바로 코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화유산 보호 자체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존중받아야 할 가치다.
그러나 서울시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서울시는 종묘 경계에서 170~190m 거리를 두고,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낮은 건물부터 높은 건물까지 단계적으로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포 장릉처럼 왕릉 정면 시야를 직접 가리는 경우와는 명백히 다르다. 오히려 남산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이 조성되면 흉물스러운 세운상가가 종묘를 가로막지 않게 된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단순히 세운상가를 허물고 고층 빌딩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종묘라는 세계문화유산을 도심으로 확장하는 창의적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종세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종묘세운을 품다"를 축약한 "종세품(JongSaePoom)" 프로젝트는 발상의 전환을 담고 있다. 종묘와 세운상가를 개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종묘의 문화유산 콘셉트를 세운상가와 연계하여 도심의 문화생태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운상가 1층을 종묘와 연결되는 "역사문화 거리"로 조성한다. 오픈 스트리트 형식으로 종묘의 역사와 전통을 시각 예술, 디지털 미디어, 안내 패널, 상징적 조형물 등으로 표현하여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종묘에서 세운상가까지 보행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세운상가 저층부는 문화예술 전시장, 창작스튜디오, 문화체험관으로 활용한다. 종묘의 전통문화를 현대적 매체와 융합하여 AR(증강현실) 체험 프로그램, 종묘제례악 공연 공간, 유교문화 아카데미 등을 운영한다. 중·고층은 청년·신혼부부 대상 공공임대주택과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조성하여 젊은 활력을 불어넣는다.
셋째, 건축물 디자인에 종묘의 전통 요소를 반영한다. 자연재료와 전통문양을 활용하고, 건물 높이는 종묘 경관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배치한다. 종묘에 가까울수록 낮고, 멀어질수록 높아지는 방식이다.
넷째, 종묘와 세운상가를 잇는 녹지축을 조성하되,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문화의 숲길"로 만든다. 조용한 산책로, 명상 공간, 전통정원 요소를 배치하여 종묘의 신성한 분위기를 세운상가까지 연장한다.
이러한 계획이 성공하려면 재원 조달 방안도 명확해야 한다. 높은 용적률 허용을 통한 개발 이익 환수금과 문화재청, 서울시의 공동 투자 모델을 구축하여 공공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문화유산과 현대 도시의 조화로운 개발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산업단지는 과거 탄광산업 유산을 보존하면서 예술·문화 공간과 공공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역사도시 내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인접 도심을 역사적 스토리와 연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종교·왕실 유산과 현대 도시를 결합한 사례다. 영국 런던타워 주변은 세계문화유산인 중세 요새를 보존하면서도 주변에 현대적 고층 빌딩을 단계적으로 배치하여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인근 역시 고대 유적을 보호하면서도 주변 도심 개발을 병행하여 관광과 주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성군 필암서원이 좋은 예다. 2025년 10월 재개관한 필암서원 유물전시관과 집성관은 단순한 보수를 넘어 디지털 전시 공간과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며 "잠자던 세계유산을 깨운"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00억 원의 예산이 세계유산을 지역의 "활력 자산"으로 바꾼 전략적 투자였다.
종세품 프로젝트의 경제 효과는 명확하다. 현재 종묘와 4대 궁 전체 방문객은 연간 1,300만 명 수준이다. 국내외 유사 복합문화유산 개발 사례 연구에 따르면, 종묘·세운상가 복합개발 시 방문객은 30~50% 증가하여 연간 약 2,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광객 1인당 평균 소비액 10~15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관광지출 총액은 연간 약 2조 원에서 3조 원에 달한다. 이는 관광산업 고용탄력성 연구 결과에 따라 약 6만~ 2만 명의 직접·간접 고용 창출 효과로 이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상권 활성화와 부동산 가치 상승, 문화 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 도시재생의 선순환 구조다. 종묘라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세운상가를 품으면서 도심 전체가 "살아 숨 쉬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효과가 지속되려면 관광 인프라 확충, 문화 프로그램 개발, 주민 의견 수렴이 병행되어야 한다.
김민석 총리는 "종묘 인근 개발은 국민적 토론을 거쳐야 할 문제"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국민적 공론화와 투명한 절차는 어떤 개발 사업에서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20년 전 청계천 복원 때도, 강북 재개발 때도 같은 말을 했다. 그때마다 결과는 어땠는가. 서울은 발전했고, 시민들은 혜택을 누렸다.
문제는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민석 총리는 문화유산을 정치 공세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서울시장 확보를 위해 도시개발조차 이념 정치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적 책임을 포기하는 정치적 퇴행이자, 서울의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는 우매한 포퓰리즘이다.
오세훈 시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세계유산 보존과 도시의 미래를 함께 이루는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종묘 세계유산의 핵심은 건물 외형이 아니라 종묘제례와 제례악이라는 콘텐츠"라며 "서울시는 늘 보존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 왔다"라고 말했다. 흥인지문 경관 정비, 창경궁~종묘 연결, 창덕궁 앞 주유소 철거, 경복궁 월대 복원 등이 그 증거다.
오 시장이 김 총리에게 제안한 공개토론은 의미 있다.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다. 정책의 투명성과 시민 참여를 강화하는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최선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종묘는 조선왕조 514년의 역사를 담은 민족의 정신적 유산이다. 이를 박제된 과거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현대 서울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세운상가는 한국 산업화와 IT 발전의 산증인이다. 이를 흉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혁신 공간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종세품 프로젝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이다. 종묘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세운상가를 문화와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고, 두 공간을 도심 속 연속된 문화벨트로 연결하는 것이다. 단순한 고층 개발이 아니라, 세계유산을 도심 활력 자산으로 전환하는 능동적 보존의 비전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김민석 총리에게 묻는다. 청계천을 반대하고, 강북 재개발을 반대하고, 이제 세운상가마저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문화유산 보호가 목적인가, 아니면 정치적 이익이 목적인가. 20년 전 청계천이 증명했듯이, 여러분의 반대는 서울 발전의 신호탄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국민은 정치 선동이 아니라 실질적 해법을 원한다. 종묘도 지키고 세운상가도 살리는 창의적 개발을 원한다. 서울시장 확보를 위한 무차별 정치 공세를 멈추고, 국민과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라. 문화재청, 국가유산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세계유산 보존 조건을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21세기 서울의 미래를 열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종세품, 종묘·세운상가를 안다.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이 프로젝트가 서울을 세계적 문화도시로 도약시킬 것이다. 정치가 아닌 비전으로, 선동이 아닌 창의로 답할 때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주요 참고 자료:
서울시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개발 계획 (2025)
대법원 판결문 (2025.11.6) - 서울시 조례 개정 적법 판단
한국경제, "지방선거 전초전 된 세운상가 논쟁" (2025.11.11)
국가유산청, 종묘 관리 현황 및 방문객 통계 (2024)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존 기준 및 해외 사례 연구
청계천 복원 사업 경과 및 성과 분석 (2003-2025)
한국관광개발연구소, 문화유산 관광 효과 분석 (2024)